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차 예비학부 2화, 모스크바가 모스크바 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하는 법

by JNP

내 예비학부 등록은 모스크바 국립대 학생회에서 도와줘서 잘 처리가 되었다. 이제 그때의 경험을 되살려서, 그래 봐야 고작 이틀 전이지만, 아내의 예비학부에 등록도 도와줬다. 예비학부에서는 여러 기숙사를 배정해 주는데 등록과정에서 우리가 부부임을 밝혔더니 다행히도 같은 기숙사에 배정을 해주었다. 예비학부가 제공해 줄 수 있는 기숙사에는 여러 종류가 있었고 서로 위치도 상태도 제 각각이었다. 아내가 등록할 당시 그들이 제안한 기숙사는 부부가 같은 방에서 지낼 수 있는 가족 전용은 아니었지만, 가족기숙사보다 오히려 더 깨끗하다는 말과 저렴하다는 말에 솔깃해진 우리는 예비학부 1년 간은 해당 기숙사에 머물기로 했다.


모스크바의 지하철은 우리나라의 서울 2호선처럼 순환하는 노선이 있다. 다만 순환 고리가 2호선 보다는 훨씬 작다. 이 순환 고리는 방사형으로 뻗어나가는 모스크바의 지하철의 허브 역할을 하는데 우리 기숙사는 이 고리로부터 2 정거장만 떨어져 있었고, 지하철에서 기숙사까지 걸어서 1-2분이면 도착하는 말 그대로 초역세권이었다. 아내는 나와는 다른 층에 2인실 방을 배정받았는데 다행히 오기로 했던 룸메가 오지 않는 덕에 아내는 넓은 방을 혼자 쓰게 되었다. 공부해야 하는 시간이 많아 서로 바빴지만, 틈이 날 때마다 아내 방에 놀러가는 것이 최고의 힐링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애틋하기까지 하다.


이전 글에서 이야기 했듯 우리가 머물었던 기숙사는 한 호수에 두 개의 방이 있었는데, 아내와 같은 호수 하지만 옆 방에는 일본인 여학생이 살고 있었다. 그 학생은 은둔형 외톨이, 속칭 '히키코모리'로 보였다. 방은 다르지만 주방과 화장실을 아내와 같이 쓰는데 마주치는 일이 거의 없고 계단에서 마주쳤더니 '스미마셍'하면서 도망쳤다. 주방을 쓰지도 않았고 방에서 조차 잘 나오지도 않았다. 사회 생활을 전혀 하는 것 같지 않는 듯했다. 사실 너무 쥐 죽은 듯 조용해서 방에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을 때가 많았지만 말이다. 덕분에(?) 아내는 기숙사를 거의 단독주택처럼 편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이 일본인 친구는 무슨 사연으로 이렇게 먼 러시아까지 와서 공부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잘 마치고 갔길 바랐다.


나의 룸메는 나보다 몇 살 어린 친구였는데 (앞으로 P군이라 칭하겠다), 키도 훤칠하고 인물도 좋았다. 영어도 무척이나 잘했고 사교성도 좋아서 나는 그 친구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그 외에도 공항에서 같이 만났던 일본어를 잘하는 S양이 있었는데, 자세한 이야기는 이후에 기술하겠지만 아내와 함께 그 친구들과 좋은 추억들을 많이 쌓을 수 있었다. 그렇게 한국 친구들도 사귀었고 (늦은 나이에 오느라 대부분 동생들이었지만), 한국어를 배우는 러시아 친구들도 사귈 수 있었다. 러시아에서는 구글 대신 얀덱스(yandex)라는 사이트가 우리의 네이버와 같은 역할을 하고, vk(vkontacte)가 우리의 카카오톡과 비슷한 역할을 한다. 구글이 구글 맵과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듯이, 러시아에서는 얀덱스가 각종 서비스들(얀덱스 택시, 얀덱스 지도)을 제공한다. 이러한 서비스 앱을 설치하면서 나도 서서히 러시아 현지인 패치를 해 나가고 있었다.


러시아에서는 학생이라는 신분은 조금 무시받는 분위기가 있다. 학생이라는 이유 하나 만으로 어른으로 대접받지 못하고 가벼운 훈계 혹은 꾸지람부터 욕설까지 부당하게 당하기도 했다. 물론 학생이기에 누릴 수 있는 혜택도 굉장히 많이 편이긴 하다. 대부분의 관광지에서 할인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물론 한 달에 만원도 안 되는 금액으로 모스크바 시내의 거의 대부분의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도 있다. 이러한 할인은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곳에서도 적용이 되었다. 한 번은 경찰에게 차선 위반으로 걸렸는데도 학생증을 보여주니 벌금을 할인해 주었다. 물론 공식적인 벌금은 아니고 뇌물이었지만 말이다. 이렇게 짧게 기술하기에는 아주 아까운 소재이기 때문에 러시아 여행 편에서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다.


한 번은 정말 기분 나쁜 경험이 있었다. 실수로 열쇠를 방에 두고 나왔고 룸메가 방을 잠그고 나가 사감에게 방을 열어달라고 부탁을 한 적이 있었다. 벌금을 내야 한다거나 경고를 준다거나 하면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장장 10분 동안 훈계를 들어야만 했다. 또 한 번은 별거 아닌 일로 또 훈계를 하려는 사감에게 대든 적도 있었는데 오히려 그 후의 삶이 더 편해졌다. 이런 러시아인들의 약강강약(약자한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한) 태도는 러시아에 머무는 동안 나의 심기를 자주 건드렸다.


러시아에서는 심지어 러시아인들 조차 이런 말을 사람들이 자주 한다고 한다.


Это Москва, (This is Moscow. )


이 말인즉, 좋은 뜻이든 나쁜 뜻이든 모스크바는 원래 그렇다. 그러려니 해라. 그만큼 다르다는 의미이자,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는 뜻으로 말하는 거겠지만, 막상 살다 보면 나쁜 상황에 더 자주 쓰게 된다. 요즘 말로 바꾸면 "모스크바가 모스크바 했네." 정도라고 할까.

화, 목,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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