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이유없는 비용은 없다
팁문화는 유럽에서 귀족들이 자신이 대접에 만족했을 때 주던, 지극히 귀족적인 문화라서 나는 매우 싫어한다. 나는 귀족적인 것은 전부 때려부수고 싶다. 사람이 귀하고 아니고는 그 사람의 행동이 결정하는 것이지, 아빠가 누구고 엄마가 누구라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아무튼 유럽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던 이백년전 개도국 미국의 상류층들은 이런 풍습을 배워와서 자국의 레스토랑들에 전파시키는데, 이게 미국의 실용주의와 결합하면서 레스토랑의 웨이터들 월급을 깎아버리고 팁이 실질적인 보수가 되어버리게 만들어 버려 지금까지 오고 있는 것 같다.
최저임금제도가 잘 지켜지는 유럽이나 아시아에서는 이런 팁 문화가 없어지고, 인권마저 강한 유럽은 팁도 안받고 나라가 피고용인의 권리를 지켜주니 불친절한 웨이터들이 많아지게 된다. 한국도 이제는 "손님이 왕" 이라고 하면 꼰대취급을 받고, 직원들의 인권을 잘 지켜주려고 하는 것을 보면 크게 나쁜 것 같지는 않다. 만원짜리 밥 한끼 먹으면서 무슨 왕. 만원에 밥 차려주는게 보살이지.
반면 미국은 레스토랑의 점원들이 대부분 매우 친절하다. 좀 지나칠 정도로 친절할 때도 많다. 물론 안친절한 사람들도 있지만, 사람들이 대개 그런사람들한테는 팁으로 복수를 해버린다. 미국도 각 주별 최저임금이 존재하는데, 이 최저임금이 적용되지 않는 것이 팁을 받는 식당 종업원들이다. 예를들어 어느 주의 최저임금이 10달러라면, 웨이터나 웨이트리스의 최저임금은 3~4 달러 수준에 결정된다. 이래서야 물가비싼 미국에서 살 수가 없으니 팁으로 보전하는 것이다.
그냥 최저임금을 주면 되지 뭐하러 저렇게 다들 피곤하게 살까 하지만, 그건 음식 사먹는 소비자의 입장이고, 식당주인의 입장에서는 팁 제도 만큼 유용한 것이 없다.
식당을 차린다고 생각했을 때, 가장 비용이 많이 드는 부분이 고정적인 인건비이다. 그리고 사람을 고용하고 내보내는 것이 상황에 따라서 쉽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장사가 잘되면 사람을 못찾아서 힘들고, 장사가 안되면 고정비때문에 부담이 너무 심해진다. 그런데 최저임금은 적게 주고 팁으로 월급을 가져가는 직원들이라면? 식당입장에서는 손님이 적으나 많으나 고정비가 적으니 리스크가 적어지게 된다. 종업원 입장에서도 손님이 적으면 자신의 수입이 감소하니 결론적으로 식당과 종업원의 이해관계가 어느정도 일치하게 된다.
최저임금이 같이 적용되는 한국의 종업원은 식당 사장과 이해관계가 정 반대인데, 식당이 손해만 안 볼 정도라면 종업원 입장에서는 장사가 더 잘 되어봐야 본인 일만 늘어나기 때문이다. 장사 잘 된다고 웨이터나 웨이트리스 월급을 화끈하게 올려주는 사장님들을 나는 별로 본 적이 없다. 그러니 장사가 잘 되는 음식점들은 사장은 아쉬울것 없어서 불친절해지고, 종업원은 일만 많아져서 불친절해지기 일쑤이다. 이런 비즈니스는 유명세 때문에 한 곳정도는 유지될 지 몰라도, 사업을 확장하기 매우 힘들다.
한국에 팁 문화가 들어오든지 말든지는 관심이 없지만, 구조적으로 소위 '봉사료' 는 이미 지불한 음식값에 들어있는 것이 한국이다. 그것 때문에 최저임금도 음식점 종업원에 적용 되는 것인데 팁을 더 달라고 하면 애시당초 팁을 왜 주는 지에 대한 심각한 몰이해가 있는 것이다. 한국의 레스토랑들의 급료구조는 기본적으로 팁이 없는 맥도날드와 같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도 푸드트럭이나 셀프서비스 식당들은 팁을 주지 않는다. 내가 가서 받고 알아서 정리하는데, 팁을 왜 주나. 관광객 상대로 길거리에서 음식 팔면서 태블릿으로 팁 달라고 헛소리 하는 업자들도 많은데, 그냥 무시하면 되고, 현지인들은 실제로 그냥 무시해버린다. 웨이팅 서비스를 하지 않으면 당연히 팁을 줄 필요가 없는 것이다. 팁은 무슨 강제성 있는 세금같은 것이 아니다. 설령 팁을 하나도 안주고 가도, 유튜브나 영화처럼 뭐 쫒아나와서 팁달라고 난리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물론 그 식당에 다시 갈 예정이 있다면 다시 생각해봐야겠지만.
팁이라는 것이 왜 미국에서 반 강제성을 띄게 되었는지, 그리고 팁으로 먹고사는 종업원들에 대한 법적 보호 (최저임금) 등을 살펴보면, 미국의 팁이라는 것은 합리적인 경제적 유인이 있어 유지되는 것이다. 물론 좀 짜증은 나겠지만. 반면 유럽이나 동아시아의 팁이라는 것은 실용적인 경제성이 있어서라기 보다 그냥 귀족적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매우 싫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비스가 많이 필요한, 고기를 굽는다든지, 자주 들락거리면서 이것저것 해줘야하는 횟집이라든지 하는 곳에서는 한국이라도 나는 팁을 주는 편이다. 물론 음식값의 20%씩 주는 미친짓은 안하지만.
미국에서는 경제적인 유인이 있어서 유지되는 '팁 제도'를, 그저 미국 흉내내기 같은 어설픈 '팁 문화' 로 들여오려고 아무리 해 봤자 먹고사니즘을 이기는 문화같은 것은 거의 없다. 경제적 유인이 없는 '경제 문화'는 유지되지도 못하고, 만들어야 할 필요도 없다. '팁 제도' 는 경제적 유인에 의해 유지되는 제도일 뿐이다. 하지만 한국의 '팁 문화' 는 경제관념을 말아먹은 그냥 사대적인 발상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