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영리 공부에서 임팩트 투자 펀드를 만드는 일에 참여하기까지
올바른 방향으로 열심히 일하면 기회가 온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게 아닌가 싶다. 미국에 와서 대학원을 다닌 지 어언 9개월이 지났다. 미국에서의 경험도 없었고 너무 노매딕 하게 살아왔던지라 바로 취직이 어려워 선택했던 대학원 과정이다. 처음에는 기업관점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아주 얕은 지식과 관심으로 시작했다가 점점 기업재단, 비영리 재무 쪽을 깊게 파고들기 시작했고 사회적 가치와 금전적 이익을 동시에 창출하는 임팩트 투자라는 분야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임팩트 투자는 벤처캐피털, 사모펀드, 뱅크, 재단, 혹은 아주 돈이 많은 개인이 비영리단체나 하이브리드형 사회적 기업에 투자를 함으로써 사회나 환경적 어떤 특정한 문제를 해결하고 동시에 이익을 창출하는 투자모델이다. 이 분야가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한 건 10년이 조금 넘었을 정도로 아직 걸음마 단계이지만 발전 속도를 보면 2013년 50억 달러에서 2020년 현재 5천억 달러 규모로 커졌으니 성장 속도는 무척 빠른 편이다.
내가 이 분야에 매료되기 시작한 건 비영리 재무를 가르쳐 주시던 교수님 덕분이다. 미국 비영리 영역 GDP는 우리나라 전체 GDP와 맞먹을 정도로 미국 산업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이 안에 존재하는 무수히 많은 비영리기구들은 고질적으로 재정 문제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비영리 섹터로 들어오는 사회 자본의 부족이다. 비영리섹터는 오랫동안 비즈니스 섹터 혹은 개인이나 정부로부터 자금을 받아 자본주의 시스템이 해결하지 못한 사회 환경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적 자본은 늘 매우 제한적이고 그 양은 크게 늘어나지 않는다는데 있다. 비영리 단체들이 스스로 수익을 창출하는 활동을 하긴 하지만 다양한 법과 규제 그리고 외부의 시선으로 인해 지속 가능한 시스템을 만들어 내지 못해 왔다는 것도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이 때문에 늘 부족한 자원은 Starvation cycle 즉 만성적인 재정 악화를 만들어 냈다.
두 번째 이유는 비영리 섹터 영역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재정 경영 리더십의 부재이다. 비영리 섹터 사람들은 ‘돈’ 이야기하는 걸 껄끄럽게 생각한다. 오래전부터 강조되어온 헌신과 봉사 정신은 결과적으로 이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단체에 암묵적으로 돈과 멀어질 수밖에 없는 고결한 윤리를 강조하게 되었고, 그 결과 단체는 제대로 된 예산조차 책정하지 못해 늘 재정적자에 시달리고, 따로 현금성 자산을 마련하지 못해 쓸 돈이 없어지는 상황에 직면해 왔다. 실제로 캘리포니아 주에 있는 비영리 단체 중에서 60% 이상이 3개월 미만 생존할 수 있는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말이 길어졌지만,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교수님은 비영리단체가 재정관리를 잘할 수 있는 리더십을 키우는 것과 임팩트 투자를 통해서 비즈니스 섹터로부터 더 많은 사회적 자본을 비영리섹터로 가지고 오는 것을 제시했다.
나는 한 번도 공부해보지 않았던 임팩트 투자 분야의 공부와 재무제표를 통해 재정상태를 점검하고 적절한 대책을 내는 일을 정말 신명 나게 배웠다. 수많은 비영리 단체의 재무제표를 읽고 그들의 재정상태를 파악하며 필요한 제안을 수도 없이 반복했고 그 과정을 통해 나 역시 멀리해왔던 투자, 재무, 돈 이런 것들에 대해서 쉽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역시 재미를 쫒는 사람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했던가. 나는 정말 운이 좋게도 최종 성적 100점 만점에 96점으로 이 수업에서 가장 좋은 점수를 받게 되었고, 몇 주 후에 교수님은 나에게 내가 꿈에 그리던 임팩트 투자와 관련된 일을 함께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코로나 사태로 많은 것이 불투명한 상태에서 먼저 나에게 손을 내밀어준 교수님에게 지금도 무한 감사를 하고 있다. 사실 재미있기도 했지만, 잘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었다. 다른 학생들이 다섯 페이지 쓸 분량의 분석 보고서를 나는 single space에 페이지 주변 테두리 간격을 0.5 인치로 줄여 10페이지를 써냈고, 보다 명확하게 설명하기 위해서 5년 치 조사 대신 10년 치를 조사했으며, 프레젠테이션을 한 후 서면 리포트를 다시 작성해서 보냈다. 내가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지, 실제로 이게 적용 가능한 것인지를 끊임없이 물어보고 또 물어봤다. 전화로, 줌으로, 문자로, 이메일로 계속해서 교수님에게 나의 관심사를 어필했고 교수님은 결과적으로 자기가 CEO로 있는 재단에서 가장 코어로 생각하는 다음 비즈니스를 함께 기획해 보자며 나에게 기회를 준 것이다. (야호)
내가 일하게 될 곳은 미국의 유명한 미식축구 선수가 은퇴하면서 수십억을 기부해 만든 비영리 재단이다. 사실 이러한 부분은 우리나라의 돈이 많은 사람들이 좀 보고 배웠으면 하는 부분인데, 미국은 사회적으로 성공을 거두고 막대한 부를 가지게 되면 자연스럽게 그 돈을 재단을 만들거나 다른 비영리 재단에 기부한다. 빌 게이츠 부부가 만든 게이츠 재단도 같은 맥락이고, 워런 버핏 역시 그의 부 99%를 게이츠 재단에 기부하기로 약속했다. 아무튼, 내가 일하게 된 재단은 그 유명하고 혁신적이라는 실리콘 밸리에서 부의 사각지대에 있는 가난한 청소년들에게 교육과 헬스케어 시스템을 제공하는 비영리 스타트업에 Seed 투자와 엑셀러레이팅을 하는 단체이다.
지금까지 총 16개의 비영리 스타트업이 펀딩을 받고 운용되고 있으며 그들은 청소년 교육과 헬스케어 섹터에 집중되어 있다. 이렇게 수년 동안 성공적으로 비영리 스타트업을 키워오다 보니, 재단에서는 보다 큰 규모의 투자를 통해 이러한 단체들이 더 큰 단계로 성장할 수 있게 도움을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 임팩트 투자 펀드를 만들려고 한다. 교수님이 내게 제안한 일은, 재단이 임팩트 투자펀드를 성공적으로 만들 수 있게 다각도의 조사를 통한 비즈니스 플랜을 설계하고 실리콘 밸리 소셜 벤처 투자펀드로 론칭하는 것이다. 그동안 투자은행, 벤처 케피털, 사모펀드와 같은 영리 영역에서의 임팩트 투자 펀드 조성은 꽤 많이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비영리 영역에서는 인적 인프라 부족 등의 이유로 생각보다 이러한 펀드가 많이 만들어져 오지 않았다. 재단에서 직접적으로 미션 연계 투자 (Mission-related investment)를 하거나 프로그램 연계 투자 (Program-related Investment)를 해오긴 했지만 이 두 영역은 어디까지나 임팩트 투자와는 다른 영역이었다. 그렇기에 재단 측면에서 새로운 펀드를 조성하는 방법을 알고 이를 적용하는 일은 앞으로 뒤따라올 수많은 비영리 재단에게도 의미 있는 일이었다. 좀 더 많은 재단과 비영리 단체들이 보다 쉽게 임팩트 투자펀드를 만들어나 투자를 할 수 있게 하는 일종의 매뉴얼도 함께 만들 예정이다.
긍정적인 부분은, 아직까지 비영리 섹터에서 임팩트 투자는 경쟁심리가 없다는 것이다. 생각보다 doing good을 하려는 비즈니스 섹터의 사회적 자본은 넘쳐나는 반면, 막상 투자할 만한 비영리 단체나 사회적 기업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특히나 이렇게 youth development라는 특정 섹터로 들어가게 되면 더욱 어려워진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일하는 재단에서 만들려고 하는 시스템이 더 유의미하다. 재단은 Seed Funding을 할 때 그 돈을 돌려받지 않는 미지정 기부금 형태로 단체에 기부한다. 그리고 엑셀러레이팅 작업을 통해 비영리 단체의 경영 관리 능력을 3년 동안 키워 준 뒤에, 적정한 시점에 그들이 더 크게 성장할 수 있게 더 큰 자본을 투입함으로써 그들을 돕는다. Seed 단계에서 Growth 단계까지 고민하고 함께하는 게 바로 이 재단이 만들려고 하는 투자모델이다.
아직 나는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고, 배워야 할 것들이 한참이나 남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멋진 기회에 동참할 수 있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 나에게 배우면서 일하는 건 일상이었기에 오히려 어려운 과제가 주어진 게 무척 신나게 느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드디어 나도 이제 그 어렵다던 실리콘 밸리에서 원하던 직장을 다닐 수 있게 된 것에 무한한 감동을 느끼며 1년 동안 쉬면서 근질거렸던 일 근육을 다시 단련하게 되어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