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새와 나의 이야기-7
벌새들은 신진대사가 너무 빨라서 잠시라도 먹지 않으면 굶어죽지만, 밤에 잠을 자야 할 때나 꽤 오랫동안 먹이를 먹을 수 없는 상황이 오면 아무때나 '토포(torpor)' 상태로 전환할 수 있다. 겨울잠을 자는 것과 비슷하게 체온과 맥박, 호흡수를 최소한으로 떨어뜨려서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것이다. 다만, 토포 상태에서 깨어나 몸의 기능을 정상화하려면 한 시간 가량 걸려서, 그 사이에 적의 공격을 당하면 살아남기 어렵다.
이전에 레나가 앉아서 망을 보던 윈터베리 나무의 높은 가지에 존스노우가 앉아 있었고, 토마토 지지대의 맨윗자리도 넥타 피더도 모두 존스노우가 차지했다. 밤에도 마지막 식사를 마친 후 윈터베리 나무속으로 사라지는 걸로 봐서 레나의 침소까지 장악한 것 같았다. 윈터베리 나무는 작고 새빨간 열매가 조롱조롱 열리기 때문에 새빨간 목을 가진 수컷 루비가 몸을 숨기기에 적합했다. 레나가 전혀 오지 않는 건 아니었으나, 방문자의 지위로 밀려난 게 분명했다.
벌새들은 신진대사가 너무 빨라서 잠시라도 먹지 않으면 굶어죽지만, 밤에 잠을 자야 할 때나 꽤 오랫동안 먹이를 먹을 수 없는 상황이 오면 아무때나 '토포(torpor)' 상태로 전환할 수 있다. 겨울잠을 자는 것과 비슷하게 체온과 맥박, 호흡수를 최소한으로 떨어뜨려서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것이다. 다만, 토포 상태에서 깨어나 몸의 기능을 정상화하려면 한 시간 가량 시간이 걸려서, 그 사이에 적의 공격을 당하면 살아남기 어렵다. 간혹 유튜브 같은 데 보면 죽어가는 벌새를 자기가 살렸다고 하면서 '기절했던 벌새에게 설탕물을 먹이자 벌새가 정신을 차리고 날아가는' 영상을 올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토포 상태의 벌새를 발견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벌새들에게 가장 큰 위험은 벌새의 생태에 무지한 인간일지도 모른다.
벌새를 오랫동안 관찰한 존 선생님조차 토포 상태의 벌새를 발견한 적이 없다는 걸로 봐서, 벌새들은 다른 생명체의 눈에 띄지 않는 은밀한 곳에 잠자리를 마련하는 게 틀림없다. 그렇게 아침마다 토포 상태에서 깨어난 존스노우는 제일 먼저 피더로 날아와 충분히 넥타를 먹은 후, 근처에 갓 피어난 꽃들을 찾아 순찰을 떠났다. 벌새들의 뇌는 비록 작지만 대뇌 측두엽의 해마가 꽤 큰 비율로 자리잡고 있다고 한다. 이전에 방문했던 꽃들의 위치를 모두 기억하기 위해서이다. 방어적인 존스노우도 아침을 먹으러 오는 벌새들에게는 관대한 편이어서, 아침에는 여러 마리의 벌새가 함께 식사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레나 여왕이 다스리던 들깨 왕국을 인수하고 33% 농도의 피더를 차지한 존스노우의 통치는 꽤 오래 지속되는 것 같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온전히 평화로운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 나와 존스노우의 기대와 달리 점점 더 강한 도전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존스노우도 처음엔 그렇게 자신감이 넘치더니, 이제 점점 불안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넥타를 먹을 때도 이전처럼 여유롭게 오래 먹지 못하고, 한입만 쭉 빨아먹은 다음 토마토 지지대 위로 돌아가 방어 자세를 취했다. 설탕 농도에 민감한 벌새들이 존스노우 혼자 고농도 넥타 피더를 차지하도록 내버려둘 리 없었다. 점점 소문이 나는지 낮에 찾아오는 벌새들의 숫자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게다가 봄에 태어난 새끼 벌새들이 점점 어른 벌새로 성장하는 것도 큰 위협이었다.
특히 오늘 아침에 찾아온 침입자 벌새는 심상치 않은 눈빛의 수컷 청소년 루비였다. 목깃털이 빨갛지는 않지만 생성되는 중인지 목둘레에 거무스름한 점들이 찍혀 있고, 살짝 작은 듯한 머리크기에 몸동작이 날렵했고 눈빛이 매서웠다. 발목털도 유난히 길어서 매나 독수리를 축소해둔 느낌이었는데, 어른 수컷인 존스노우에게도 꽤나 대담하게 대든다. 먼저 어른이 된다고 해서 영원히 더 크고 강할 순 없는 법. 그렇게 자라나는 수컷들이 꽤 여럿 보이기 시작했다. 오늘의 아이는 내일 어른이 되고, 이전 어른의 자리를 위협한다. 먼저 핀 꽃이 질 무렵 새롭게 화려한 꽃이 피어나듯이... 어떤 슬픔도 원망도 미련도 소용없는 자연의 섭리이지만, 어쩔 수 없이 죽는 그날까지는 그 섭리를 끝까지 부인해야만 하는 게 생명체의 운명이 아닌지.
제니는 내가 건네준 블랙베리 레모네이드를 음미하다가 유리창밖 벌새 넥타통에 벌새들이 찾아온 것을 보자 웃음을 터뜨렸다.
“저 아이들도 설탕물 먹고, 나도 설탕물 먹고!”
갑자기 웃어서 레모네이드가 기도로 넘어갔는지 기침까지 했다. 나는 얼른 냅킨을 내밀었다.
“이 자리 너무 좋은 것 같아요. 언니 집에 올 때마다 푸른 뒤뜰 잔디밭이 내다보이는 이 식탁에서 추억을 쌓아왔네요. 고마워요!”
“내가 더 고맙지. 해준 것도 별로 없는데 뭐…. 그렇게 걱정을 많이 하더니, 그래도 야무지게 모든 과제를 다 달성하고 다음 일자리를 향해 떠나게 된 거 축하해!”
나는 할 말이 없어서 인사성 멘트를 늘어놓았다. 제니는 이제 겨우 서른살이지만 박사과정을 남들보다 빨리 끝마쳤고, 곧바로 꽤 괜찮은 인근 주립대학의 교수로 채용되었다. 게다가 몇 년간 사귀어온 남자친구와 결혼도 하고 함께 떠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내게 결혼식을 촬영해달라고 부탁을 했고, 드레스와 화관을 주문한 일에 대해 한참이나 수다를 떨었었다. 싱글인 유학생들 사이에서 제니는 부러움을 샀다.
그러나 결혼식 당일날 아침, 모든 것을 취소해버렸다. 부조봉투를 가방 안에 넣고 하객 차림으로 한인 교회에 온 사람들은 신랑신부가 될 뻔한 커플과 나란히 앉아서 평소와 같은 예배를 보게 되었다. 목사는 결혼주례용으로 적어온 설교문 대신, 몇년째 반복하여 익숙한 내용인 '고통을 이겨낸 욥'에 관한 설교를 했다. 교회 부엌에는 결혼피로연을 위한 음식과 음료수가 가득 쌓여 있었다. 예배가 끝난 후, 제니 커플은 말없이 자취를 감추었고, 남은 사람들은 피로연 음식이 될 뻔한 음식들로 점심을 먹었다. 아무도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런 일이 있은 뒤 한 달이 지나서야 제니가 나를 찾아온 것이다.
"저 벌새들도 이제 곧 떠날 거야. 남쪽으로 떠나기 위한 준비가 거의 다 끝났거든. 몇 달동안 털갈이를 하더라. 그런데 처음엔 괴물 벌새가 나타난 줄 알고 놀랐잖아. 알고보니 내가 매일 보던 벌새들이었어."
제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창밖의 암컷벌새 레나를 쳐다보았다. 레나는 토마토 지지대를 감고 피어난 연보라색 나팔꽃 옆에서 정성껏 털을 고르고 있었다.
제니는 한달동안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지냈고, 결혼식 전날 밤에 무슨 일이 있었고 어떤 이유로 결혼을 취소했는지에 대해서 끝내 해명하지 않았다. 아마 가장 가까운 친구 몇 명에게는 말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들이 의리 있게 입을 다물어 주었기 때문에 소문은 퍼지지 않았다. 나도 여러가지 짐작되는 바는 있었지만 물어보지 않았다.
"언니, 저 너무 떠나기 싫어요. 저도 이럴 줄 몰랐는데..."
제니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동안 자기 입으로 얼마나 이곳을 떠나 새출발하고 싶은지, 공부가 얼마나 지긋지긋한지 수없이 말해놓고, 이제 와서 떠나기 싫다니... 나이 많은 남편이 공부가 길어져 언제 논문을 완성할지도, 언제 박사학위를 따고 취업을 할 수 있을지도 몰라서 전전긍긍하는 나같은 사람도 있는데... 제니의 변덕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한국에 있을 땐 막연히 미국땅에서 공부하고 일도 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어디까지나 언젠가는 더 나은 스펙을 갖추어 한국으로 금의환향하겠다는 목표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열심히 공부해서 박사학위를 따게 되어 한국대학들에 지원해보니, 한국에서 학부시절 명문대학을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자리를 얻을 수가 없어요. 남들 눈에는 제가 부러워보일지 모르겠지만, 제가 텍사스에 취직을 한다는 건 한국으로 돌아가는 길과 더 멀어지는 걸 의미해요. 게다가, 절대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남자와 결혼을 한다는 건 더더욱 미국에서 죽을 때까지 살아야 한다는 걸 의미하잖아요. 그렇게 생각하니 너무 공포스러웠어요. 부모님의 반대까지 무릅쓰고, 제 꿈과 살고싶은 나라까지 포기하면서 한 남자를 선택할 수 있을지... 그래서 결혼을 미루자고 한 건데...한 남자에게 너무 큰 상처와 모욕을 준 나쁜 여자가 되어버렸고...여전히 제 응석을 받아주며 저를 챙겨주지만 차갑게 식어버린 그 사람의 얼굴을 보며 이곳을 떠나자니, 제가 얼마나 큰 행복을 제 발로 걷어차버렸는지 후회가 밀려오는 거예요..."
제니의 말을 듣고나서야, 파혼한 심정을 어느 정도 이해할 것 같았다. 나 역시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꿈꾸던 하나의 여행지였던 곳에 발목이 묶여 그곳에 영원히 살아야 한다면, 그곳은 더 이상 꿈의 장소가 아니다. 잠시 타려고 올라탄 바이킹에서 영원히 내려오지 못한다면 목숨 걸고 뛰어내리고 싶을 만큼 바이킹은 공포의 공간으로 바뀌고 말 것이다. 두 개의 나라에 살면서, 두 개의 나라에 정든 사람을 만들어버린 자들의 숙명이 바로 이런 것이다. 철새처럼 여름엔 고국을 방문했다가 돌아와 다시 미국 땅에 정 붙이고 살기를 반복하는 일이 점점 유쾌하지 않게 되었다. 언젠가는 선택의 여지도 없이 한 곳에 남을 수밖에 없는 날이 온다. 아직 기회가 있을 때 내가 살고 싶은 곳을 선택하고 결단해야 한다는 압박이 점점 강해지고 있는 건 사실이었다.
"그랬구나...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 말밖에는 해줄 말이 없었다. 우리는 둘 다 말없이 창밖의 벌새들을 바라보았다. 저렇게 작은 몸으로 20여시간을 논스톱으로 날면서 대륙과 바다를 건너 남아메리카로 내려가는 새들이라니. 벌새들, 특히 루비뜨로티드 허밍버드는 그렇게 목숨 건 철새 여행을 한해에 두 번씩 감행하며 산다. 2~3월에 남쪽나라에서 북쪽 캐나다까지 올라오고, 8~9월이면 다시 남쪽으로 내려간다. 많은 새들이 이동 중에 목숨을 잃으며, 오래 살아봤자 2년을 넘기기 힘들다.
나는 끝까지 그렇게 두 나라를 오가며 살 자신은 없었다. 만약 미국에 남아야 한다면, 한국에서의 인맥과 경력 같은 건 모두 포기하고, 이곳에서 간호대학이라도 다녀서 간호사로 일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미국인이 되어버린 교포 지인들은 내게 여러가지 정착할 수 있는 방법을 추천해주었다. 그러면서도 늙어서 미국 양로원에 들어갔는데, 하루 아침에 치매로 영어 능력을 상실해버린 한국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러니까 힘을 합쳐 한국인 전용 양로원을 설립해야 한다고 했다. 그 모든 이야기들이 더이상은 젊지 않은 우리 부부에게 한없이 우울한 이야기로 다가왔다. 이제 미국이라는 나라는 내게 더이상 신기한 나라가 아니라 외롭고 공포스러운 감옥처럼 느껴졌다.
"새로운 곳에 정착하고 나면, 기분이 달라질거야."
아직 넌 젊잖아,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입을 다물었다. 서른이라는 나이는 아직 여러번 더 실패해도 되는 나이라는 말도. 그렇게 말하는 순간 내가 간신히 숨기고 있는 나의 절박감이 드러날 것 같아서였다.
제니는 아끼던 초록색 가죽 핸드백을 내게 주고 작별인사를 건넸다. 현관 밖까지 나가서 포옹을 하고, 제니의 차가 아파트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것을 지켜보다가 집으로 들어왔다.
이젠 사람을 떠나보내도 슬프다기보다는 멍한 때가 많다. 유학 첫해 정들었던 친구들이 갑자기 다른 학교로 떠나게 되었을 땐 내가 먼저 눈물을 보였다. 그걸 한 10년쯤 반복하고 나니 눈물은 흘리지 않는 대신, 점점 무거워지는 슬픔과 허무한 감정에 온몸이 반응을 했다. 빈혈 때문일 거라고 말해버리곤 했는데, 제니를 떠나보낸 바로 그날에서야 그 감정의 실체가 파악되었다. 그건 일종의 사별과 같았다. 이국 땅에서 오래 살다가 정해진 날짜에 모든 것을 정리하고 떠나야 하는 일은, 어쩌면 다시는 이곳으로 돌아오지 못할 것이며, 지금 만난 사람과도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거라는 점에서 죽는 일과 비슷했다. 그때가 오면, 알고 지낸 모든 사람들과 장소들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가진 물건을 대부분 나눠주거나 버리고 달랑 트렁크 몇 개 분량의 짐만 가지고 떠나야 한다.
사람들의 떠나는 모습은 참 다양했다. 어떤 사람들은 쿨하게 떠났지만, 어떤 사람들은 짐을 다 빼고도 친구 집에 얹혀서 한달이나 더 버티다가 떠났다. 떠나기 싫다고 징징거리는 사람들 때문에 힘들었던 적도 많았다. 나도 내 일상을 살아가야 하는데, 자꾸 찾아와서 밥을 해달라고 하거나, 짐 정리를 도와달라고 하면 은근히 짜증이 났다. 마지막에 공항라이드를 부탁하거나, 자기가 남긴 음식찌꺼기와 쓰레기까지 치워달라는 사람도 있었다. 반면 어떤 사람은 말없이 자기 짐을 정리하면서도, 남의 짐 정리까지 도와주었다. 어떤 사람들은 마지막까지 중고 물건들을 팔아 현금을 버느라 정리는 뒷전이었다. 아마도 그들은 죽을 때도 그와 비슷한 모습일 것이다.
다시 부엌 식탁에 돌아와 창밖의 벌새들을 바라보았다. 북쪽에서 남하중인 나그네 벌새들이 존스노우의 피더에 들려 넥타를 먹고 있었고, 존스노우는 어떻게든 그들을 방해하려고 맹렬히 싸움을 걸었다. 존스노우가 아무리 떠나고 싶지 않아도, 점차 늘어나는 나그네들과 맞서 싸우다 보면 지칠 날이 올 것이다. 맞서 싸우며 피더를 지키느니, 먹이가 더 풍부한 남쪽으로 떠나는 게 낫다고 판단하게 될 것이다.
존스노우의 얼굴 오른쪽에는 아직도 하얀 깃털 심지 같은 것이 몇 가닥 남아 있었다. 거기에서도 깃털이 돋아나와 얼굴이 완전하게 덮이는 날, 존스노우는 마침내 작별을 고하리라. 그 생각을 하니 머리에서 피가 빠져나가는 듯 멍해졌다. 나는 아직 존스노우와는 이별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존스노우를 바라보고 있을 때에만 내가 어느 나라에 있는지 잊을 수 있었는데...
'뭘 그렇게 두려워하나요? 한 곳에만 머물러 살면 갑갑하지 않나요? 이곳이 춥고 먹이 경쟁이 치열해서 희망을 품고 기회의 땅으로 떠나지만, 그 땅도 곧 다시 춥고 버티기 힘든 곳으로 변해버리잖아요. 그러면 다시 반대편으로 돌아가면 돼요. 오히려 기대를 품고 먼길을 여행하고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한 것도 같아요. 당신 눈에는 내가 똑같은 일을 의미없이 반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나요? 한번 시든 꽃은 다시 피어나지 않고, 매번 다른 맛의 넥타를 가진 새로운 꽃이 피어나는데도요? 온몸이 새로운 털로 덮였으니 나도 이전의 내가 아니죠. 내년 봄에 당신에게 돌아올 때 당신이 나를 기억하지 못해도 난 섭섭해하지 않을 거예요. 그래서 우리의 만남은 더욱 새롭고 그리울 테니까요.'
나의 벌새 존스노우의 속삭임이 들려오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