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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리 Oct 23. 2019

적당히 하기

삶의 의식을 되찾아 오다


온몸이 욱신욱신 안 아픈 곳이 없었다. 위경련까지 와서 꼬박 이틀을 누워있었다. 앉거나 서기만 하면 다시 배가 아파서 새우처럼 등이 저절로 구부러졌다. 그 와중에도 과제는 해야 하고 페이퍼는 써야 하고 책은 읽어야겠다며 책상에 앉았다가 누웠다가 하기를 반복 결국은 그냥 다시 침대에 가서 드러누웠다. 혼자 있으려니 너무 서럽고 외로워서 카톡으로 친구들과 연락하기도 하다 보니 괜히 멀리 있는 친구들 걱정시키는 것 같아 핸드폰도 옆으로 치워버렸다. 그러다 보니 문득, 내가 너무 나를 고단하게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고 참 열심히 했다. 하나만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그 하나가 사실 너무나도 큰 하나였다. 그동안 여행을 가거나 친구를 만나거나 따로 시간 내어 무언가 재밌을만한 것들을 하지 않았다. 오로지, 대학원에서 필요로 하는 공부. 그리고 또 다음 목표를 향한 준비. 그렇다 보니 매일 늘 머릿속이 해야 하는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 쉼을 주는 시간에 하는 일들은 무의미하게 인스타그램을 본다거나, 운동을 하는 게 고작이었다. 그 결과, 나는 설렘을 잃었다.


즐겁게 시작한 일들이 해야 하는 일이 되는 순간부터 설렘은 사라지고 의무만 남는다. 그 의무에 최상의 퍼포먼스를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까지 겹치면 삶은 말 그대로 늦가을 낙엽처럼 힘을 잃고 툭툭 떨어져 내린다. 물론 좋은 결과들은 나타난다. 그동안 열심히 한 게 있기 때문에. 하지만 순간을 최선을 다해 즐기며 살았냐는 물음에는 입을 꼭 다물고 눈은 아래를 쳐다보게 된다.


아프니깐 알았다. 하물며 아픈 순간까지도 내가 해야 하는 일들을 하지 못해 속상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것 참 잠시 내려놓는다고, 아니 그냥 내려놔도 인생에서 바뀌는 거 하나 없는데 참 피곤하게 산다 싶었다. 그냥 아픈 것도 최선을 다해서 아프려고. 그 시간까지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은 약간 정신병자 같았다.


잠시 아프고 나니 깨달았다. 삶에는 커리어를 위해, 앞으로 전진하기 위해 노를 저어야 하는 순간도 있지만, 잠시 노 젓는 것을 멈추고 주변 환경을 바라보며 즐길 줄 아는 여유도 부려야 한다고. 저녁시간에 맛있는 요리를 하기 위해 장바구니를 챙겨 시장을 보고, 야채를 깨끗하게 씻어 조각조각 썰고, 국이든 찌개든 보글보글 끓여 맛있게 먹는 것. 사랑하는 사람과 하루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며 감정을 충실하게 주고받는 것. 아침에 일어나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따뜻한 차 한잔 하는 것. 생각을 정리하는 일기를 쓰는 것. 힘든 하루 끝에 뜨거운 물에 향기로운 에센셜 오일 몇 방울을 넣고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읽으며 여유 부리는 것. 이 모든 삶의 의식들은 사실 하나하나 지친 나를 채워주고 다시 일으켜주는 것들이었다. 이런 의식이 사라졌을 때 그때 바로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 노트북 앞으로 가서 해야 하늘 일을 하고, 허리가 아파서 잠시 허리를 피기 위해 일어났다 이내 다시 의자에 앉고, 배가 고프긴 하지만 요리할 시간이 없다 생각하여 대충 끼니를 때우고, 더 이상 머리가 돌아가지 않을 때쯔음 언제 해가 저물었는지도 모른 채 아무 생각 없이 티브이를 보다 잠이 들어버리는. 그런 나날이 반복되다 보니 결국 병이 나버린 것이다.


과연 그렇다고 해서 드라마틱하게 일의 능률이 높아지고 훌륭한 퍼포먼스를 보였나? 물론 짧은 시간 안에 일을 마친 것은 맞지만 그만큼 포기해야 했던 것들이 있기에 결과적으로 ‘윈’ 한 것 같진 않다.


나 자신에 대한 합리적인 기대치가 아닌, 그저 바라는 기대치에 맞추어 살다 보면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없다. 기대치를 조금 낮추고 만족도를 높이는 삶이 훨씬 좋은 삶일지도 모르겠다. 삶의 의식을 되찾고 조금 천천히 그리고 즐겁게 다음 ‘해야 할 일’을 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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