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발견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
길을 떠나본 사람은 누구나 어두워지기 전에 시간에 쫓기듯 발걸음을 재촉한 적이 있을 것이다. 걷기를 사랑한 작가 다비드 르 브르통은 숲에서 길을 잃었는데 땅거미가 어두워지면서 사라진 좀 전의 오솔길로 돌아가는 편이 더 불안할 정도로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나는 특히 콤포스텔라길 위에서 한참을 헤맸던 기억이 있다. 2010년 10월 21일 오전 푸엔테 라 레이나에서 출발해 다음 목적지인 에스텔라에 도착한 시간은 겨우 오후 세시였다. 보통 하루에 25킬로미터를 걸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날은 무언가 아쉬웠다. 5킬로미터에 한번 작은 마을이나 순례자 숙소가 나오기 때문에 지도를 확인하지 않고 다음 목적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순례길을 걷다 보면 나보다 먼저 간 순례자들을 만나거나 휴식을 취할 때 천천히 오고 있는 순례자들과 마주치곤 했다. 하지만 그 길 위에는 이상하리만큼 사람이 없었다. 다시 돌아갈까 생각했지만 일단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어느덧 어둡고 난잡하게 얽혀 있는 식물과 나무들 사이를 걷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갑자기 앞이 까마득해졌다. 길을 안내해주던 표지판이 보이지 않기 시작하고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긴장을 했는지 목이 말라 물을 마시려고 했더니 물병은 비어있었다. 에스텔라에서 이미 다 마시고 물을 채워 넣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먹을 거라곤 당근 두 개가 전부였다. 새로운 마을에 도착해야 한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발걸음은 빨라지고 가방끈을 꼭 쥐은 손에는 땀이 났다.
그렇게 걷다 보니 멀리 작은 마을이 보였다. 12킬로 미터 정도를 더 걸어서 그런지 이미 다리가 조금씩 쑤시고 있었다. 산을 넘고 황무지 같은 벌판을 지나 멀리 보였던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하룻저녁을 머물 순례자 숙소를 찾으니 이게 웬일. 이 마을에는 숙소가 없다고 했다. 지역 주민은 나에게 순례길이 아니지만 2킬로미터 거리에 있는 옆 마을로 가던가 10킬로미터가 떨어진 로스 아르고스로 가라고 했다. 로스 아르고스는 원래 내일 가기로 했던 곳이었는데 고민 끝에 나는 옆이 아닌 앞으로 가기로 했다. 작은 마을에서 물을 보충하고 당근을 조금 먹은 뒤에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때가 이미 일곱 시가 가까워진 시간이었다.
지도를 보니 로스 아르고스는 10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었고 걸어서 두 시간은 가야 하는 거리였다. 내 다리가 버텨줄지는 몰랐지만 도전해보고 싶었다. 그때까지 나는 이미 하루의 한계치인 30킬로미터를 걸었고 몸이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 다음 목적지까지의 그 구간은 밀을 재배하는 농경지였는데 끝없이 펼쳐진 밭에는 저 멀리 지평선 위에 걸려있는 태양을 제외하곤 아무것도 없었다. 조금 더 걷다 보니 해는 저 멀리 자취를 감추었고 급격히 추워지기 시작했다. 가방에서 옷을 꺼내 입고 재킷의 지퍼를 목 끝까지 끌어올렸다.
아무도 없는 길 위에서 갑자기 걱정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오늘 안에 도착하지 못하면 어쩌지? 표지판을 보지 못해 길을 잃어버린다면? 여우가 나타나거나 멧돼지 떼가 갑자기 나타나면 뒷걸음질 쳐야 하나? 핸드폰 배터리가 조금밖에 없는데, 렌턴이 없으니 완전히 어두워져 앞이 안 보이면 침낭을 깔고 이 곳에서 자야 하나?' 걸음이 빨라지고 몸에서 알 수 없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해가 수평선 밑으로 사라지고 나니 갑자기 어둠이 밀려왔다. 분명히 농경지밖에 없는데, 이 농경지를 지나고 나면 마을이 나타날 텐데, 왜 이렇게 조급해지고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지 어디서 이렇게 무력감이 오는지 알 수 없었다.
눈에 힘이 들어가고 눈알은 빠르게 오른쪽 왼쪽을 살피었고 다리는 미친 듯이 앞을 향해 나아갔다. 가도 가도 끝도 없는 밀밭밖에 없었다. 이미 어둠이 내렸고 스산했던 공기는 차갑게 바뀌어 있었다. 마을이 나타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다리에는 이미 감각이 사라진 지 오래고 정신줄 하나만 붙잡고 앞으로 계속 나아가고 있었다. 이미 아주 깜깜해져서 지금 내가 걷고 있는 길만 보일분 저 멀리 마을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때 갑자기 노랗고 빨간 불빛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밀을 추수하고 있는 농부가탄 트랙터의 불빛이었다. 이렇게 기쁠 수가. 나는 그에게 다가가서 알베르게에 가고 있는데 도와 달라고 했다. 그는 스페인어밖에 할 수 없었고 나는 스페인어를 모르는지라 의사소통은 되지 않았지만 이 시간에 순례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드문지라 그는 내가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그는 일하다 말고 나를 옆에 태우고 마을을 향해 나아갔다. 마을 입구에 도착하니 갑자기 열댓 마리는 되어 보이는 개들이 미친 듯이 짖고 있었다. 내가 혼자 도착했다면 어김없이 공포에 떨어야 했을 거라고 생각하는 순간 순례자 숙소에 도착했다. 이름 모를 순례자를 도와준 아저씨께 감사의 인사를 몇 번이고 하고 숙소 안으로 들어갔다.
도착한 시각이 밤 열 시를 넘기고 있었기에 알베르게 주인과 모닥불 근처에 앉아있던 다른 순례자들은 두 눈을 크게 뜨고 쳐다봤다. 이 시간에 순례자 오다니 보통은 잘 없는 일이었다. 나는 두려움에서 벗어나 익숙한 공간으로 들어온 것을 축하하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열두 시간 만에 도착한 숙소였다. 갑자기 온몸에 피로가 몰려왔다. 긴장했던 다리가 풀려 갑자기 쥐가 났다. 배낭을 옆에 두고 카펫 위에 앉아서 다리를 주물르기 시작했는데 2층에서 순례자 한분이 내려오더니 한국어로 "혹시 한국인이세요?"라고 물어봤다. 걱정 어린 눈빛으로 밥을 안 먹었을 테니 밥을 주겠다며 어서 올라오라고 손짓했다. 밥보다 더 고마운 한국인의 정을 순례길에서 만날 줄이야. 2층에 올라가니 한국인 순례자 네 명이 함께 모여 이야기하고 있었다. 따뜻한 쌀밥 위에 계란 프라이를 하나 얹은 소박한 밥을 받아 든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마음만으로도 배가 불렀다.
몸이 나른해지면서 피로가 몰려와 먼저 들어가 쉬겠다고 했다. 간단하게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누웠는데 갑자기 온몸이 아프고 한기가 들어 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침대에서 일어나 알베르게 주인에게 혹시 근육 진통제와 담요를 가져다줄 수 있는지 물어봤다. 알베르게 주인 할아버지는 갑자기 나를 조용히 거실로 나오라고 하더니 모닥불 앞 흔들의자에 앉으라고 했다. 그러더니 도수가 높은 술 한잔을 마시고 당분이 높은 알약 몇 알을 입에 털어 넣어 주고 눈을 감고 있으라고 했다. 그는 부드러운 손길로 천천히 발과 종아리를 마사지해주기 시작했다. 따뜻하고 다정한 할아버지의 손길이 느껴졌다. 그는 마사지를 끝낸 뒤 내 다리를 잡고, 또 내 머리에 대고 조용히 기도를 해주셨다. 그분의 따뜻한 에너지가 내 몸속으로 들어오는 게 느껴지고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43킬로미터를 걸어온 이 곳. 나는 잠들기 전 두려움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분명히 항상 걷던 밭이었는데, 이곳이 끝나면 어김없이 마을이 나올 것이었고 다른 것은 없었을 거였다. 10킬로미터라고 이미 알고 있었고 길은 하나였기 때문에 헤맬일도 없었다. 해가지면 당연히 어두워지는 것이고 기온은 떨어진다. 밀밖에 없는 농경지다 보니 야생동물도 없을 터였다. 여섯 시가 조금 안돼여 다시 어렴풋이 해가 밝아올 것이었다. 이미 충분히 알 수 있는 것들이었는데 도대체 무엇이 그렇게 무서웠던 것일까?
두려움. 두려움이라는 에너지가 나를 감싸 안으니 시야가 좁아지고 마음이 급해지며 걱정과 불안이 몰려왔다. 내가 잘 모르는 것 미지의 어둠 그리고 어둠이라는 것에 나 스스로가 만들어낸 편견이 나를 두려움으로 이끌었다. 어두운 미지의 공간을 홀로 지내보지 않은 나였다. 항상 누군가와 함께 있거나 내가 스스로 제어할 수 있는 상황 속에 있었다. 하지만 자연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거대한 우주 속 하찮은 한 줌의 숨결에 지나지 않았다.
홀로 침대에 누워 하루를 돌이켜 보니 문득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막연한 감정이 온몸으로부터 솟구치는 동시에 감사의 마음이 들었다. 모든 것이 감사했다. 고통이 나를 신에게 인도해준 듯했다.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며 강한 존재가 나와 함께 있음을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열두시간을 걸으면서 마주했던 두려움은 나의 삶을 또 다른 형태의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해주었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안에 존재하는 것이다.
두려움이 존재하는 순간 비로소 사랑은 자신이 체험할 수 있는 것으로 존재할 수 있다. - 닐 도널드 윌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