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살린 Jul 25. 2021

시선으로부터

제사와 무지개

* 독서릴레이 선정 도서, 에세이 


시선으로부터

                                                                              정세랑 저


1. 시선의 다중성



책을 읽기 전 제목이 ‘(타인의) 시선으로부터’라는 의미가 아닐까 지레짐작했다. 책을 펼치자 ‘시선’은 주인공의 이름이란 것을 알았다. 참고로 난 ‘미선’이다. 매 챕터는 ‘심시선으로부터’ 시작했다. 한 개인의 삶에는 인류의 역사와 사회의 이력이 새겨져 있듯이, 심시선에게도 이데올로기의 참극과 한인 이주 역사, 그리고 오리엔탈리즘의 스테레오타입이 문장처럼 새겨져 있다. 그럼에도 동시대를 살았던 다른 사람에게서 느끼는 안타까움과 애잔함이 시선에게서는 안심으로 바뀌었다. 시선은 씩씩했고 저항했고 포용했으며 유쾌했다. 그 시선으로부터 뻗어나온 가족들 또한 씩씩하고 용감하게 지반을 확장해 나가며 세계 속으로 과감히 뛰어 들어가고 있었다.

한편 처음 책의 제목을 접했을 때 느꼈던 ‘(타인의) 시선으로부터’도 결코 틀린 것은 아닌 것 같다. 세계에서도 보수적이라고 평가받던 우리나라에서 다중결혼과 떠들썩한 국제 연애 사건은 시선을 타인의 도덕적 시선으로 가둬놓기 충분한 조건이었다. 심시선은 그 시선을 보란 듯이 비웃는 통쾌함과 자유로움을 보여주었다. 우리가 지금 이만큼 누리는 자유로움은 수많은 시선 여사들의 저항과 자유에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사후 10년 만에 처음 치루는 통쾌 발랄한 시선여사의 제사에 이 에세이 한 단락을 제수로 바친다.



          삭제 







2. 표준편차


수학시간에 배운 표준편차라는 것이 있다. 특정 데이터가 평균에서 얼마나 떨어져 분포하는 지를 보여주는 수학 개념이다. 대부분의 표준 편차는 중앙값이 볼록하고 양쪽으로 갈수록 작아지는 모자모양을 하고 있다. 중앙값이 볼록하다는 것은 그에 해당하는 개체가 많다는 것이고 작아진다는 것은 해당 개체가 적다는 것이다. 문제는 볼록한 중앙값이 도덕적 언명이나 반드시 지켜야 할 기준으로 작동하는 데 있다. 마치 대한민국 남자의 평균키가 173인데, 여기에서 한참 떨어진 150이나 205는 기준미달에 해당한다고 보는 시선 혹은 대한민국 대다수가 이성애자 인데, 여기서 떨어진 동성애자나 혹은 양성애나 혹은 무성애자를 범죄자로 인식하는 시선, 혹은 대다수의 대한민국 국민은 결혼을 하여 아이를 가지는 것이 볼록 값인데, 결혼을 하지 않거나, 아이가 없거나 혹은 여러 번 결혼을 한 사람을 안쓰럽게 보는 시선들이다.


심시선은 분명 중앙 볼록 값에 해당되지 않는다. 한 남자의 조신한 아내도 아닐뿐더러, 동시대 여성의 금기어인 섹스라는 용어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다. 살아온 이력도 그렇다. 한국에서 태어나 ‘사진 신부’로 하와이로 이주하여 독일 남자를 따라 독일에 가서 이방인처럼 사는 현지인을 만나 결혼하고 한국으로 돌아온다. 한국에 적응하지 못한 이방인처럼 사는 독일 현지인 남편은 아이 셋을 남기고 이제는 독일이 고향이라고 돌아가 버리고, 딸이 딸린 남자와 재혼하여 그 딸을 자신이 낳은 자식처럼 길러낸다.


심시선의 말에는 볼록 값들에 대한 비판의 시선이 담겨있다. 분포가 많다고 그것이 정답이 아니라는 훈계 같은 것 혹은 비판들이 담겨 있다. 표준편차 양 끝에 선 사람들이 가지는 일종의 권력 같은 시선이다. 또한 다수에서 멀리 떨어진 삶의 현장에 대한 생존보고이기도 하다. 시선의 시선을 따라가며 느끼는 통쾌함이나 자유로움은 이에 기인한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불편함이 생기는 지점도 바로 여기다. 시선의 시선이 또 하나의 잣대로 작동하는 것이다. 볼록 값에 해당한다고 혁명의 정신이나 개혁의 실천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 무리 안에서 삶을 조성하고 후대를 양성하고 공동체 유지에 나름 큰 기여를 하고 있다. 급변하는 사회가 기반이 무너지지 않고 유지하는 비결은 이 볼록이의 역할이 큼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모두가 양끝으로 달려간다면, 사회의 지속성을 어떻게 보장할 수 있겠는가.



          삭제 






3. 제사와 무지개


시선은 플랫폼이다. 시선의 집에는 많은 예술인들과 많은 양끝들이 출입한다. 다양한 사람들이 시선으로부터 접속과 이탈을 반복한다. 이 반복의 현장을 지속시킬 수 있었던 힘은 시선이 가졌던 열린 태도와 유쾌함이었을 것이다. 이것은 가족 구성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시선의 가족은 다양하게 이루어졌다. 혈연으로만 맺어진 것도 아니고, 의무로만 구성된 것도 아니다. 인간 개체에 대한 예의에 기반한 구성이다. 가족의 직업과 성향 또한 다양하다. 미래를 계획하고 설계하는 프로그래머와 과거를 헤집고 발굴하는 복원전문가와 고고학자, 세상을 편견 없이 만나는 지수와 세상의 우발성을 재앙으로 인식하는 희수, 자신이 좋아하는 바를 적극적으로 알리고 찾아다니는 새 오타쿠 해림과 건장한 체구 속에 마음을 꼬옥 가두어 둔 규림 등.


그런데 이들이 제사를 지내려 한다. 그것도 시선의 죽음 10년 후에 말이다. ‘제사’는 자신의 연속성을 확인하는 볼록이의 문화가 아닌가. 사후 제사를 지내지 말라는 양끝다운 유언을 남긴 시선의 뜻과는 무관하게 제사는 하와이에서 열린다. 하와이는 시선이 암울했던 시기의 눈빛이 담긴 누드화가 전시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제사라는 볼록이 문화는 아무런 죄가 없다. 죽은 자의 조각들을 하나씩 품고 있는 자들이 모여 그 조각을 확인하는 것은 성스럽기도 하다. 제사를 죄로 만드는 것은 볼록이의 무능함에 기인할 지도 모른다. 형식과 내용이 비틀리기 시작하여, 형식만이 내용 없이 남아 있을 때, 사람들은 그 형식을 죄라고 단죄하기 시작한다. 형식에 새로운 내용을 추가하여, 그 비틀림을 재조정할 때, 그것의 성스러움이 다가온다.


이런 면에서 제사를 단 한 번 지낼 것을 명령한 명혜는 플랫폼적이다. 시선의 장녀답게, 시선으로부터 배운 태도로 기존의 형식에 새로운 내용을 추가하여 새로운 제사를 만들어냈으니 말이다. 각자의 방식으로 시선을 살아가는 후손들은 각자의 성향에 맞는 제수를 준비해온다. 명혜는 신나는 훌라춤을 추고 데려온 딸인 경아는 시선과 가장 정서적 교감을 나누었던 매개물인 커피를 내리고, 충격으로 아무것도 먹지 못하던 화수는 맛있는 핫케익을 바치고, 몸이 허약했던 우윤은 하와이 바다의 큰 파도의 포말을 가지고 오고, 세상을 경계없이 만나는 지수는 작은 폭포에 뜬 무지개 사진을 가져온다.


마지막 펭귄을 씻기러 가는 지수의 모습에서 삶의 불확실성 속으로 과감히 뛰어들어 가는 시선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제사와 무지개... 이 책을 덮으며 남는 두 단어다.




          삭제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코스모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