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항상 고장나 있는 라이터

담배 피우는 장면은 필요하고, 피우게는 못하겠고

by 제이니

한국 드라마들을 보다보면, 주인공이나 극중인물들이 담배를 피우려고 하다가 보통 '라이터' 가 켜지질 않아서 담배를 부러뜨리고 버려버린다. 물론 흡연인은 그런다고 절대 담배를 부러뜨리거나 하지 않는다. 불을 빌리거나, 담배를 담뱃갑에 다시 조심스럽게 집어넣는다. 담배는 비싸다.


하도 저런 장면들이 많이 나오다보니, 이제는 그런 장면이 나오면 '그가 정말 담배를 피울 수 있을까' 라고 스스로 퀴즈를 내게 된다. 공중파제작 드라마면 대부분 라이터를 고장내고, 넷플릭스나 OTT 들이 제작한 한국드라마들은 담배를 피운다. 솔직히 담배를 피우는데 성공하면 뭔가 후련하게 똥을 눈 기분이랄까.



드라마나 게임 등의 미디어가 발전하면서, 그 영향력이 꽤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사람은 다른사람들이 뭘 한다고 쉽게 따라하는 존재는 아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맨날 술먹고 온갖 디저트들을 먹지만, 그렇다고 사람들이 그걸 따라해서 다들 알콜중독자가 되거나 당뇨에 걸리지는 않는다. 유독 흡연에는 과민반응인지, 드라마 (한국의 드라마들은 애들이 볼만한 내용이 없다) 에서 담배피는 장면을 퇴출시켰다. 그런다고 사람들이 담배를 '따라서' 피우지 않거나,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경각심을 느끼게 해주지 않는다. 그냥 똥싸다 만 느낌으로 짜증만 날 뿐이다. 애시당초 담배를 꺼내질 말든지.


드라마나 영화는 모두 쇼이고 세상의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컨텐츠인데, 여기에 사용되는 표현을 정치적 올바름이나 의학적인 소견으로 제한하면, 그런 컨텐츠들은 자기검열을 하게되며 결국 멋진 드라마나 영화가 되지 못한다. 드라마나 영화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다고, 세상사람들이 담배를 피우지 않거나, 술을 마시지 않거나 하는 일들은 벌어지지도 않고 그 행동들이 늘어나거나 줄지도 않는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범죄를 저지르는 멋진 주인공들이 담배피우거나 술을 마시는 조연들보다 더 영향력이 있다면, 중국처럼 범죄자들의 해피엔딩 자체를 막아버리는 정책을 펼치는게 낫지 않을까?



쇼 비즈니스에서 도덕성을 이야기하는 것 만큼 머저리 같은 것이 없다. 그래서 토론에서 정치적 올바름은 논의의 가치가 있지만, 쇼 비즈니스에서 정치적 올바름이란 그저 쓸데 없는 자가검열일 뿐이다.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 들은 대부분 나쁜 것이다. 한국이 일본과 중국에 비해 훨씬 나은 영화와 드라마를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표현의 자유에대한 보다 폭넗은 인정이다. 그게 '정치적 올바름' 이니 하는 이유로 제한되기 시작하면, 다른 두 나라보다 훨씬 열악한 작품들이 나오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표현의 자유말고는 한국이 자본이나 시장 모두에서 저 두 나라의 상대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장항준감독의 영화 제목처럼 이제는 "라이터를 켜라!"


keyword
작가의 이전글중요한것은 무슨 질문을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