뚱보, 대머리, 술꾼, 다 맞지만
러시아 남성들은 알려진대로 술을 많이 마시고 꽤나 과격하지만 정이 넘치고 친근한 것도 사실이다. 한국어를 배우는 러시아인 남성도 별로 없었고 학과 친구들을 제외하면 상대적으로 그들을 개인적으로 만날 기회도 적었던 것은 사실이다. 내가 겪은 몇가지 사례를 보면서 러시아 남성들이 어떤지 단편적으로나마 살펴보자
모스크바에 살다보면 이런 저런 사람들의 부탁으로 공항에 픽업을 나갈 때가 종종 있었다. 공항에서 모스크바까지 시내까지 걸리는 시간은 대략 한 시간, 택시로 손님들을 안전히 모셔서 시내까지 가는 동안 이런저런 러시아와 모스크바에 대한 설명을 해드렸는데 단골 주제 중 하나는 러시아 남자들의 공격성에 대한 이야기이다. 거리에서 심심치 않게 주먹다짐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 내가 오래 살았으니 사람사는 곳에서야 있을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지만 그 빈도가 많이 다르다는 건 택시에서도 바로 확인 할 수 있는 경우가 많았다. 번잡한 공항 근처에서는 더더욱 본인의 남성성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잘 살펴보면 실제로 싸우는 경우가 있다. 공항 근처 보다도 우리에게 더더욱 조심해야 할 곳은 지하철 역 근처이다. 지금은 아주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늦은 밤 지하철 역 출구를 나와 보드카에 쩔은 러시아인을 보면 살짝 지린다. 그리고 지하철에도 술에 아주 쩔은 러시아인들이 시비를 거는 경우도 있는데, 못이긴다 한 번 참자. 그리고 종종 철없는 대학생들이 술을 마시며 놀고 지하철 역 주위를 배회하다가 폭행을 당하고 금품을 갈취당하는 사건은 너무 많아서 레퍼토리가 지루하다. 밤늦게는 돌아다녀서 좋은 본보기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자.
대학원에서 만난 러시아인 친구들은 정말 순진했다. 우리 반의 반장도 여학생이었고, 대부분의 남학생들은 말이 많지 않았고 같이 식사를 하거나 모임이 있으면 몇 안되는 여학생들이 주도하기가 일쑤였다. 조금 튀는 남학생이 있긴 했는데 엠티를 가던 날 너무 신이 나보이던 그 친구는 호탕하게 술을 먹기 시작했지만 얼마 먹지 않고 바로 뻗어서는 밤새 텐트에서 몇번씩 자다가 일어나서 구토를 했다. 덩치가 좀 큰 친구였는데 토하러 일어날 때마다 텐트를 조금씩 박살냈고 아침에 일어나보니 거의 텐트를 덮고 자고 있었다. 술이 좀 깨니 또 어리둥절한 모습이 아기 불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원에 입학하고 첫 설에는 학교 반 친구들을 한국식당에 초대해서 한 턱 크게 낸 적이 있다. 한국 식당은 여타 다른 식당에 비해서도 가격이 조금 있는 편이었는데 가서 친구들에게 한국 음식도 알려주고 비싼 소주도 좀 사서 먹였다. 쭈뼛쭈뼛하던 불곰 친구들도 술을 조금 먹고 나니 이것저것 말을 많이 하기 시작했다. 평소에 이야기를 많이 안해서 그렇지 알고보면 또 친근한 모습도 많구나 하고 다시금 느꼈다.
하루는 기차를 타고 러시아 남부지역으로 이동 중이었는데 러시아인 가족(아빠, 엄마, 딸)과 같은 칸을 쓰게 되었다. 내가 2층 침대 하나를 사용했고, 그 가족이 1층 두 칸과 2층 한 칸을 사용했다. 러시아 기차의 특성 상 2층에 자리가 있다면 식사할 땐 1층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식사를 하거나 차를 마셔야 한다. 자연스럽게 그 러시아인 가족들이 식사를 할 때 합석을 했고, 가벼운 대화를 주고 받았다. 주로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나누었고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딸래미는 핸드폰으로 무언가를 보느라 바빴다. 그러다 아저씨가 슬그머니 나에게 술을 할 줄 아냐고 물어봤고, 러시아의 보드카를 조금 치켜세워주며 나름 마실 줄 안다고 하였더니 반색하며 바로 보드카를 꺼냈다. 아주머니의 레이저를 나도 느낄 수 있었으나 이 참에 한국인의 내공을 보여주고자 한 잔 두 잔, 주거니 받거니 술 잔이 계속 오고 갔다. 기어코 한 병은 금새 비웠고 아저씨가 호탕하게 웃으며 "이 친구 마실 줄 아는구만"하며 다음 역에 기차가 정차 했을 때 나가서 보드카를 한 병 더 사왔다. 술과 함께 먹을 것도 나눠먹으니 기차 여행이 짧게만 느껴졌다.
도시에서도 돈 별로 안들이고 즐길만한게 없지만 시골에서는 더더욱 즐길게 없다. 한 번은 러시아 친구의 초대로 친구의 고향인 카프로프라는 작은 도시(사실 시골임)에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친구의 아버지의 권유로 러시아식 사우나인 "반야"를 체험해 볼 수 있었다. 그 아저씨는 본인의 친구와 그 친구분의 자제분들까지 데리고 왔는데 함께 리얼 러시아식 사우나를 체험 할 수 있게 해주었다. 기본적으로 반야는 건식 사우나이지만 열이나는 통 위의 돌이 있는데 그 위로 물을 뿌려 습식으로 만들 수가 있다. 이 습한 증기나 올라 올때 잎이 있는 나뭇가지 등으로 증기를 부채질로 끌어다가 누워있는 사람에게 가져주는데 정말 너무나도 뜨거웠다. 몇 번이나 했을까 한겨울인데 이젠 또 밖으로 나가란다. 밖에 있는 욕조에는 물이 받아져 있었지만 날이 추워 이미 표면은 꽝꽝 얼어 있었다. 그 얼음을 깨더니 나보고 들어가라고 했다. 잠시 들어갔다 나오니 눈위로 뒹굴거려야 한다고 해서 그것도 하고나니 다시 사우나로 들어오랬다. 이렇게 두 세번 반복하면 다시는 감기에 안걸린다고 하여 그렇게 했지만 5년이 지난 지금 난 감기에 걸린다.
한 겨울 밖에서 러시아인이 자동차로 끌어주는 썰매도 타본적이 있지만 러시아 남자들은 주로 술 마시고 카드 게임하는 걸 좋아한다. 시골에는 집집마다 제조법이 조금씩 다른 사마곤을 가지고 있긴한데 도수는 정확히 몰라도 40도는 넘을거라 했다. 보드카나 사마곤을 마시면서 러시아식 카드게임인 두락을 즐길 줄 안다면 그들과 충분히 섞일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