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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재희 Jul 18. 2019

드라마 보좌관 - 돌직구, 미드, 추노

미쿡 본토 스타일로 만든 김치 버거

TV 드라마를 실시간으로 정주행 한 경험은 많지 않은데 실로 오랜만에 그런 작품을 만났다. 시즌 1 10부작으로 짧고 강하게 몰아친 구성이 내 취향에 맞았던 것도 있다. 드라마 '보좌관'은 내 기대보다 더욱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복합적인 작품이었다. 몇 가지 짧은 감상을 적었다.



1. 한국 정치를 향한 돌직구 

내가 현재 이 시점의 대한민국에 대해 가장 마음에 들고 살짝 자랑스럽기까지 한 점 중 하나는 바로 대중문화에서의 표현의 자유, 즉 작가들이 할 말을 눈치 안 보고 시원하게 지를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동쪽 이웃처럼 권력자의 심기를 건들지 않기 위해 알아서 눈치를 보거나 서쪽 이웃처럼 서슬 퍼런 검열과 통제의 칼날 하에 있는 사회였다면 마음이 심히 답답했을 것이다). 그런데 드라마 보좌관은 그런 내가 기대한 정도를 뛰어넘었다. 시원하게 지르는 수준을 넘어 그야말로 한국 정치의 '팬티까지 벗겨먹으려' 한다 (극 중 송희섭 의원의 대사). 

 

국민들 생각은 1g도 없이 오로지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합집산하는 국회의원들, 5천만 원을 불법으로 받았고 결국 그것이 부끄러워 자살을 택한 국회의원, 마티즈 안에서 번개탄으로 자살당한 등장인물 등 소재 측면에서 거의 금기가 없는 수준이다. 물론 현실을 소재로 가져다 썼다고 해서 드라마가 사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 작품은 어디까지나 자극적인 픽션이며 영화 '1987'과 같이 역사적 사실을 최대한 다큐적으로 그리려는 시도 같아 보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TV 드라마가 누군가에게는 꽤나 불편할 수 있는 이러한 내용들을 꽉 찬 직구로 뿌려대고 있다는 점으로도 의미가 있다. 불편한 주제들이 사회에서 더 논의되고 재조명될수록 앞으로 그러한 불편하고 주제들이 당연한 듯이 반복될 위험을 조금이나마 낮춰 준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예상보다 적게 나온 드라마의 시청률과 화제성이 안타깝다. 


2. 미드 스타일을 충실하게 재현한 자극적인 구성

내가 소싯적 처음 '24'를 보면서 미드에 빠져들었던 때부터 지금까지 크게 히트한 미드들의 공통점은 바로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자극적인 구성이다. 반전과 반전을 거듭하는 속도감 있는 구성에 주요 등장인물들을 예상치 못한 시점에 하나씩 죽여 가면서 충격과 공포를 안겨주는 미드의 공식. 많은 인기 미드는 마치 미국에서 맛있다고 뜨는 맛집의 레시피처럼 만들어진다 (많은 미국의 'American' 맛집들은 마치 은은하거나 담백한 맛 같은 건 없다는 듯 설탕과 버터, 소금을 눈치 안 보고 때려 박아 '이래도 맛이 없어?' 같은 느낌의 음식을 내놓는다). 이것이 꼭 따라 할 가치가 있는 훌륭한 작법인지는 논의의 여지가 있으나 시청자들의 이목을 끌고 화젯거리를 만들며 전 세계 시청자들로 하여금 찾아보게 만드는 함이 있는 것은 자명하다. '보좌관'을 보니 이제 한드도 마음먹고 미드 수준으로 강한 재료를 때려 박은 음식을 만들겠다고 선언하는 것처럼 보인다. 


Kpop은 미국 음악 트렌드를 잘 들여와 한국 스타일을 맛있게 버무려서 크게 성공했다. 한국 드라마는 물론 지금도 전 세계의 시청자들에게 영향력을 갖고 있지만 Kpop과 비교하면 좀 더 한국적인 스타일을 고수해 왔고 주 시청자층도 그런 한국 스타일을 좋아하는 팬층 (한국 스타일의 사랑 이야기가 와 닿고 송중기 공유가 너무 멋있다고 느껴지는 팬층)에 소구해 온 것으로 느껴진다. 이제 이 드라마처럼 좀 더 미드 흉내를 더 잘 내는 작품이 늘어난다면 한드가 좀 더 폭넓은 관객층 (아기자기한 것보다 선 굵은 것을 선호하는 서구권/남성 시청자들)에게도 어필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3. 추노 감독의 연출과 배우들의 명연기

내가 한국 드라마 중 가장 재미있게 보았던 작품 중 하나가 곽정환 감독의 '추노'다. 이 작품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처럼 디테일이 살아있는 완성도 높은 작품은 아니었다. 중간중간에 어설프거나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장면들도 분명히 있지만 확실한 볼거리, 대중적인 재미를 갖추고 있으면서도 철학적 깊이도 놓치지 않는 연출, 매력적인 캐릭터들이라는 3박자가 맞아 들어가면서 인기를 끌었다. 보좌관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최고의 정치 전략가이자 첩보원 수준의 정보력을 갖추고 서울 시내에서 자동차 추격전까지 할 수 있는 수준의 슈퍼히어로가 왜 10년 동안이나 여의도에서 보좌관을 하고 있는지 납득이 안 가는 설정과 매회 엔딩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감수성 풍부한 사운드트랙이 드라마 분위기와 참 맞지 않아 아쉽지만 이정재로 대표되는 볼거리와 재미와 철학적 질문을 동시에 던지는 연출, 그리고 색깔 분명한 매력적인 캐릭터들로 인해 역시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매력적인 캐릭터 설정은 또한 배우들이 역할을 마음껏 표현해 내며 명연기를 보일 수 있는 판을 깔아준 것이 아닌가 한다. 다소 전형적이었던 이성민 의원 캐릭터 (뭔가 상징적인 캐릭터를 만들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정도를 제외하면 등장하는 주요 캐릭터들 모두 개성이 확실했고 배우들은 몸에 맞춘 듯 매력적인 연기를 선보일 수 있었다. 빛난 연기자들이 많지만 아무래도 송희섭 의원 역을 맡은 김갑수 배우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대체 이번에는 왜 빨리 죽어버리지 않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비열하고 냉혹한 권력자이자 동시에 가벼운 양아치 같은 인간, 에고가 강하면서 동시에 에고가 없는 캐릭터를 실감 나게 연기했다.


4. 시즌2

11월에 나올 시즌2가 기대된다. 하지만 이 작품이 미드를 연상시켜서인지, 시즌이 거듭될수록 더 강한 자극들을 끼워 넣느라 막장으로 가는 경우가 많은 미드의 전철을 밟을까 우려도 된다. 시간을 좀 두고 만드는 만큼 시즌 1보다 좀 더 진중하고 완성도 있는 작품이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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