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과 2등의 차이는 1등과 꼴찌와의 차이와 별로 다르지 않다.
중국이나 미국에서 새로운 인공지능 모델이 나올 때마다, 한국의 뉴스들은 "왜 우리는 이런 것 못 만드나, 투자를 안 해서 그런가?"라고 이야기합니다만, 예전에 "왜 우리는 노벨물리학상을 못 받나"라는 단골 주제와 마찬가지로 포인트를 상당히 잘못 잡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청년들의 도전정신이 부족해서? 규제 때문에? 투자가 적어서? 정부의 지원이 부족해서?라는 고리타분하고 예측가능한 질문들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이런 생각은 기본적으로 "투입하면 산출된다"라는 굴뚝산업의 기본 정신이거든요. 그리고 그런 굴뚝 산업들도 그 산업이 생겼을 때는 최첨단이었습니다. 다만 우리는 그런 굴뚝 산업을 선진국의 선례를 보고 배워 빠른 후발주자로서 따라잡았던 것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최첨단 산업을 시작한 예는 전혀 없습니다. 반도체나 자동차도 현재는 우리나라가 주도적인 위치에는 있지만, "개선"과 "상품성"을 높였다고 해서, 그 산업을 한국이 최초로 만든 것은 전혀 아니죠.
우리가 우리에게 질문해야 할 것은 하나뿐입니다. "우리는 과연 세계에서 1등을 하고 싶은가"입니다. 우리나라에서 회사생활을 하든 사업을 하든 뭔가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면 주변에서 하는 소리가 있습니다. "전례가 있어? 다른 데서 해본 적 있어?". 이게 전형적인 2등 목표형 조직입니다만, 한국의 대부분의 조직은 저렇습니다. 개인단위에서 전례 없는 아이디어를 들고 나오면 팀단계, 본부단계, 회사단계, 공무원단계, 법 단계에서 엄청난 저항에 부딪힙니다. 사실 어느 나라나 그렇습니다만, 우리나라에서 겪은 저 조직들은 "전례"가 전가의 보도입니다. 남이 안 해본 건 안 하죠. 이러면서 남들이 해서 대박이라도 치면 "우리는 왜 저런 게 없나"라고 울그락불그락 해지죠.
논란의 여지는 있겠지만, 미국과 중국은 "1등을 해야만 하는" 나라들입니다. 다른 나라들을 무시하기도 하지만, 자국에서 살아남으려면 자국에서 1등을 해야 하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세계 1등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국가들이죠. 물론 덕분에 경쟁은 치열합니다만, "이 정도 따라 했으면 먹고살 만 해"라는 생각이 없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전례"만 따지면, 그냥 유교경전 붙들고 씨름하는 게 맞습니다. 1등은 힘드니 2등에 만족하고 싶으면 1등의 영광은 기대하지 않는 게 좋겠죠. 1등 하던 거 그대로 따라 하면 당연히 2등이 최대 목표죠. 기술의 세계에는 2등은 전혀 의미 없습니다.
한국 금융시장이 경제규모에 맞지 않게 후진적인 이유도 이와 비슷합니다. 실무 측에서 좋은 투자아이디어, 좋은 타이밍을 제시해도 경영진에서 "아 그런 거 해본 적 없지 않나? 전에 망했었던 거 같은데" 이러면서 투자해야 할 때는 멈칫거리다가, 미국 같은 곳에서 끝물이거나 골칫덩이 상품을 어쩌다 떠 앉았다가 수익이 날라고 하면, 증권사 사장들 모임에서 "아 그거 해봤더니 짭짤하더라" 이러면 사장들이 각자 회사에 돌아가서 본부장들을 푸시해 댑니다. 우리도 빨리 따라 해서 빨리 돈 좀 벌자 그거죠. 그러면 갑자기 1~2년 동안 그쪽에 몰려들어갑니다. 그러다가 보면 불완전 판매도 하고, 시장이 괜찮을 때까지는 모두가 해피하죠. 그리고 유동성위기라도 터지면 몽땅 망해버립니다. 그리고는 아예 그런 금융투자 상품 자체를 금감원에서 영원히 매장해 버리죠. 뭐 잘못된 게 있으면 프로세스를 개선해야 하는데, 그냥 "하지 마" 합니다. 이게 한국 금융감독의 현주소죠. 스스로 1등을 하려는 생각 없이, 2등 전략으로 가다가 안되면 폐기하는 전형적인 작태입니다. 1등은 문제가 뭔지 파악하고, 새로운 규제방법이나 접근법을 "창조" 하는 반면, 2등은 그냥 안되면 1등 따라 합니다. 1등이 답을 아직 못 냈을 때는 그냥 생각을 한하려고 다 폐기해 버리죠.
이게 1등과 2등의 차이입니다. 사실 1등과 꼴찌의 차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2등의 마인드는 꼴찌의 마인드와 별로 차이가 없습니다. 다만 2등이 좀 더 노력하는 것뿐이죠.
한국은 이제 빠른 후발주자 전략으로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걸로 기득권을 지키는 조직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후발주자 전략으로만 성장했던 자들이, 앞으로 나아가려는 국내파들을 가로막죠. 그러면서 미국의 OpenAI 같은, 그들에게 있어서는 "근본 없는 놈들", 한테는 업무협약이라는 소리로 돈만 퍼주면서 언론플레이나 하고 앉아있는 것을 보니 참으로 한심합니다.
그리고 한국의 "배임"과 "횡령" 이 난무하는 재계에서는, 아무리 선도적인 기업이 나오더라도 그 창업자는 이런 배임과 횡령의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살짝만 꼼수를 쓰면 바로 눈앞에 100억이 있으니, 100조 원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차버리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길가에 지갑이 있어서, 절도(정확히는 점유이탈물횡령)를 하게 된다는 것은 말이 안 되지만, 만약 그게 죄가 안된다면, 안집어가는 사람이 바보가 되는 세상인 것이죠. 그래서 상법도 개정하고, 증권/경제 관련 형사법을 강화해야 합니다. 이런 거 강화하면 기업의 활동을 위축시킨다? 그러면 미국이나 유럽은 다 자영업만 해야죠. 내부자 거래 한방에 죽을 때까지 감옥 가는데.
1등 할 생각이 없는 언론과, 1등 할 생각이 없는 정부와, 1등 할 생각이 없는 재벌들이 무슨 자격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 ChatGPT를 못 만드나"라고 얘기하는 것을 듣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니들만 없으면 ChatGPT 만들 수 있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