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새와 나의 이야기-10
살아남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는 그들의 삶... 무리를 짓지 않으며, 잠시 짝짓기를 하는 시기를 제외하면 각자 살아가야 하는 벌새들의 삶이 비록 이기적으로 보이긴 하지만, 나쁜 기후 속에서도 목숨 건 철새여행(migration)의 숙명을 말없이 받아들이는 걸 보면 결국 내가 죽고 다른 개체가 살아남든지 그 반대이든지 간에 일정 퍼센티지가 살아남아 벌새라는 '종'이 유지되는 것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그들이 위대해 보였다.
9월이 되면서부터 아침 기온이 뚝 떨어지는 날이 늘어났다. 그런 날 아침이면 존스노우와 레나 같은 벌새를 포함해서 카디널, 모킹버드, 이스턴 블루버드, 핀치 등 새라는 새들은 모두 평소보다 통통한 모습을 하고 나타났다. 코트 따위 없는 단벌신사인 이들은 추워지면 몸속의 공기주머니를 부풀리고 그 속을 따뜻한 공기로 채워서 체온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이걸 몰랐던 때는 새들이 임신을 한 걸로 착각하기도 했었다.
이제 털갈이를 끝내고 완벽한 외모로 돌아온 존스노우는 토마토 지지대 위에 앉아서 꽤 오랫동안 정성스럽게 털을 고르는 일이 잦았다. 한쪽 발을 들어올려 긴 부리에 묻은 넥타나 꽃가루를 닦아내고, 고개를 숙여 부리로 배 아래쪽의 기름샘에서 기름을 묻혀서 온몸의 깃털에 골고루 발라 꼼꼼히 방수처리를 했다. 비가 와도 새들이 비에 젖지 않는 이유는, 이렇게 평소에 깃털관리를 하기 때문이다. 안 그러면 차가운 빗물이 속 피부까지 스며들어서 체온이 쉽게 내려갈 것이다.
털을 고르느라 온몸의 털을 세우거나 고개를 이리저리 꼬면 오리처럼 변하기도 하고 백조가 되는가 하면 다시 러시아인형이나 오뚜기가 되어버렸다. 그런 모습들을 사진으로 찍어서 블로그에 올려두었더니 캘리포니아에 사시는 이웃 블로거 눈바람꽃님이 “이제 벌새들이 남쪽으로 떠날 준비를 하는 것 같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세요”라고 조심스럽게 댓글을 달아두셨다. 벌새가 모두 떠나고 나면 내가 엄청난 빈둥지증후군에 시달릴 것을 염려하신 것이다.
조지아 지역의 벌새들은 9월부터 슬슬 남쪽의 멕시코나 중앙아메리카로 떠나기 시작하고, 수컷들은 더 빨리 여행을 시작한다고 들었다. 어미 벌새들은 최대한 새끼가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느라 늦게 떠나지만, 수컷들은 그런 의무가 없었다. 그리고 모든 벌새들은 (어미와 새끼 제외하고) 각자도생하며, 기나긴 철새 여행도 혼자서 떠난다고 했다. 기러기들같이 무리를 지어 이동하면 좀더 쉬울 텐데, 벌새들은 혼자이기 때문에 더 많은 위험에 맞닥뜨린다. 특히 그해 태어나서 처음 철새 이동을 하는 벌새들은 90% 이상이 여행 중에 죽는다고 했다. 아직 미성숙한 만큼 경험도 없고 몸무게도 상대적으로 가벼워 오래 버티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극소수의 지략이 뛰어나고 용맹한 새들이 첫해에도 살아남아 남쪽으로 이동하고, 다음 해에 돌아와 후손을 남길 수 있는 것이다. 나의 존스노우는 그런 수컷 벌새 중 하나였을 것이다.
이별을 앞두고, 그들에게 무엇을 더 해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인스타그램에서 벌새 그네 사진들을 발견했다. 벌새들이 편안히 앉아 쉬면서 망을 볼 수 있도록 높은 곳에 달아두는 작은 그네들이었다. 우리 동네 보태니컬 가든에서 관찰한 벌새들은 꽃의 넥타를 먹을 때 주변의 나뭇가지나 꽃가지를 슬기롭게 활용했다. 그들도 날개를 젓는 일이 고단한지, 옆에 붙잡을 게 있으면 거기에 두 발을 올려둔 채 넥타를 먹기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피더의 넥타 구멍 앞에 벌새 그네를 달아주기로 마음먹고 집에 남아도는 물건들을 뒤져보았다. 꼬치구이를 해먹고 남은 동그란 단면의 대나무 꼬챙이를 그네 발판으로, 귀걸이 재료인 금속줄에 투명한 플라스틱 구슬들을 엮어서 그네를 거는 줄을 만들었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파는 벌새그네들은 매끈하고 깔끔했는데, 나의 벌새그네는 조잡하기 짝이 없었다. 과연 벌새들이 좋아하고 애용해줄 것인가...
반응은 대성공이었다! 피더 앞에 설치하자마자 존스노우가 살랑살랑 날아오더니 곧바로 그네를 붙잡고 앉아 넥타 구멍과 자기 발과의 거리를 조절하면서 편안하게 식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레나도 다른 벌새들도 차례차례 날아와 자연스럽게 그네를 활용했다. 그네에 매달아둔 투명한 플라스틱 구슬이 꽃인 줄 알고 유심히 살피고 냄새를 맡고 긴 혀로 핥아보는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구슬은 햇빛을 받아 진짜 수정이나 루비처럼 반짝이기까지 했다. 그래도 더 반짝이는 건 에메랄드빛 등과 새빨간 목을 가진 나의 벌새들이었다.
그날 오후 마침 비가 내렸는데, 존스노우가 날아와 비를 맞으며 넥타를 먹었다. 가만히 앉아 있으니까 멀리서 사진 찍기가 훨씬 용이했다. 빗방울은 존스노우의 머리에 스며들지 않고 동그랗게 맺혔다가, 한번씩 고개를 들 때마다 목 뒤로 굴러떨어졌다. 그런 존스노우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내 머릿속에서 영롱한 음악이 흐르는 것 같았다. 작은 몸뚱아리 말고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존스노우가 어떻게 멕시코까지 멀고 험난한 여정을 완수하고 돌아와 수많은 자식들의 아빠가 될 수 있을까? 조심스러운 성격과 '나름' 막강한 전투력을 볼 때 존스노우는 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9월 중순 태풍이 지나간 다음날 아침, 북쪽에서 새들이 내려온 건지 아침에 피더 주변이 북적거렸다. 존스노우와 똑같이 생긴 수컷이 나타나 존스노우와 싸우며 식사를 했고, 목에 불완전하게 붉은 깃털이 돋은 청소년 수컷들도 여러 마리 등장했다. 존스노우는 그들과 싸우느라 하루 종일 힘을 빼는 것 같았다. 존스노우가 아무리 머무르고자 하여도, 이렇게 자극이 계속되면 떠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며칠 후, 나의 존스노우는 꽤 오랫동안 저녁식사를 했다. 평소 자러 가기 전에 먹어두는 것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넥타를 먹었고, 몸이 무거워서 둔해 보일 정도로 몸이 통통해졌다. 다 먹고 가는가 싶더니 또 다시 돌아와 한번 더 먹고, 또 떠났다가 돌아오기를 두어 번 반복했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과 마지못해 이별하는 사람의 키스처럼...
다음날 아침, 두세 송이 나팔꽃이 피어난 토마토 지지대 위에도, 윈터베리 나무의 돌출한 잔가지 위에도, 피더에도 존스노우는 보이지 않았다. 뒤뜰이 그늘에 잠기는 오후 시간이 되어도 나타나지 않았다. 여러 마리의 청소년 벌새들과 암컷 벌새들만이 새로 온 방문객들과 싸우며 피더를 지키고 있었다. 존스노우도 마침내 떠난 것이다. 남쪽에서는 계속해서 가을 태풍이 올라오고 있었는데, 며칠 더 기다렸다 떠났으면 좋았을 것을...
살아남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는 그들의 삶... 무리를 짓지 않으며, 잠시 짝짓기를 하는 시기를 제외하면 각자 살아가야 하는 벌새들의 삶이 비록 이기적으로 보이긴 하지만, 나쁜 기후 속에서도 목숨 건 철새여행(migration)의 숙명을 말없이 받아들이는 걸 보면 결국 내가 죽고 다른 개체가 살아남든지 그 반대이든지 간에 일정 퍼센티지가 살아남아 벌새라는 '종'이 유지되는 것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그들이 위대해 보였다. 존스노우의 판단은 본능이었을까, 이성적인 판단이었을까? 인간의 삶도 멀리서 보면 그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인간이라는 종이 유지될 수만 있다면 '나'라는 존재가 뭐 그리 중요한가. 살아남는 자가 반드시 '나'나 내 자식이어야 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존스노우가 나타나 새빨갛게 반짝이는 목을 나에게 보여줄 때마다, 내 머릿속에 새빨간 크리스마스 전등이 하나씩 켜지는 느낌이었다. 따뜻하고 넉넉하고 즐거운 추억의 빛... 그토록 아담하고 소중한 기쁨을 무엇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작은 녀석들이 비바람과 추위를 뚫고 남녘으로 날아가는 장면을 상상해보니 너무 애처로와 눈물이 났다. 하지만 기르던 반려동물이 죽어서 이별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나았다. 존스노우는 비록 내 눈에 보이지 않지만, 죽은 게 아니라 어디선가 건강하게 살아있을 것이다! 벌새라는 동물들이야말로 사랑하기에 딱 적당한 존재가 아닌가!
우리집 피더에서 마지막으로 벌새를 본 시점은 10월 1일경이었다. 혹시 나그네 벌새가 들릴 수도 있을 것 같아서 피더는 10월말까지 계속 걸어두었다. 그리고 좀 일찍 크리스마스용 줄전구를 사서 벌새를 바라보던 유리창 둘레에 장식했다. 그동안 벌새를 위해 블라인드를 내려두고 파파라치 구멍으로만 밖을 내다보던 뒷현관문쪽 블라인드도 시원하게 걷어올렸다. 테라스로 나가 마트에서 사온 새 모이용 해바라기 씨앗을 골고루 뿌려두고 집으로 들어왔다. 윈터베리 숲 속에서 모킹버드와 카디널들이 짹짹거리며 고개를 쏙쏙 내미는 게 보였다. 내년 봄 존스노우가 돌아올 때까지 버티는 방법은 원래 있던 새들에게 잘해주는 것. 그들은 결코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고, 가끔씩 나타나는 토끼들, 아기 사슴들과 함께 가을과 겨울 내내 큰 즐거움을 주었다. 생각보다 기다림은 고통스럽지 않았다. 그렇게 삶은 지속된다.
실내에서 생활하는 반려동물에게 인간 동반자의 부재는 어떻게 인식될까? 그 사람이 시야에 보이고 그 냄새를 코로 맡을 수 있고 숨쉬는 소리를 귀로 들을 때 살아있는 것으로 인식하지만, 몇 시간씩이나 시야에서 사라져 냄새도 나지 않고 소리도 들리지 않을 때 그 사람은 죽은 것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시야에서 사라져도 여전히 살아 있고 단순히 외출을 했으며, 조금만 기다리면 돌아올 거라고 생각한다는 건 상당히 높은 단계의 인지능력이자 믿음일 것이다. 젖먹이 어린 아기의 심리적 안정을 위해 엄마가 옆에 계속 있어줘야 하는 이유도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나의 벌새 존스노우는 사라졌지만, 존스노우가 죽지 않고 남쪽으로 떠났으며 내년 봄이 오면 나에게로 돌아올 것이라는 생각은 기본적인 인지 능력에 긍정적인 믿음과 상상이 보태진 것이다. 결국 정을 주던 존재의 상실에서 오는 외로움과 허전함으로부터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한 사고 방식이다. 사실은 존스노우가 영영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음을 알고 있지만, 지금 당장 어떻게든 견뎌보기 위해 가장 위안이 되는 방식으로 합리화하는 것이고, 이런 합리화는 실제 효력을 발휘한다. 이렇게 한두 달이 지나면 허전함은 다른 것으로 채워져서, 내년 봄 벌새들이 돌아올 무렵이 되면 내가 기다리던 존스노우가 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크게 상처받지 않게 될 것이다.
머물던 벌새들이 모두 떠난 후 간혹 나그네 벌새가 들릴 수도 있을 것 같아서 10월말까지 피더는 계속 걸어두었다. 다만 기대감을 품고 창밖 풍경 속에서 벌새를 찾는 행동은 멈추었다. 12월이 한참 멀었는데도 마트에 가서 크리스마스용 줄전구를 사서 식탁 옆 유리창 둘레에 장식했다. 내가 요리를 하거나 밥을 먹으면서 벌새와 눈을 마주치던 유리창이었다. 창밖 토마토 지지대를 감고 오른 나팔꽃 덩쿨에는 여전히 보라색과 분홍의 나팔꽃이 번갈아 피어나고 있었다. 부엌에서 뒤뜰로 통하는 출입문 위에도 커다란 유리창이 붙어 있었는데, 그 유리창에는 줄곧 블라인드가 내려져 있었다. 처음엔 그 문을 통해 도둑이 침입하거나 집 내부를 들여다볼 것이 두려워서 블라인드로 덮어두었고, 나중에는 내 존재를 들키지 않고 벌새를 관찰하기 위해 블라인드 뒤에 숨어 있었다. 이제 벌새를 관찰할 필요는 없으니 블라인드를 시원하게 걷어올렸다. 캄캄한 벽이었던 공간에 유리창이 뚫린 것처럼 후련했다.
부엌문을 열고 나가서 좁은 테라스 바닥에 새 모이용 해바라기 씨앗을 골고루 뿌려두었다. 수박무늬 물그릇도 헹궈낸 후 깨끗한 물을 채웠다. 윈터베리 숲 속에서 모킹버드와 카디널들이 짹짹거리며 고개를 쏙쏙 내미는 게 보였다. 이제 막 들깨 씨앗이 열리기 시작한 깻잎 밭에도 한번씩 물을 주었다. 언젠가부터 나의 들깨는 새들의 가을 식량으로 변신했다.
집 안으로 들어와서 새로 뚫린 유리창으로 바깥을 내다보았다. 지금까지 나를 보호하기 위해 내려둔 블라인드가 사실 나를 구속하고 내 눈을 가렸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뒤뜰로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별로 없거니와, 우리집엔 들여다 본다 해도 훔쳐갈 만한 물건이 없었다. 거의 다 친구들에게 받았거나 중고샵에서 싸게 구입한 살림들이어서 누가 가져간다고 해도 아쉬울 것도 없었다.
블라인드 하나 걷었을 뿐인데, 그 다음날부터 유리창은 나에게 놀라운 선물을 가져다주기 시작했다.
벌새들이 떠난 후 유튜브에서 다른 지역의 벌새 피더들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채널들을 찾아냈다. 그 중에서 웨스턴 텍사스와 남부 캘리포니아에 설치된 벌새 피더를 라이브캠으로 보여주는 비디오를 모니터 한쪽에 열어놓고, 틈틈이 다양한 벌새들을 감상하면서 일했다. 루비뜨로티드 허밍버드뿐만 아니라 애나스 허밍버드, 루포스 허밍버드, 블랙친드 허밍버드, 알렌스 허밍버드, 코스타스 허밍버드 같은 다양한 종류의 벌새들이 피더에 모여들었다. 그 다양한 벌새들을 '나만의 벌새'와 비교할 수는 없지만, 존스노우에 대한 애틋함과 허전함은 어느 정도 사그러들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pXe8MpU7uzk
라이브캠 영상 속에서 가끔씩 벌새가 아닌 다른 새들도 넥타를 먹어보려고 묘기를 부렸는데 그 모습이 너무 코믹했다. 달콤한 맛을 좋아하는 동물이 사람과 벌새만 있는 건 아니다. 꿀벌, 나비, 파리 같은 곤충들도 수시로 벌새의 피더를 찾아오고, 곰은 벌꿀을 먹고, 강아지들도 달콤한 과자를 좋아하며, 오리올즈라 불리는 주황빛 새는 오렌지를 좋아해서 오리올즈 애호가들은 피더에 오렌지를 놓아둔다.
벌새들이 떠나자마자 나의 부엌 유리창 화면 속에는 다른 새(bird) 배우들이 출연하기 시작했다. 사실 봄에 벌새 피더를 설치한 직후에 기존의 새들이 벌새 피더를 공격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 새들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들의 영역에 어느날 갑자기 스탠드가 세워지고 설탕물이 걸리더니, 붕붕거리는 작은 새들이 시도 때도 없이 날아오면서 특별대우를 받기 시작한 것이다. 그게 못마땅했던지 브라운뜨래셔 한 마리는 빠른 속도로 피더 스탠드에 뛰어오르면서 피더를 흔들어서 벌새들을 위협하는 행동을 했고, 수시로 스탠드 꼭대기에 앉아서 망을 보는 장소로 활용했다. 나는 벌새들을 지키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바닥에 놓아두었던 물그릇을 치워버렸고, 곡물씨앗과 해바라기 씨앗 제공을 멈추었다. 물그릇을 놓아두면 새들이 종류대로 찾아와서 물을 마시고, 볕 좋은 날에는 목욕을 하곤 했는데 말이다.
벌새들이 떠난 후, 나는 다시 물그릇을 씻어서 깨끗한 물을 담아주고, 아침마다 한 줌의 곡물씨앗과 해바라기 씨앗을 뿌려두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의 깻잎들에 들깨 열매까지 맺혔기 때문에 뒤뜰은 순식간에 다른 새들의 식당으로 변모했다. 미국인들이 살던 아파트 한 칸에 갑자기 이상한 동양인이 와서 살더니 수상한 냄새가 나는 식물을 키우기 시작했다. 깻잎을 심었던 첫해에는 새들이 들깨밭을 건드리지 않았는데, 다음해 가을부터 들깨맛을 알아버린 것 같았다. 방부제도 없고 영양이 풍부한 들깨를 매일 매일 따먹는다면 새들의 건강 유지에도 분명히 도움이 될 것이다.
깻잎밭에서 카디널, 캐롤라이나 렌, 모킹버드, 하우스핀치, 그레이캣버드, 옐러우럼프드 와블러, 브라운 뜨래셔들이 한꺼번에 여러 종씩 튀어나온다. 내가 인기척을 하면 곧바로 도망을 친 다음 건너편 윈터베리 숲으로 날아가서 맛은 덜하지만 배는 채울 수 있는 새빨간 윈터베리 열매로 식사를 계속한다. 윈터베리 나무의 이름이 '윈터베리(winterberry)'인 이유는 열매가 워낙 맛이 없어서 새들이 가장 늦게까지 안 먹고 두었다가, 다른 먹거리가 다 사라진 겨울에 그 열매로 연명하기 때문이다.
하우스핀치는 일가족들이 함께 오는 건지... 어떨 땐 수컷만 세 마리 오기도 하고, 수컷과 암컷이 고루 섞여 오기도 한다. 하우스 핀치 수컷들은 몸색깔이 더 붉을수록 암컷들에게 인기가 있다는데, 그러려면 몸을 더 빨갛게 해주는 열매를 먹어야 한단다. 하우스핀치 암컷들은 머리에 붉은 색이 없어서 참새와 거의 구분이 되지 않는다. 알을 품고 새끼를 키우려면 적들의 눈에 띄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우스 핀치(house finch)들이 미국 전역에 퍼지게 된 사연이 재미있다. 하우스핀치는 원래 북미대륙에서 남서지역과 멕시코 지역쪽에 서식하던 야생조류인데, 1940년경 색이 아름답다는 이유로 마구 포획되어 뉴욕지역에서 '헐리우드 핀치(hollywood finch)'라는 이름으로 애완용으로 판매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사실을 발견한 야생동물 보호주의자들이 항의를 하자 펫숍 주인들은 벌금을 내기 싫어서 새들을 방생해버렸다. 뉴욕 지역의 버드와처들은 그런 줄도 모르고, 어느 날 갑자기 정원에 가슴이 붉은 새들이 나타났다고 기뻐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남부지방에만 서식하던 하우스핀치는 북미대륙 전체에 골고루 퍼졌고, 토착 참새들과 경쟁하는 사이가 되었다고 한다.
내가 하우스핀치를 좋아하는 건, 미국 인디애나 주 블루밍턴에서 처음 유학생활을 시작하면서 내가 살던 캠퍼스 아파트 '튤립트리' 앞에서 가장 먼저 발견한 새가 하우스핀치였기 때문이다. 유리창 앞에 서 있던 거대한 스윗검 트리 속에 그들의 둥지가 있어서 자주 볼 수 있었다. 몸이 빨간 새로는 하우스핀치 말고도 카디널과 스칼렛 테니저(Scarlet Tanager)가 있었는데, 파란 몸색깔의 새들만큼이나 아름답고 신기해서 발견할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곤 했다.
결국 나의 유학생활의 시작과 끝에 새들이 있었다. 영어도 서투르고 아는 사람도 없었던 초기에 아무 말 없이 나에게 기쁨과 위안을 주었던 존재들이 새들이었고, 영어는 익숙해졌지만 유학생활을 끝낼 수 없어서 고통 받던 유학 말기에 역시 강력한 위로와 즐거움을 준 존재는 벌새들이었다. 그리고 놀라운 건, 내가 5년 동안 살면서도 블라인드를 내려두기만 했던 창문 밖의 나무들이 바로 수많은 철새들이 잠시 쉬었다가 가는 중요한 길목이었다는 점이다. 인디애나주에 살 때는 다양한 종류의 철새들을 발견하기 위해 쌍안경을 들고 가까운 주립공원까지 나가야 했는데, 조지아주 우리집 부엌의 뒷문 유리창 앞에서 가만히 선 채로 철새를 포함하여 30종이 넘는 새들을 감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벌새가 남기고 간 선물이었다.
벌새가 떠나고 부엌 뒷문 유리창을 개방한 후부터 나에게 새로운 증상이 생겼다. 갑자기 기온이 떨어진 아침일수록 새로운 기대감에 부푼 채 계단을 내려가는 일이다. 침실이 있는 2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기가 무섭게 빠른 걸음으로 거실을 지나 부엌으로 간다. 뒷문 유리창이 가까워지면 발걸음을 죽이고 살살 다가가서 유리창밖을 내다본다. 날씨가 갑자기 변했다는 건 어딘가 다른 곳에서 바람이 불어왔다는 것이고, 그 바람을 타고 이동한 철새 무리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었다.
10월 19일, 기온이 10℃ 아래로 떨어진 그날 아침엔, 한 무리의 작은 새들이 뒤뜰 윈터베리 나무와 소나무숲에 내려앉아 식사를 하면서 와글와글 재잘재잘 자기들끼리 수다를 떨고 있었다. 몸색깔이 밝은 색이 아니어서 정확히 모양을 분간하기 어려웠는데, 그 중 몇 마리는 나의 들깨밭에 숨어서 들깨 디저트를 즐기고 있었다. 이 새들도 남쪽으로 마이그레이션 하는 중에 들린 모양이었다. 유리창에 바짝 붙어 서 있는 커다란 곰같은 내 모습이 부담스러웠는지 새들은 요리조리 피하며 깻잎 뒤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그러다가 자신감 넘치는 새 한 마리가 토마토 지지대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존스노우의 '나팔꽃벤치'였던 토마토 지지대는 이제 다른 새들의 런웨이(runway)가 되어 있었다.
당당히 햇빛 조명 아래 버드워크(birdwalk)를 하며 포즈를 취하는 새 모델을 놓칠새라 얼른 카메라를 들어 증명사진부터 찍어두었다. 나중에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블랙 뜨로티드 블루 와블러'라고 했다. 보시다시피 얼굴과 목은 까맣고, 등은 하늘빛과 초록빛이 도는 회색이다. 와블러는 휘파람새 또는 솔새로 번역이 된다. 노래하는 소리가 사람이 부는 휘파람 소리와 비슷하니 푸른 휘파람새라고 불러주기로 했다. 이들도 기온 변화로 인해 곤충들이 사라지자, 새로운 먹이를 찾아 남쪽으로 이동했을 것이다.
이렇게 새로운 새들이 오면 기존에 머무르던 다른 새들은 긴장하지만 특별히 싸움을 벌이는 것 같지는 않다. 가을이어서 나무마다 열매가 풍부하게 달려 있었고, 나의 들깨밭에는 꽤 많은 양의 들깨가 맺혀 있었기 때문이다. 들깨밭에서 포식을 한 후 몸이 무거워진 새들은 토마토지지대에 올라 바람커피를 한 잔씩 마시며 주위를 둘러본 다음 길을 떠났다.
이 지역 사람들에게 '버터벗'이라 불리는 작고 귀여운 노랑궁뎅이 솔새도 토마토 런웨이에서 포즈를 취했다. 나는 버터벗이 바라는 대로 카메라를 들고 여러번 셔터를 눌렀다. '버터벗(노란 궁둥이란 뜻)'이지만 궁둥이만 노란 게 아니라 겨드랑이쪽 깃털도 노란 색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잠시 후에는 테라스 바닥에 놓아둔 물그릇에 '노래참새'라 불리는 멧종다리가 물을 마시러 와서 포즈를 취했다. 한국에서는 이런 새들을 그냥 '참새'라고 하지만 참새도 종류가 참 여러종류이다. 참새는 흔하고 예쁘지 않다고만 생각했는데,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얼굴을 보니 몹시 영리하고 귀엽게 생겼다.
내가 관찰한 바로는 참새가 다른 새들보다 수적으로 우세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다른 새들에 비해 훨씬 용감한 데가 있었다. 내가 처음 이곳에 이사온 후 며칠간 새들을 위해 뒤뜰에 쌀을 뿌려둔 적이 있었다. 그런데 새들이 한 사흘간 입도 대지 않았고, 쌀은 그대로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껍질이 있는 곡물 씨앗들만 보다가 도정이 된 하얗고 투명한 쌀을 보자 경계심이 들었던 모양이다.
나흘 째 되던 날 아침에 보니, 참새 한 마리가 와서 쌀을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후부터 다른 참새들도 쌀을 나눠먹고 있었다. 다음날인가부터는 다른 새들도 쌀을 먹기 시작했다. 들깨에 대해서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났다. 나는 이사온 다음 해부터 깻잎밭을 일궜는데, 그해 가을 처음으로 들깨가 열렸을 때에는 새들이 입도 대지 않았었다. 미국의 새들에게는 너무나 이국적인 향과 맛이었을 것이다. 그 다음해부터 새들이 먹기 시작했고, 역시 참새들이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그것을 보고 참새들을 존경하게 되었다.
뒤뜰에 상주하는 새들중에서 가장 조심스러운 새들이 카디널이다. 이들의 몸색깔이 주홍색에 가까운 빨강이어서 '추기경(cardinal)'을 떠오르게 한다. 추기경의 옷색깔을 닮아서 이 새들 이름을 카디널로 붙인 것인지, 이 새들 몸색깔처럼 붉은 옷을 입기 때문에 추기경들을 카디널이라고 부르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평소처럼 수컷 카디널은 조심 또 조심 주위를 살피고 경계하면서 슬금슬금 씨앗을 향해 다가온다. 그러고는 해바라기 씨앗만 골라서 부리로 껍질을 비벼 까서 먹은 후 자리를 뜬다.
카디널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자세히 한번 쓰겠지만, 성격도 유순하고 부부 사이가 좋으며 부부가 동시에 열심히 새끼를 키우고 교육하는 가정적인 새들이다. 이 새들이 사는 모습을 매일 보다보니, 자식을 내팽개치는 인간 부모들의 소식을 들을 때 내 입에서 자연스럽게 "이 새만도 못한"이라는 욕이 나왔다.
어찌나 빨리 움직이는지 도통 가만히 있는 장면을 찍기 어려운 캐롤라이나 렌도 사진을 찍어달라고 포즈를 취했다. 평소처럼 꼬리를 바짝 치켜든 포즈를 찍고 싶은 내 마음과 달리, 꼬리를 조금 내린 모습만 자꾸 취한다. 아마 빨리 움직여야 할 때에는 꼬리를 바짝 치켜드는 게 편하고, 가만히 머물러 망을 보거나 할 때는 꼬리를 내리는 동작이 더 편하기 때문인가보다.
한참동안 새들의 찍새 노릇을 하다 보면 남편이 부엌으로 와서 커피를 내리기 시작하고, 그렇게 나의 하루 일과가 시작되었다. 이제 내가 하루 중에 존스노우와의 이별을 떠올리는 횟수도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전날 밤 내내 비가 내리더니 아침에는 거의 겨울처럼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추우면 짜증이 나야 정상인데, 창밖에서 들려오는 새로운 새들의 수다에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1층으로 내려가기 전에 먼저 2층 유리창으로 뒤뜰을 내려다 보았다. 한 일주일 가량 머무르던 노랑궁둥이 휘파람새(솔새) 무리들이 보이지 않았다.
휘파람새들이 어디로 갔는지 찾으려고 눈을 치켜뜨고 있는데 갑자기 한 마리 두 마리...그러다 수십 마리의 검은 새들이 하늘에 나타나더니 한꺼번에 뒤뜰 나무 위로 날아내렸다.
나무에 새 열매들이 열린 것처럼 바글바글거렸다. 배는 하얗고 머리와 등은 반짝이는 청록색...어떤 각도에서는 연한 파랑색을 띠기도 했다. 각각의 새는 흐트러짐 없는 매끈한 모양새였다. 그들은 일제히 다시 날아올랐다가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잠시 후 나무 위로 내려앉기를 몇 시간 동안이나 반복했다. 나름의 질서에 따라 움직이는 것 같았고, 우리집 뒤뜰에서 먹이를 발견하고 확인한 후 근처 다른 먹이가 있는지 찾으러 다니는 모양이었다.
갑작스런 날씨 변화와 차가운 온도가 가져다 준 의외의 선물이었다. 벌새를 찍을 때는 벌새가 너무나 작아서 중심의 아주 작은 부분에 초점이 맞도록 카메라를 설정해두었다가, 조금 큰 새들을 찍으면서 초점 범위를 넓혀두었다. 이젠 새 한 마리에 집중해서 사진을 찍던 모드에서 갑자기 수십 마리의 새를 한꺼번에 찍는 모드로 전환해야 했는데, 새들이 갑자기 찾아와 움직이는 바람에 쉽지 않았다. 잠시 카메라를 들여다보는 사이에 새들은 떠나버리고, 어쩌면 그 길로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초점모드를 바꾸지 못해서 원하는 선명도의 사진을 얻진 못했지만, 예상치 못한 기쁨을 맛본 터라 기분이 환해졌다. 찍어둔 사진으로 인터넷을 검색해본 결과 새 이름이 '녹색제비(Tree swallow)'라는 것을 알아냈다.
새들이 먹고 있던 나무열매를 자세히 보니 푸른 빛이 도는 회색열매였다. 붉은 열매가 열리는 윈터베리나무들과 섞여 있어서 윈터베리나무인 줄 알았는데 다른 나무였던 것이다. 이 나무 역시 인터넷을 뒤져보니 베이베리(Bayberry) 또는 왁스머틀(Wax Myrtle)이라 불리는 나무였다. 뒤뜰에서 울타리 노릇을 하는 윈터베리나무 숲에는 베이베리 나무와 잣나무가 여럿 섞여 있다는 사실도 새롭게 깨달았다. 녹색제비들이 앉아 식사를 하는 곳은 정확히 베이베리 나무들이었고, 윈터베리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보였다. 이들과 함께 5년을 살면서도 이런 나무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니...
베이베리는 약효가 있어서 사람들도 약으로 활용하는 열매라고 했다. 잣나무에도 잣이 열리고 윈터베리나무에도 새들의 겨울음식이 되는 윈터베리가 열리는 데다, 내가 들깨까지 심었기 때문에, 우리집 뒤뜰은 다양한 새들을 유인하고 있었던 것이다. 60마리는 넘어 보이는 새들이 한꺼번에 앉아도 나무는 부러지지 않았고, 그 새들이 여러 번 달려들어 경쟁적으로 먹고도 남을 만큼 많은 열매를 매달고 있었다. 나는 새삼 이 서민 아파트의 울타리에 베이베리나무를 심어준 누군가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 사람은 어쩌면 나처럼 버드와처(birdwatcher. 새를 보는 것이 취미인 사람)인지도 모른다.
다행히 전날 찾아왔던 녹색제비떼가 동네에 머물렀는지 다음날 아침에도 우리집 뒤뜰에 식사하러 왔다. 이번에는 약간 여유로운 마음으로 카메라 초점모드를 조정해서 다수의 새들를 비교적 선명하게 담을 수 있게 되었다. 코넬대학교에서 만든 조류가이드에 보니 녹색제비를 'Handsome aerialists with deep-blue iridescent backs and clean white fronts'라고 표현해두었는데 너무나 적확한 표현이었다. 'iridescent'는 빛을 받으면 여러가지 색으로 반짝인다는 뜻이고, 'aerialist'는 공중곡예사를 의미한다. 진한 청록빛으로 반짝이는 등과 깨끗하고 새하얀 가슴을 가진 잘 생긴 공중곡예사들이라니! 새들은 다양한 자세로 날아올랐다가 하강했다가 바람에 따라 아크로바틱하게 몸을 꼬거나 뒤집으며 곡예를 보여주었다.
코넬랩에 들어가서 녹색제비의 생태에 대해 읽어보다가, 이들이 왜 이렇게 산뜻한 모양새를 하고 있는지 의문이 풀렸다. 이들은 물 위를 스치듯 날면서 몸에 물을 끼얹어 목욕을 하고, 나뭇가지나 돌에 등을 대고 솟아오르면서 등의 털을 깨끗이 빗은 다음 남은 먼지는 몸을 재빨리 흔들어 떨어낸다고 한다. 새들 역시 가꾸고 다듬는 노력 없이는 이렇게 깨끗한 모습을 유지할 수 없는 것이다. 이전에 가까이서 관찰한 벌새들이 때로는 머리에 거미줄을 걸치거나 노란 꽃가루를 뒤집어 쓰고 있던 것이 기억났다.
녹색제비는 아크로바틱하고 빠르다는 점에서는 벌새와 비슷해서 날면서 묘기를 부리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진청색을 띠는 몸색깔을 보면 파랑새 무리에 끼워줘도 될 것 같았다. 카디널이나 하우스핀치처럼 빨간 새들을 보면 예쁘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스턴블루버드나 블루제이, 녹색제비같은 파란색 새들을 보면 기분이 좋아졌다. 녹색제비를 보고 괜히 행운이 찾아올 것 같은 흥분에 사로잡혔다. 따지고보면 녹색제비떼가 나의 작은 뒤뜰에 이틀이나 머물렀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행운을 맛본 것 같다.
녹색제비들은 또한 봄과 여름에는 각자 흩어져서 둥지를 짓고 새끼를 기르며 살다가, 철새이동이 시작되면 무리를 지으며 함께 날아가는 사회성 좋은 새들이다. 그들이 저녁에 하늘 높이 솟아올라 군무를 추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또 존스노우를 생각했다. 벌새들도 이렇게 사회성이 좋아서 함께 날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른 새가 옆에서 넥타를 먹어도 싸우지 않고 사이 좋게 나눠먹고, 밤에는 같은 나무에 내려앉아 잠을 청하고...그러면 길도 잃지 않고 외롭지도 않을 텐데 말이다.
존스노우가 열어준 부엌 뒷문 유리창으로 녹색제비떼도 관찰할 수 있게 되다니! 아마 이 새들은 해마다 이맘때 내 집 뒤뜰의 베이베리 나무를 찾아왔는데 나는 지금까지 모르고 살았을 것이다. 이것말고도 내가 놓친 것은 또 얼마나 많을까? 새 한 마리가 할 수 있는 것, 나무 한 그루가 할 수 있는 것은 생각보다 거대했다. 베이베리 나무 한 그루에 60여마리의 녹색제비떼가 깃들 때 베이베리나무는 반짝반짝 빛나는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변신한다. 그 아름다움을 바라볼 수 있는 것만으로 신만이 누릴 수 있는 사치를 맛본 것 같았다.
유학 첫해 겨울, 인디애나주 블루밍턴에서 버드와칭을 시작한 후였다. 하얗게 눈이 내린 날 오후 아파트 바로 앞에 서 있던 커다란 스윗검트리에 조롱조롱 노랑 등불이 달린 것을 발견했다. 너무나 놀라워서 자세히 쳐다봤더니 등불이 아니라 노란색 가슴을 가진 시더 왁스윙(Cedar Waxwing) 무리가 가지마다 내려앉아 석양을 되비추고 있었다. 헐벗은 겨울나무 가지가 환하게 빛을 내며 되살아난 모습은 너무나 경이로웠다.
(출처: https://deweesislandblog.com/2020/02/12/cedar-waxwings-and-robins/)
왁스윙 무리가 다음날에도 그 나무 근처에 머무르는 걸 보고 나는 다른 한국인 친구 H에게 전화를 걸었다. 과학교사였던 H는 당장 달려왔고, 같이 스윗검트리 밑으로 걸어갔다. 바로 그때 H의 전화벨이 울렸고, H는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잠시 후 거짓말처럼 시더 왁스윙들이 그 나뭇가지에 내려앉기 시작했다. 소리를 내면 새들이 날아가버릴 것이기에 나는 말도 못하고 손짓으로 나무 위를 가리켰다. 그러나 H는 전화 내용에 집중하느라 돌아서서 아파트 방향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새들이 바로 머리 위 나뭇가지에 앉아주어서, 나는 망원경 없이 육안으로 그들의 얼굴과 머리깃, 날개끝에 매니큐어를 칠한 듯한 새빨간 문양과 꼬리끝의 노란색 장식 깃털까지 관찰할 수 있었다. 나는 진심으로 H가 한번이라도 나무를 돌아봐주기를, 바로 머리 위 가지를 쳐다봐주기를 바랐지만, H는 그러지 못했다. H가 전화를 끊고 돌아섰을 때는 이미 새들이 다 날아가버린 후였다.
날개 달린 새들이 주는 기쁨은 예상하기 어렵고 마음대로 붙잡을 수도 없다. 운좋게 내 카메라로 포착할 수 있었던 장면들은 10%도 되지 않는다. 대체로 카메라를 잡는 동안, 카메라를 가지러 집안으로 들어가는 동안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은 아무 대가 없이 어느날 갑자기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선물과 같다. 잘 되는 일이라곤 하나도 없고, 세상은 나를 잊었으며, 나는 10년 묵은 묵은지처럼 익다 못해 푹푹 썩어가고 있다고 느껴질 때, 내 집 뒤뜰에 날아온 반짝이는 새들은 그렇지 않다고, 누구에게나 기적은 일어날 수 있다고 말해준다. 내가 새를 사랑하게 된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