츤데레와 가스라이팅 그 어느 사이.
아마 이 작품이 21세기에 나왔다면 온 세상의 지탄을 받는 망작이 되었을 거라 확신한다. 극 자체는 잘 만들기는 했지만, 좋아하는 사람을 순종시키는데 최악의 가스라이팅을 보여주고, 어떻게 보면 정신적 학대수준으로 여성을 몰고가는 작품이다.
부제목에는 츤데레와 가스라이팅 그 어느 사이라고 했지만, 사실 츤데레라기 보다는 거의 일방적인 가스라이팅 및 정신적 학대로 여성을 굴복시키는 이야기. 하지만 어느 특정 시대에 그와 다른 시대를 사는 우리가 뭐라 하는 것은 상당히 무식하고 예의없는 행동이기는 하다. 하지만 인권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또는 인간의 마음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이런 마음은 시대를 관통하는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부인 이름은 앤 해서웨이인데, 영화배우 앤 해서웨이는 아니다. 셰익스 피어 소네트중에는 자기 부인 이름을 가지고 말장난 쳐놓은 것도 있다. 실제는 어쨌는지 모르겠지만, 부인을 상당히 사랑했던 것 같은 셰익스피어가 이런 작품을 썼다는게 좀 이상하기는 하다.
1990년대까지는 사실 저런 말괄량이 길들이기 식의 정신적 학대로 결혼에 성공한 꼰대 아저씨들이 많다. 적당히 했으면 말괄량이 길들이기였고, 범죄적으로 했으면 서세원이나 양뭐시기, 지금은 이름도 잊혀져가는 성범죄자들의 범죄가 되는 것이었던 것이다. 그런 사람들보다 그런 사람들을 용인해왔던 사회가 더욱 역겨운 것이지만, 세상일이 모두 그렇듯이 점차 나아져 와서 다행이기는 하다.
세상은 정반합의 원칙이 상당히 잘 지켜진다. 무언가 좋지 않은 환경이 있으면, 그것에 반하는 운동이 생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어떤 정신적 운동이란 일반적으로 교조화/강성화 되기 마련이고, 다시 그에 반하는 운동이 다시 생기면서 우리 모두가 용인 할 수 있는 어느 지점으로 끊임없이 수렴해나가는 것이다.
극단적 남존여비사상이 극단적 페미니즘을 만들고, 그에 다시 반페미니즘이 등장하면서 사회가 어수선해 보일 수는 있어도, 언제나 새로운 생각과 그에 반대하는 생각은 시간이 지나며 결국 합일점을 찾게 되는 것이다.
말괄량이 길들이기가 현대에 매우 부적절한 작품이라 할 지라도, 그것을 현대의 잣대로 평가할 수는 없다. 400년전에는 저런 황당한 생각들이 당연했었구나.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여성이 보편적으로 참정권을 가지게 된 것은 불과 60년도 되지 않는다. 거꾸로 이야기하면 수천년간 여성은 정치적으로 억압받아왔다는 것이다.
나는 교조적 페미니스트같은 사람은 아니지만,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만들기위해 아래로 내려간 부분에 딱 수평이 될 만큼의 힘을 가한다고 해서 운동장이 평평해지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기울어진 운동장은 한쪽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면서 결국 수평으로 수렴하는 것이다. 세상에 깔끔한 것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