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삶’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두 가지 물음에 봉착한다. 나를 둘러싼 이 세계에 대한 물음과 ‘나’라는 인간 개체에 대한 물음. 이 물음에 대한 답을 고대 스토아주의에서 찾는 철학자가 있다. ‘그리고 나는 스토아주의자가 되었다’라고 선언한 뉴욕시립대학교 철학교수인 마시모 피글리우치다. 그는 유전학, 진화생물학, 철학 분야에서 총 세 개의 학위를 가지고 있다. 많은 책을 저술했으며 대중강연도 수차례 진행하고 있다. 그런 그가 왜 스토아주의자임을 선언했을까?
스토아주의의 핵심 신조 중 하나는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과 그렇게 할 수 없는 일의 차이를 인식하고 그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세계에 대한 이해와 맞물려 있다. 스토아주의는 이 세계를 조화로운 질서정연한 배열로 이해한다. 자연 전체가 이성의 원리로 가득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인간이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영역은 그리 크지 않다.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은 자신의 마음가짐과 태도뿐이다. 따라서 개인이 탐색하고 지켜봐야 하는 영역은 바로 자기 내면의 사유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승진을 기대 중이라고 해보자. 회사에 기여한 업적과 세월, 인간관계 등을 고려해 볼 때 승진을 기대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승진여부는 내일 알 수 있다. 스토아주의의 접근법을 채택한다는 것은 오늘밤 평화로운 잠을 자게 될 것이고 아침에 어떤 결과가 오든 체념이 아니라 확신을 갖고 대면할 준비를 갖추게 될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 확신은 결과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 결과가 자신의 통제 밖에 있다는 데 대한 확신이다. 확신은 내가 나의 능력에 속한 일은 무엇이든 다 했음을 안다는 데 있다. 왜냐하면 오로지 그것만이 나의 통제 하에 있기 때문이다.
혹자들은 스토아주의의 수동성에 비판을 가한다. 사회참여나 공공의 삶에서 한 발 뒤로 물러나 닥쳐온 거대 사회문제에 몸을 움츠리는 철학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스토아주의는 대단히 사회참여적인 철학이었다. 세계 시민으로서 전 인류와 자연에 대한 사랑을 권장했다. 내가 법을 바꿀 수는 없지만 국회의원에게 의견을 제시할 수는 있다. 내가 개혁을 하지는 못하지만, 개혁을 촉구하는 작은 불꽃을 피울 수 있다. 자신의 사유에 집중하라는 충고와 사회적 참여 사이에 일견 모순처럼 비쳐지는 이 긴장감. 이것이 저자를 스토아주의에 끌리게 했다고 한다. 스토아주의 채택으로 유명해진 사람이 있다. 바로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쓴 빅터 프랭클이다. 그는 인간이 처할 수 있는 최악의 조건에서도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을 발견하려 애썼다. 그가 찾아낸 것은 ‘살아야 하는 의미의 발견’이었다. 이것이 그가 수용소에서 살아남았던 이유였고, 생존 후 ‘의미치료’를 개발한 계기였다.
이 책은 시종일관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와 가상대화로 동행한다. 에픽테토스는 BC 50년경 로마 동쪽의 변경지방인 프리기아에서 노예였던 어머니에게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몸이 약한 데다가 다리까지 절었다. 그의 주인은 다행히 관대해 그의 총명함을 아껴 로마로 유학을 보냈다. 주인 덕분에 로마에서 스토아 철학 수업을 듣고 깊은 감화를 받아 평생 철학자로 살아갈 것을 결심한다. 그 후 노예에서 해방돼 철학학교를 세우고 철학을 가르쳤다.
실제 생활에서 스토아주의를 채택했을 때의 해방감은 적지 않다. 특히 어떤 일을 앞에 두고 다수의 의견 대립이 있을 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지? 그리고 내가 어쩔 수 없는 일은 무엇이지?’라는 질문만으로도 어깨의 짐은 가벼워졌다. 혹시 스토아의 지혜가 필요하다면, 에픽테토스라면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하다면 <그리고 나는 스토아주의자가 되었다>의 문을 두드려보실 것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