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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재희 Oct 06. 2019

카오위(烤鱼/烤全鱼)

강렬한 비주얼의 생선구이/전골

생선구이?

중국 상해에서 일하던 시절, 점심시간이면 함께 일하던 명이 함께 점심 먹으러 가는 일이 잦았다. 하루는 현지 직원이 내게 물었다. 카오위(烤鱼) 어때? 카오위는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생선구이라는 뜻이다. 뜻을 듣고 나서 나는 한국에서 직장 생활할 때 종종 먹던 고등어 삼치구이 같은 것을 떠올렸다. 생선구이 좋지. 그랬더니 내가 생각하는 그런 건 아니고 좀 다르다고 하는데 정확히 어떤 건지 잘 이해는 안 되어서 일단 가서 먹어 보기로 했다.


회사는 상해 푸동의 빌딩가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10분만 걸어가면 음식점이 많은 동네길이 나왔고 우리가 갈 카오위 집도 그곳에 있었다. 도착해서 보니 가게 앞에 수조가 있고 시커멓고 큼직한 살아 있는 생선들이 들어 있었다. 여기서 먼저 구워 먹을 생선의 크기와 종류를 고르는 것이었다. 회로 먹을 생선을 눈앞에서 고른다는 이야기는 들어 봤어도 구워 먹을 생선을 고르는 것은 들어본 적이 없어서 새로웠다. 더군다나 마음먹고 수산시장에 나오거나 한 것도 아니고 그저 회사에서 일하다 점심시간에 나와서 살아있는 생선을 골라 구워 먹게 될 줄은 몰랐기에 느낌이 더욱 신선했다. 생선 종류는 니앤위(鲶鱼)와 헤이위(黑鱼) 등이 있는데 많이들 먹는 생선은 니앤위라고 해서 그걸 골랐다.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다시 물어보니 이 카오위라는 것은 생선을 한번 불에 구운 이후에, 이걸 다시 국물에 넣고 살짝 끓여서 샤브샤브 스타일로 이것저것 토핑을 첨가하여 넣어 먹는 음식인 것 같았다. 생선구이와 돈카츠 나베를 합쳐놓은 건가... 한국에서는 본 적이 없는 스타일이라 기대가 되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니앤위는 메기, 헤이위는 가물치였다. 즉, 우리가 먹은 음식은 메기구이 전골 정도 되겠다). 이윽고 메인 메뉴가 서빙되었는데...


주문하신 헤비메탈 생선구이 땋! 


강렬한 비주얼이 인상적이었다. 납작하고 큰 냄비 위에 시커멓고 큰 생선 한 마리를 통째로 구워 올려놓고 그 위에 토핑으로 시뻘건 고추를 도배하듯이 덮어 놓은, 마치 헤비메탈 같은 느낌의 비주얼이었다. 엄청 매워 보이는 비주얼이지만 사실 중국음식에 종종 등장하는 저 홍고추 더미는 가볍고 경쾌한 매운맛을 더해 줄 뿐 그 자체로 음식을 그리 맵게 만들지는 않는다. 한국의 매운탕처럼 속이 후끈해지는 얼큰한 매운맛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맵지 않다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생긴 것은 무시무시하지만 살이 부드럽고 기름진 메기는 이 요리에 아주 잘 어울렸다 (나중에 가물치로도 먹어 봤지만, 아무래도 메기로 조리해 먹을 때의 느낌이 더 좋았다). 불에 한 번 구운 생선이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바삭함도 있고 소위 ‘불 맛’도 났다. 마음대로 고를 수 있는 각종 사리 (부재료)도 즐거웠다. 거의 샤브샤브 집과 다르지 않은 부재료 구성이 제공되어 자유롭게 골라 넣으면 되는 시스템이었는데 각종 버섯 (표고, 송이, 실 버섯, 목이버섯 등), 두부 종류 (일반 두부, 말린 두부, 얼렸다 녹인 두부, 두부껍질, 유부 등), 야채, 어묵 등을 폭넓게 고를 수 있어 나만의 생선구이 전골을 만들 수 있었다. 고추기름이 흐르는 큼직한 생선 살과 야채를 흰 밥에 올려 먹을 때의 만족감은 오전 업무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기에 충분했다. 


모두들 아주 만족스러운 식사를 한 후, 이 메뉴는 우리 회사의 단골 메뉴 중 하나로 올라가게 되었다. 하지만 왕복 거리가 꽤 되는 데다 요리가 나오고 식사를 하는 데까지도 시간이 꽤 걸릴 수밖에 없는 메뉴인 관계로 점심시간에 자주 먹으러 가기가 힘들었다. 이따금씩 점심 전후로 다들 스케줄에 여유가 있는 날에 맞추어 가면서 좀 더 다양한 시도를 하기도 했다. 사실 생선 위에 끼얹는 토핑은 홍고추 말고도 다양한 맛이 존재했다. 홍고추에 청고추를 섞는다던가 땅콩을 섞는다던가 하는 것 외에도, 예컨대 춘장을 만드는 검은콩과 샐러리 조합의 토핑도 있었는데 샐러리 특유의 향이 걱정되었으나 생각보다 괜찮았다. 매운맛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 적절한 것 같았다. 


조금 덜 무시무시한 스타일의 카오위 요리
맵지 않은 토핑의 카오위 요리


오랜만에 돌아와서 먹고 싶은 음식

그런데 이 메뉴는 북경오리나 샤오롱바오처럼 유명하지도 않고, 훠궈처럼 친숙하지도 않고, 서너 명은 모여야 조합이 맞고, 또한 비주얼이 깔끔하거나 아름답지도 않은 관계로 회사 점심시간 이후에는 좀처럼 먹기가 쉽지 않았다. 꽤 친하거나 이 음식을 잘 아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예컨대 비즈니스 디너 또는 한국에서 온 손님들과 함께 카오위를 먹으러 갈 일은 없었다. 그러다 내가 중국을 떠난 이후로는 이 음식을 먹기는커녕 구경할 일도 없었다. 일단 이 메뉴는 상당히 로컬스러워서 미국에 있는 중국 음식점에서는 거의 취급하지 않는다 (미국에 한국식당은 많지만 예컨대 민물장어 집을 찾기는 매우 어려운 것과 비슷할까). 그렇게 중국 생활을 정리하고 미국에 2년 정도 살고 나니 상해가 너무 그리웠다. 그래서 여름휴가를 맞아 한국에 들어가면서 굳이 상해를 끼워넣기로 했다. 나를 반갑게 맞아 준 옛 회사 동료와 재회하여 서로의 즐겁게 담소를 나누다 슬슬 저녁 먹을 때가 되었는데 오랜만에 여기 와서 먹고 싶은 게 뭐냐는 질문에 고민 끝에 떠오른 음식이 바로 카오위였다. 너랑 이렇게 아니면 이걸 먹을 일이 없어… 흔쾌히 수락한 옛 동료와 함께 오랜만에 카오위를 먹었다. 옛 추억을 불러오는 맛이었다. 두 명이서 먹는 거라 크기도 작은 생선을 골라 부재료도 거의 없이 먹기는 했지만 그리웠던 옛 시절이 잠시 돌아온 듯한 느낌이 들어 좋았다.


두 명이서 조촐하게 먹으면 이런 느낌


그리운 음식

내가 이때 이후로 카오위를 먹은 마지막 순간은 그로부터 또 한 2년 정도 후, 부모님과 함께 떠난 중국 효도(?) 여행에서였다. 하루 종일 돌아다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저녁으로 뭘 먹고 들어가면 좋을까 고민하던 차에 우연히 마주친 카오위 식당을 보고 조금의 고민도 없이 부모님을 모시고 들어갔다. 다행히 두 분 다 좋아하시면서 맛있게 잘 드셨다. 이걸 마지막으로 나는 아직도 카오위를 먹지 못하고 있다. 보통 셋 이상은 모여야 제대로 느낌을 내며 먹을 수 있는 음식인지라 중국에 스탑오버 등으로 잠시 들를 일이 있더라도 먹기가 쉽지 않다. 내 생각에 친구들과 모여서 술 한잔 하면서 먹기에 딱 좋은 음식인데, 다들 뿔뿔이 흩어져 사는 친구들과 1년에 한 번 모이기도 쉽지 않다. 게다가 카오위는 중국을 나오면 아예 찾아보기도 쉽지 않은 요리인 데다 나는 심지어 미국 거주 중이니 당분간 이걸 먹을 일은 없어 보인다. 먹고 싶은 음식이 있는데 사정상 못 먹는 것, 당분간 먹을 가능성 자체가 없다는 것도 참 아쉬운 일이긴 하다. 가족을 데리고 중국에 가야 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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