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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리 May 08. 2018

삶은 혼자 걷는 외로운 길이 아니다.

그렇다고 믿는 것일 뿐.

여명이 밝아오면 조용히 일어나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혼자 걸었다. 산티아고 길을 걷는 사람은 많다고 들었지만 내가 걸었던 그때는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인지 순례자들이 많지 않았다. 안개가 내려앉은 뿌연 길을 혼자서 걷는 일은 고독했다. 바로 앞은 보였지만 멀리는 보이지 않았다. 배낭의 양쪽 어깨끈을 두 손으로 꼭 쥔 채 스산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어렸을 때부터 늘 혼자 선택하고 살아왔다 생각했다. 결국 혼자 와서 혼자 가야 하는 세상이기에 마음을 독하게 먹자고. 외로울 때 외로운지 알고 고독할 때 고독하다고 느끼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앞으로 앞으로 걷다 보니 예정했던 목적지에 누구보다 먼저 도착했다. 짐을 풀고 마을에 있는 성당으로 갔다. 성당 앞 작은 벤치에 순례자로 보이는 흰색 수염을 길게 기른 할아버지가 낡은 운동화에 묻은 흙을 털어내며 앉아 있었다. 그의 옆에 가서 앉았다. 산티아고 길은 모든 사람이 이방인이기에 누구라도 쉽게 친구가 될 수 있는 곳이었다.


 "혼자 순례길에 오셨나요?"


홀로 걷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봤기에 자연스럽게 던진 질문이었다. 할아버지는 운동화 두 짝을 한 손으로 들고 툭툭 턴 뒤 바닥에 가지런히 놓으면서 대답했다. 


"우리는 단 하루도 혼자였던 적이 없습니다, 우리가 걸었던 모든 길 위에는 어제도 엊그제도 현재에도 과거에도 늘 누군가가 그 길을 걸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영혼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단 하루도 혼자였던 적이 없어요. 저는 오늘도 그 수많은 사람들과 정신적 연결 속에 길을 걸어왔습니다."


Ephiphany.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그렇다. 나는 단 한 번도 혼자였던 적이 없었다. 순례길을 걸을 때는 그 길을 걸었던 수많은 존재들이 나와 함께 있었다. 내가 순례길 위에 작은 묘비를 지났을 때 그곳을 여행했던 과거의 여행자가 내 옆에 있었고, 어제 이 곳을 지나갔던 순례자의 영혼의 존재가 옆에 함께 있었다. 


내가 홀로 책을 읽으며 감동을 느낄 때 그 책의 저자와 이야기에 깊게 매료된 수많은 독자가 나와 함께 있었다. 바라나시 가트에 앉아 명상을 할 때에도 전 세계에 명상을 하는 모든 이들이 함께 정신적 유대를 이루고 있었으며, 아침에 일어나 뜨거운 차 한잔을 끓여 마실 때에도 차 밭에서 찻잎을 정성 스래 따던 농부가 나의 곁에 있었다. 


혼자라고 생각한 것은 그저 눈으로 보이는 것이, 나의 육체가 그렇다고 믿으며 나와 함께 했던 그 수많은 존재를 외면하고 또 외면했던 것이다. 삶은 혼자 사는 게 아니라 우주에 흩어져있는 수많은 존재들과 함께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외로울 필요가 없고 고독할 이유가 없다. 

삶은 결코 혼자 걷는 외로운 싸움이 아니다.



인간과 우주는 가장 근본적인 의미에서 연결돼 있다. 인류는 코스모스에서 태어났으며 인류의 장차 운명도 코스모스와 깊게 관련돼 있다. 인류 진화의 역사에 있었던 대사건들뿐 아니라 아주 사소하고 하찮은 일들까지도 따지고 보면 하나같이 우리를 둘러싼 우주의 기원에 그 뿌리가 닿아 있다.
- 칼 세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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