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7월 6일 칼 세이건 <코스모스> 토론 참석 에세이
그날은 다른 날과 달랐다. 반드시 올 것 같았다. 그동안 나름대로 꽤 자료를 모았다. ‘그래! 오늘이다’. 이유는 없었다. 책을 들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밤인데도 여전히 후덥지근했다. 하늘은 유난히 총총했고 나는 유난히 설렜다. 우리 집 옥상은 이상하게 각이 져서 모퉁이에 웅크리고 앉으면, 누구도 나를 찾을 수 없었다. 자리를 잡고 기다렸다. 칠흙같은 어둠을 더 이상 볼 수 없는 도시에 살지만, 그 밤만은 이상하게 도시의 불빛이 느껴지지 않았다. 후끈했던 땅의 열기도 식고, 몸도 한기를 느끼기 시작하는 어슴프레 새벽이 올 때까지 그렇게 그 밤을 지샜다. 아무도 만나지 못한채..
UFO에 빠져 열심히 책을 읽고, 외계인을 만나려고 밤을 새던 고등학교 시절 이야기다. 삶에서 우주에 관심을 가지게 된 몇몇 순간들이 선명하다. 처음은 초등학생시절 한 권의 공상과학책을 접한 이후다. 주인공은 실험정신이 강한 과학자였다. 어느 날 우연히 실험실에서 두 개의 철판에 전극을 연결하자 그 사이에 자기장이 생겨 원자들이 결합하더니 덩어리가 되고 행성이 생기고 특정 행성에는 생명체가 살기 시작했다. 과학자는 현미경으로 그 중 한 행성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그 행성에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물을 뿌려 홍수가 나게 하거나 조명을 세게 비추어 가뭄에 시달리게 하였다. 과학자의 장난에 따라 그 별 생명체의 삶과 죽음이 좌우되었다. 결국은 실험실이 폭발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그 후로 지금까지 여전히 의심한다. 이 행성을 현미경으로 관찰하고 장난치는 과학자가 있는 건 아닌지..
두 번째는 명화극장에서 방영한 우주에 관한 영화를 본 후다. 제목과 이야기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주인공이 저 멀리 광활한 우주 속으로 우주복을 입은 채 사라지는 장면은 또렷이 남았다. 그 이후 지구에는 외계인들이 자주 출몰했다. ET, V, 스타워즈 등. 아~ 지구 안밖이 위험하다.
세 번째는 바로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다. 두꺼운 책의 내용은 목성의 ‘찌(floter)’를 만나면서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찌는 목성의 거대한 크기와 엄청난 대기압이 만들어 낸 생명체로 가벼운 수소 기체로 몸이 구성된 상상의 생명체다. 옥상에서 외계인을 기다리던 그 밤에도 그 이후에도 상상 속 외계인은 휴먼이거나 ET이거나 아니면 오징어 비스므리한 것이었다. 적어도 고체와 액체로 이루어진 존재였다는 말이다. 단 한 번도 내게 외계의 존재는 기체인 적이 없었다.
그런데...어머나, 기체로 이루어진 존재라니!!‘이 기체들은 어떻게 사랑을 하지? 어떻게 사회를 구성하지? 생명의 특징은 어떻게 되지? 엔트로피는 어떻게 감소시키지? 그 존재의 단일성은 어떻게 유지되지?’ 끊임없는 의문의 파편들이 여기저기서 튀어 나왔다. 이 의문 또한 지극히 인간적 것이다. 존재에 대한 ‘너무도 인간적인 관념’에 균열이 시작되었다.
다시 그 밤으로 돌아가보자. 어쩌면 나는 다른 경험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너무도 설레던 그 밤, 내게는 평소와 다른 대기가 감싸고 있었다. 도시의 불빛을 가려줄 만큼, 오로지 하늘에만 집중할 수 있을 만큼 다른 기체가 주위에 흐르고 있었다. 알고 있다. 이들은 눈으로, 상상으로 접했던 존재가 아니란 것을. 그저 촉각으로 설레임으로 새로운 변용을 겪는다는 것을.. 그날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