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마지막이자 또 다른 하나의 시작
여튼 생각보다 점수는 고르게 잘 나와서 선생님들에게 칭찬도 받고 작은 성취감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예비학부는 예비학부 일뿐 본게임이 아직 시작도 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예비학부의 졸업시험은 5월 중순에 있었고 그 후 7월 즈음에 본학부의 입학시험이 예정되어 있었다. 예비학부를 거치지 않고 본학부로 바로 입학하는 건 절차나 시험이 꽤나 까다롭다고 들었는데, 예비학부를 거치면 이 입학시험만 통과하면 된다. 약 두 달이라는 시간이 있었기에 차분히 준비하면 되었지만 인터넷으로 다운 받은 기출문제는 영 사람이 풀 수 있는 것처럼 생기지 않았다. 다행히 모터쇼 티켓을 주었던 지인분께서 그 학과를 먼저 다니고 계셨기에 고맙게도 과외 형식으로 이것저것 알려주셨다. 무언가 어려운 것을 설명할 때 그분의 반짝반짝 빛나던 눈과 아직 우리는 많은 걸 알지 못한다는 그분의 말이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에 난다. 진정한 학자란 이런 걸까 나도 언젠간 학자다움을 조금이나마 갖출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당장은 시험에 집중해야 한다.
입학시험은 예비학부에서 치렀던 시험과는 다르게 실제 러시아인들이 시험을 보는 방식으로 진행이 되었다. 러시아의 시험은 "빌렛(영어론 Ticket)"이라는 독특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데 시험 전에 학생들에게 3-4 배수 많게는 10 배수 넘는 시험 문제를 미리 나누어준다. 학생 수가 10명이라면 교수에 따라 30-40문제를 줄 수도 100문제를 줄 수도 있다. 학생은 시험 당일 예상 문제 중에 한 개를 교수가 보는 앞에서 임의로 선택한다. 다행히 모든 문제에 대해서 공부를 했다면 상관없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자신이 공부한 것을 뽑았다면 행운, 그렇지 못했다면 굉장히 슬플 것이다. 그렇게 문제를 뽑고 나면 학생들 스스로 준비할 시간이 주어진다. 이 시간에 학생들은 종이와 펜을 쓸 수 있고 종이에 자신이 발표할 내용은 정리하여 작성하고 호명이 되면 교수와 1대 1로 앉아서 발표를 하고 교수가 관련 질문을 하고 학생의 발표와 답변을 종합하여 점수를 결정한다. 점수는 5단계 스케일을 적용하고 있는데 실제로는 1점은 주지 않고 2점부터 5점까지가 부여된다. 1점을 주지 않는 이유는 숫자 1이 몽둥이나 말뚝을 연상할 수 있다고는 해서 그렇다 한다. 2점은 미흡, 3점은 양호, 4점은 우수, 5점은 탁월이라는 러시아어로 불리지만 사실 2점을 주는 경우도 거의 없고 3점만 맞아도 양호가 아닌 요구 수준에 못 미친다고 볼 수 있다. 지인분의 노력 덕분일까 다행히 입학시험도 통과하였고 (입학시험은 점수제가 아닌 합불제라서 점수가 나오지 않음) 이제 본게임을 시작할 시간이 되었다. 그전에 잠시 여행을 다녀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