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효율성이 좋아도, 원칙을 버리면 안된다
법을 공부하다보면 상당히 의문스러운 제도 아닌 제도가 있는데, 바로 '형사합의' 라는 것이다. 하도 형사합의 라는 말들이 많이 나오고, 실제 양형기준에 의무사항으로 들어가다보니 실제 제도라고 생각을 하는 것 같은데, 여러가지 잡론이야 있겠지만 형사합의는 사실 형사법제도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행위이다.
형법의 당사자는 어느나라든 '국가' 대 '피고인' 이다. 검사는 국가를 대리하고, 변호사들은 피고인을 대리할 뿐인데 여기에 형사합의라는 '민사' 곧 피해자와 가해자가 끼어들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형법은 기본적으로 피해자를 구제하거나 피해자에게 만족감을 주기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형법은 피고인이 '국가'의 사회질서를 침해했기 때문에 피고인에게 형벌을 내리는 것이지, 피해자가 원해서 형벌을 내리는 것은 아니다.
물론 '친고죄' 라는 피해자가 고발을 해야 기소되는 사건들이 있지만, 아무리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더라도 '살인/강간' 이나 '폭행' 등을 일으킨 사람이 국가질서를 침해한 것에 대한 면죄부가 되지는 않는다. 피해자가 반대급부 없이 적극적으로 범죄자에 대해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으니 고려해달라' 라고는 할 수 있지만, 피해자가 단순히 가해자로부터 합의금을 넉넉하게 받았다고 해서 범죄자에 대한 국가형벌을 막거나 줄일 수는 없는 것이다. 설령 친구끼리 주먹다짐을 하고 웃으며 집에 갔다 하더라도, 만약 경찰이나 검찰이 이 사건을 '인지' 하면 각각을 대상으로 수사하고 기소할 수 있다. 물론 귀찮으니까 안하겠지만. 원칙은 그렇다는 것이다.
형사사건은 국가대 범죄자로 판단하고, 피해자는 가해자와의 민사소송으로 보상받아야 하는 것이 원칙인데, 한국의 형사사건 대부분은 민사소송 이전에 합의나 공탁이라는 이상한 짓거리로 형사에서 퉁 치고 만다. 이 방법의 장점은 효율성이다. 사건을 빨리 끝낼 수 있다. 판사가 부족하니 사건적체를 해결하려면 형사합의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럼 판사를 늘리면 되지 않을까? 어차피 형사재판에서 사건에대한 사실관계파악은 끝났는데, 그 재판을 기초로 해서 민사재판을 하는데 그렇게 부담이 클까? 아니라고 본다. 그냥 판사 수를 늘리기 싫은 것 뿐 아닐까.
전에 법대교수님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독일은 대법관이 100명도 넘는데, 왜 한국 대법관은 13명인가요", 대답이 가관이다. "자리가 늘어나면 자기 자리의 값어치가 떨어지잖아요". 사실 독일이 대법관이 많은 이유는 역사적으로 독일이 궁국적으로 영미법같은 "판례법" 으로 가기 위해서이다. 대륙법은 한계가 명확하지만 판례가 없던 국가들이 궁극적으로 "판례법" 체계로 가기 위해 만들어 둔 임시변통법에 가까운데, 그걸 또 일본이 카피하고, 그걸 다시 한국이 카피하다보니 근본이 뭔지를 모르게 된 것이다. 그러니 원래의 취지도 모르고 자기자리의 값어치 나부랭이같은 생각들을 하는 것이다. 뭐 사실 기본적으로 비교법 수업만 들어도 왜 그런지 알긴 하니까, 알면서 그러는 것이긴 하지만.
형사합의라는 '제도' 아닌 제도에 의해 이익을 받는 집단은 '부자' 또는 '권력자' 들 뿐이다. 피해자가 원하는 만큼 돈을 줄 수 있으면 국가질서를 어느정도 무시해도 되는 것이다. 그러니 말도 안되는 판결들이 나오는 것이다. 효율성에 극단적으로 집착하게 되면, 이런 일들이 생겨난다. 가난한 생계형 범죄자는 공탁할 돈도없고, 합의금도 없으니 본인의 범죄에 온전히 처벌받고, 부자나 권력자는 판검사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둘째로 하더라도, 합의금부터 뿌려대면 제대로 된 처벌을 받을까? 매우 반헌법적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효율적이니까 원칙을 버려도 된다? 그런 생각으로 계엄도 하게 만들고, 불법적인일들도 하게 하는 것이다. 효율성은 원칙을 지키는 가운데서 추가해야하는 악세사리일 뿐이지, 그것이 목적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방향이 틀리면 아무리 빠르고 효율적으로 노를 저어도 목적지에는 도달할 수 없다. 지구한바퀴 돌면 원래위치로는 돌아올 수 있기는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