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로 향하는 비행기, 그리고 혹독한 신고식
개인적인 사정으로 아내보다 이틀 먼저 출국하게 되었다. 인천국제공항에는 어머니와 동생이 나와주었고 작별을 한 뒤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군인정신이 몸에 밴 나는 예비학부를 포함한 3년간의 석사과정을 마쳐야 하는 임무(?)를 완수해야 했기에 비장한 마음으로 비행기 좌석에 앉았다. 하지만 부모형제, 친구들을 못 본다는 생각이 나서 그런지 낯선 땅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인지 눈물이 났다. 비행기 출발 전 기내방송이 나왔을 때가 ‘드디어 정말 떠나는구나’ 하는 마음에 제일 많이 울었다.
기분이 조금 안정되나 싶을 때, 비행기 내에는 기내식이 나왔다. 승무원의 식사와 함께 어떤 음료를 마시겠냐는 질문에 나는 뭔가에 이끌린 듯 와인을 달라고 했다. 왠지 알콜이 조금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와인을 마시고 나니 한 번 더 이유 모를 슬픔과 두려움이 울컥했다. 가까스로 스스로를 다독이고 나니 잠이 몰려왔다. 14시간의 비행 동안 기내식은 두 번 나온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안정된 고도에 접어들었을 때와 목적지 도착 전이다. 첫 기내식을 먹고 다음 기내식이 나올 때까지 잤으니 꽤나 잘 잔 셈이다. 두 번째 기내식이 나왔을때도 비슷한 일이 반복되었다. 또 와인을 주문했고 와인과 식사를 마치고는 또다시 한 번 울컥하고는 착륙할 때까지 잠을 잤다. 먹고 울고 자는 걸 반복하니 14시간의 비행이 짧게 느껴졌고 어느새 모스크바 셰레메티예보 국제공항에 도착해 있었다.
한국에서 몇 개월 공부했던 러시아어로는 모스크바 현지인의 말을 거의 알아듣지 못했다. 그래도 공항에서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택시 호객행위를 한다는 건 알 수 있었다. 나는 미리 모스크바 국립대 학생회의 입학안내 서비스를 신청했기에 마중 나온 사람이 있었고 안전하게 모스크바 시내 근처에 있는 기숙사까지 일행과 이동할 수 있었다. 공항에서 기숙사까지는 약 한 시간 조금 넘게 걸렸는데 택시 안에서 본 모스크바의 풍경은 모든 게 다 신기할 따름이었다.
도착한 기숙사는 지하철이 바로 옆에 있는 역세권 중의 역세권이었다. 말이 기숙사지 사실상 방이 두 개인 아파트였다. 각 방에는 두 명씩 들어갈 수 있었으니 한 호수에는 학생 네 명까지 살 수 있었다. 방 하나에는 나와 나보다는 대여섯 살 어린 룸메가 들어갔고, 다른 방에는 운 좋은 한국인이 혼자 방을 쓰게 되었다. 방은 온통 오래된 목재로 되어 있었다. 나무로 된 침대에는 침대보와 담요가 있었는데 모두 정말 너무 오래되어서 사용할 수가 없었다. 특히 담요는 엄청 두껍고 까끌해서 바로 옷장 구석에 보관해 두었다. 한국인의 눈에는 턱없이 추레하고 더러워 보여도 해당 기숙사는 그나마 깨끗하게 관리가 잘 된 편이라고 들었다. 다른 기숙사에는 화장실 변기에 엉덩이를 대고 앉는 물건이 없는 경우도 많았고 (개인 것을 사용한다고 함) 바퀴벌레도 나오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그리고 한 방에 6명까지도 들어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 책상은 4개 밖에 없어서 두 명은 방에서 공부를 할 수 조차 없었다. 상대적으로 깨끗한 방과 2인실의 기숙사에서 살게된 우리는 정말 운이 좋은 편이었다.
방을 조금 둘러보고는 당장 급한 물부터 해결을 해야 했다. 대부분의 유럽처럼 수도꼭지를 틀면 나오는 물은 모두 석회질이기에 요로결석의 이유로 함부로 마시지 말라고 했다. 수돗물을 유리컵에 받으면 둥둥 떠다니는 흰색의 부유물이 보였고, 물을 끓이거나 증발시키면 테두리 부분이 허옇게 남았다. 누군가는 그래도 우리 몸에는 괜찮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정말 마시고 싶지 않았다. 필요한 물과 간식을 샀고, 잠시 혼자 밖에 나가 모스크바의 밤하늘 아래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제 진짜 러시아 생활을 시작하는구나. 과연 어떤 모험이 기다리고 있을까’, 설레는 마음과 미지의 불안함이 교대로 나를 어지럽히던 밤이었다. 별로 아늑하지 못한 기숙사에서의 첫날밤이었지만 하루 종일 새로운 곳에서의 생활에 잔뜩 긴장했다가 마음이 놓여서인지 잠은 잘 잤다.
러시아의 대학/대학원에 진학하기 위해선 예비학부를 거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함께 온 사람들도 모두 예비학부를 거쳐 대학 또는 대학원에 진학하려는 사람들이었다. 예비학부를 등록하려면 러시아어 공증을 받고 여권 복사본을 러시아어로 번역하여 제출해야 했다. 다른 나라의 공증과 번역은 인정해 주지 않기에, 아무리 대한민국 국방부가 보증하고 국제여권이 증명하더라도 구소련의 잔재가 가득한 러시아의 낡은 행정 시스템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다음으로는 대형마트에 가서 필요한 물품들을 구입했다. 특히 이불과 베개는, 러시아 생활이 아무리 험난하더라도 최소한 잠자리만큼은 나를 배신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최대한 포근하고 푹신한 것으로 신중히 골랐다.
아내는 예정대로 내가 러시아에 오고 이틀 뒤에 왔다. 그래도 이틀 먼저 러시아에 온 ‘선배’로서 어깨에 힘을 잔뜩 주고 의기양양하게 공항으로 향했다. 겨우 이틀 만에 보는 거였지만 심적으로 의지할 사람이 생겨서 그런지 아내가 매우 반가웠다. 내가 오는 날 도와준 사람의 말로는 3만원 이상 절대 주지 말라고 해서 호객행위 하는 사람들이 금액을 부를 때마다 거절했다. 하지만 어떤 호객꾼이 곧잘 3만원에 해주겠다고 하여 이 호객꾼에게 가격을 지불하고 그 택시를 탔다. 그때만 해도 모든 게 잘 풀리나 싶었다. 하지만 이건 러시아를 만만하게 본 크디큰 오산이었다.
일절 말이 없던 택시기사는 기숙사에 도착하니 돌연 택시비를 요구했다. 택시비를 이미 냈다고 하니, 그건 중계료이고 택시비가 18만원이 나왔으니 내라고 한다. 아는 한국 사람에게 전화해서 도움을 요청했으나 역시 쉽지 않았다. 이런 택시기사들이 러시아 마피아와도 연결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고 하기도 하고, 이제 막 도착했는데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아 비용을 지불할 수밖에 없었다. 흐린 하늘과 추운 날씨, 불친절한 사람들, 나의 멍청함으로 인한 사기, 이 모든 것들이 러시아의 첫인상을 망치기에 충분했다.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하니 앞으로 남은 3년이 막막하기도 했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만 이 낯선 곳,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무사히 원하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다 사람 사는 곳인데’하는 스스로의 위안을 했다. 그렇게 러시아에서의 첫 며칠은 분노와 다짐 속에 빠르게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