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육즙을 머금은 이 만두의 매력
딘타이펑
샤오롱바오(소룡포)를 처음 접한 것은, 많은 한국사람들이 마찬가지겠지만, 대만 음식점인 딘타이펑을 통해서였다. 명동 근처에 있던 딘타이펑(아마도 1호점?)에서 처음 먹어보았고 그 즉시 팬이 되었다. 그래서 이후에 많은 지인들을 데려가곤 했는데, 너무 느끼하다고 싫어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함께 팬이 되었다. 일단 딘타이펑의 샤오롱바오는 너무 잘 만들어서 웬만해서는 싫어하기 힘들다는 게 내 생각이다. 한 입에 들어가는 작은 크기에, 아주 얇으면서도 국물을 잘 머금고 있는 쫄깃한 만두피, 장인의 손기술로 정성스럽게 빚어낸 주름, 입 안에서 터지는 국물과 고기 소의 진하고 풍부한 맛…
딘타이펑의 샤오롱바오는 물론 훌륭하지만 사실 오리지널은 아니다. 샤오롱바오는 원래 중국 상해 지역의 음식인데 딘타이펑은 사실 대만 음식점이다. 군생활을 마치고 자유를 만끽하기 위해 떠난 배낭여행의 행선지로 홍콩과 상해를 선택한 나는 현지 음식을 먹을 생각에 흥분했다. 하지만 아직 국제 입맛이 개발되어 있지 않았던 나는 중국 음식 특유의 향과 특이한 재료들 때문에 다소 고전하였는데 그래도 맛있게 먹었던 것은 샤오롱바오였다. 당시 상해 위위안에서 줄 서서 사 먹었던 오리지널 샤오롱바오는 크기가 좀 더 크고, 만두피도 얇지 않았다. 딘타이펑에서의 섬세한 샤오롱바오에 비하면 대충 빚어 쪄낸 느낌이었다. 하지만 맛은 있었다. 확실히 크기가 커져서인지 입 안에 느껴지는 만족감이 좀 더 컸다. 여행 이후 한국에서 샤오롱바오가 생각나면 다시 딘타이펑에 갔지만 생각날 때마다 쉽게 갈 수 있는 동네 음식점이 아니다 보니 아무래도 1년에 한두 번 정도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상해 주민이 되어
그렇게 시간이 흘러 대학 졸업을 하고, 회사에 다니다 예상치 못하게 중국 상해에 부임하여 일하게 되었다. 상해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먹고 싶었던 것이 바로 샤오롱바오였다 (물론 다른 음식이 뭐가 있는지 잘 모르기도 했다). 현지 직원에게 가까운 샤오롱바오 집이 어디냐고 묻자 데려간 곳이 회사 뒷골목의 ‘수저우 탕바오’라는 분식집이었다. 상해 샤오롱바오 집에 가자고 했는데 이건 수저우 만두집이잖아 했더니 돌아온 대답이 그거나 그거나 같은 거라고 했다.
나는 정통 상해 샤오롱바오를 먹고 싶었기 때문에, 뭔가 원했던 그림이 아니라 미심쩍어했지만 이윽고 서빙된 만두를 먹어보고는 의심을 깨끗이 지울 수 있었다. 모양과 맛 모두 내가 기대하던 바로 그 샤오롱바오였다. 다만 국물이 너무 뜨거워 입을 델 뻔했다. 탕바오(汤包)는 국물(탕)이 들어있는 포자만두(바오즈)라는 뜻이다. 딘타이펑의 샤오롱바오보다 크기가 큰 데다 말 그대로 국물이 가득 들어 있어서 방금 서빙된 뜨거운 만두를 그대로 베어 물거나 입에 통째로 넣었다가는 참사가 일어날 수 있다. 상해인 직원이 나에게 현지인들이 먹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샤오롱바오를 수저에 얹고 옆구리를 살짝 베어 물어 터뜨린 후 국물을 쪽쪽 빨아먹고 나서 남은 만두를 검은 식초와 생강 채에 찍어 먹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하면 만두를 먹을 때 입에서 국물이 터지는 강렬한 맛이 줄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지만 뭐, 그렇게까지 따지면서 먹지 않아도 충분히 맛있었다. 사실 가게가 너무 허름해서 큰 기대를 하지 않았었는데 기대 이상이었던 데다 가격도 너무 싸고 분위기가 완벽한 현지인 식당이어서 나는 금방 신이 났다. 그리고 추가로 게 분말이 들어간 샤오롱바오(蟹粉小笼)도 시켰는데 이것 역시 게 향이 고기 맛과 잘 어우러져 맛있었다.
그리하여 이 수저우 탕바오 집은 우리의 단골 점심 코스가 되었다. 자주 먹다 보니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샤오롱바오를 포함해 중국의 만두집에 가면 테이블에 검은 액체가 담긴 통이 있는데 이건 간장이 아니라 식초다. 상해인 직원에게 왜 중국에서는 간장이 아니라 식초를 찍어먹니 라고 물었더니 황당해하면서 한국에서는 왜 식초가 아니라 간장에 찍어먹냐고 되물었다. 이건 서로에게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당연한 것이라 해답을 찾을 수 없었는데 중국에서 만두를 많이 먹어보다 보니 자연스럽게 답을 찾을 수 있었다. 한국의 만두는 고기만두라고 해도 만두소에 고기와 야채를 섞어 넣고 만두소에 국물이 없게 만들기 때문에 보다 담백한 맛이다. 그래서 간장을 찍어 먹으면 좀 더 맛에 엑센트를 줄 수 있다. 반면 중국의 만두는 고기만두라고 하면 거의 고기만 들어있다. 게다가 샤오롱바오의 경우 특유의 국물을 만들기 위해 빚어넣을 때 굳은 지방을 추가한다. 그래서 쪄내고 나면 담백하기보다는 진하고 풍부한 맛이 나기 때문에 식초를 찍어서 그 맛을 중화시켜 주는 것이다. 샤오롱바오를 자주 먹다 보니 식초를 찍어먹는 것이 점점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왜 ‘수저우 탕바오'집이 샤오롱바오를 잘하는지에 대해서도 곧 알게 되었다. 수저우는 상해 근처의 쟝수성의 도시인데 쟝수성과 상해, 그리고 항저우가 있는 저장성은 한 지역권으로 ‘쟝저후'라고 불릴 정도로 비슷한 문화권이다 ('후'는 상해를 일컫는 한 글자 말). 알고 보니 이 샤오롱바오는 원래 쟝수성의 창저우라는 지역이 원조였고 그 이후 같은 쟝수성의 우시, 상해의 난샹 지역 등에서 각기 유명세를 타면서 ‘쟝저후' 전체 그리고 중국 전역으로 퍼져 나간 것이었다. 이후에 현지 파트너 회사에서 본사로 초대를 받아 우시에 가게 되었는데 그곳의 샤오롱바오를 먹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우시의 샤오롱바오는 역시 맛있었는데 상해에서 먹던 샤오롱바오보다 국물이 약간 더 달콤한 느낌이 있었다. 이른바 ‘상해 음식'이라고 하는 음식 스타일은 원래 달짝지근한 것이 특징으로 쟝저후 전체에 공유되어 있는데 그중에서도 우시는 좀 더 달았다.
미국에서도 잊을 수 없는 그 맛
이러다 상해에 평생 살게 되는 것일까 라는 생각이 진지하게 들 무렵, 준비하던 일이 풀려 나는 미국 보스턴에 오게 되었다. 현지에서는 주로 현지 음식을 먹는 것이 내 스타일이었지만 클램 차우더와 랍스터 롤을 매일 먹을 수는 없는 노릇. 한국음식이야 집에서 해 먹었지만 그보다 중국 음식이 그리웠다. 다행히 보스턴에는 시내 차이나타운에 있는 음식점들 수준이 괜찮았다. 하지만 샤오롱바오 집은 딱 이거다 하는 느낌이 드는 곳이 없어서 아쉬워하던 차에 학교 근처에 새로운 중국음식점이 생겼다. 들어오기 전부터 중국 학생들 사이에 벌써 소문이 나 있는 상태였는데 샤오롱바오가 만두 메뉴의 메인에 있었다. 먹어보니 수저우 탕바오에서 먹던 바로 그 맛이 났다. 다만 가격이 4-5배였다 (상해에서는 주로 동네 허름한 분식집에서 먹던 차여서 1인분에 1500원-2000원선이었는데 미국에서는 최소 8-9불이었다). 미국에서는 이것이 음식 1인분으로서 비싼 가격이 아니었지만 중국에서 먹던 가격이 있다 보니 처음에는 심리적으로 적응이 좀 어려웠다. 하지만 햄 쪼가리 썰어 넣은 샌드위치도 이 정도 가격인데, 샤오롱바오는 섬세한 기술을 요하는, 고급 노동력이 투입된 음식 아니던가! 이렇게 합리화를 하며 자주 먹었다.
아무나 쉽게 만드는 음식이 아닙니다
워싱턴 DC에 오고 나서 보스턴에서는 내가 운이 좋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DC의 차이나타운에서 방문한 한 만두집은 충격적일 정도로 맛이 없었다. 사실 이곳은 이제 모양만 차이나타운일 뿐 진짜 중국인들은 이미 떠난 지 오래다. DC 근처에 중국음식점은 많았지만 이미 중국 본토 수준으로 까다로워진 나의 입맛을 만족시켜줄 곳은 없었다. 그렇게 훌륭한 중국음식, 그중에서도 샤오롱바오가 결핍된 삶을 살다가 DC를 벗어나 교외로 나가고 운전을 하는 삶으로 라이프스타일이 바뀌면서 드디어 실마리가 생겼다. 중국인 친구가 소개해준 메릴랜드 Rockville에 있는 식당을 찾았다. Rockville 이야말로 진정한 DC 지역의 차이나타운이라고 할 정도로 중국인들이 많이 사는 곳이다. 그에 맞게 중국 본토 느낌이 나는 식당들이 눈에 띄었는데,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미국에 있는 중국 식당들은 영문 이름과 중문 이름이 완전 다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예컨대 영문으로는 Chinese Garden과 같은 무난한 이름을 사용하면서도 중문 이름은 좀 더 식당의 정체성을 잘 드러내는 경우가 많은데, 친구가 소개해준 이 식당은 영문 이름이 Shanghai xx였지만 중국 이름은 “南翔小笼包 난샹 샤오롱바오"였다. 이름만 봐도 뭘 전문으로 하는 곳인지가 명확한 것이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정통 샤오롱바오를 오랜만에 먹을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이 곳은 현재 내가 사는 곳에서 너무 멀다. 최근에 내가 사는 곳 근처에 그럴듯해 보이는 중국 만두집이 생겼는데 가보니 중국 아주머니들이 열심히 만두를 빚어내 대나무 찜기에 넣고 찌고 있었다. 드디어 집 근처에 갈만한 샤오롱바오 집이 생긴 것인가... 기대에 부풀어 시켜먹어 봤으나 기대는 곧 실망으로 바뀌었다. Soup dumpling(샤오롱바오의 영문 명칭)에 Soup이 없잖아! 샤오롱바오는 아무래도 ‘쟝저후' 쪽의 음식이다 보니 다른 지역 출신의 중국인들이 하는 음식점에서는 제대로 된 샤오롱바오를 만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다른 메뉴는 다 맛있게 하는 식당들도 샤오롱바오는 아예 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메뉴에 있더라도 맛이 10% 정도 부족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것을 보면 샤오롱바오라는 것이 제대로 만들기 꽤나 어려운 음식인 것 같다. 결국 나는 아직도 집 근처에 쉽게 갈만한 맛있는 샤오롱바오 집을 찾지 못했다. 뭔가가 결핍이 되면 더욱 그리운 법이다. 오늘따라 김이 모락모락 나는 샤오롱바오의 옆구리를 뜯어 훌훌 불어 가며 먹는 비주얼이 머릿속에 그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