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와 명상 그리고
하루를 시작하는 방법은 여러가지다. 일어나자마자 샤워를 할 수도 있고, 핸드폰을 보며 지난밤 일어난 일에 관심 가질 수도 있다. 물 한잔을 마실 수도 있고, 요즘처럼 재택이 의무화된 시점에는 바로 컴퓨터 앞에 앉아 하루의 업무를 시작할 수도 있다. 하루를 시작하는 여러 방법 중 명상과 간단한 요가 그리고 일기를 쓰는 일은 나만의 리츄얼이자 아침을 시작하는 방식이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한 뒤 머리를 묶고 잠옷 대신 평상복으로 갈아입는다. 집에만 있는 날에는 잠옷을 입고 있을 수도 있지만 평상복으로 갈아입으면 마치 책을 읽다 한 챕터가 끝나고 새로운 챕터로 넘어가는 느낌이다. 잠이라는 챕터에서 하루를 시작하는 일상이라는 챕터로. 그렇게 옷을 갈아입은 뒤에는 물을 한잔 마시고 요가 매트를 바닥에 펼친다. 방향은 해가 뜨고 있는 곳이 좋다. 햇살을 받으며 운동을 하다 보면 태양의 뜨거운 에너지가 내 몸안으로 들어오는 느낌이 든다.
요가매트 가장 앞자락에 두 손을 양다리 옆에 붙이고 서서 깊게 심호흡을 두 번 정도 하면 마음이 집중되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러고 나면 아쉬탕가 요가의 하프 시리즈를 시작한다. 예전에는 풀 시리즈를 하기 위해서 노력을 했었는데 하프 시리즈만 하기로 한 이유가 있다. 아쉬탕가 프라이머리 시리즈는 총 41개 아사나로 이루어진 요가이다. 첫 번째 아사나인 태양 경배부터 마지막 아사나인 사바사나까지가 하나의 온전한 시리즈이다. 모든 아사나는 각 동작별로 몸의 움직임, 시선, 호흡 등이 정해져 있다. 그런 복합적인 요가를 처음부터 끝까지 오전 하게 해내는 일은 사실 높은 집중력과 에너지 그리고 시간이 드는 일이다. 한 시리즈를 온전하게 끝나고 나면 약 1시간 반에서 길게는 두 시간 정도가 걸린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한번 하는데 매우 큰 에너지가 소모되기 때문에 선뜻 매일 아침 요가를 하기는 어렵다. 아 물론 요가를 하고 나면 다시 그것보다 더 큰 에너지로 채워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아쉬탕가를 하다 보면 항상 끝까지 해야 할 것 같은 강박에 시달리곤 한다. 이런 강박의 부작용이 있다면 아예 아침에 수련을 안 하는 것이다. 나는 아쉬탕가를 본격적으로 배웠을 때 인도 고아에서 샤밀라 선생님으로부터 지도받았다. 당시 새벽 5시 반쯤 일어나서 수련하러 가면 오전 6시 정도부터 수련을 시작했다. 항상 태양이 뜨는 순간을 기준으로 요가를 했었기 때문에 나에게 요가는 오전에 해야 하는 일로 자리잡았다. 그렇게 스스로가 만들어낸 강박을 이기지 못해 요가의 타이밍인 오전 시간을 놓치고 나면 어느 정도 그 강박에서도 벗어난다. 아침이 지났으니까. 그렇게 하루하루 안 하다 보면 이제는 압박이 찾아온다. 여태껏 열심히 쌓아 올린 요가의 탑을 나 스스로 무너뜨릴 것인가? 하는 마음의 압박이다. 그러한 기나긴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는 생각, 모든 아사나를 정확하게 지키면서 끝까지 완료해야 한다는 생각,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바로 해야 한다는 생각 등으로부터 나 자신을 최대한 멀리 하다 그 압박과 강박 사이에서 대안을 찾은 것이 하프 시리즈이다. 하프 시리즈는 전체 시리즈의 3분의 1 정도를 차지한다. 그중에서는 태양 경배 시리즈 A와 B가 수련의 또 절반을 차지할 정도이다. 사실 태양 경배를 시리즈 별로 5번씩만 수련하고 나면 이미 온몸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한다. 그렇게 태양 경배를 마치고 나머지 아사나를 천천히 하고 나면 정확히 30분이 지난다. 30분 동안 온몸의 근육을 한 번씩 늘려주고 조여주고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몇 시간 동안 잠자고 있었던 근육 세포 하나하나가 깨어나는 느낌이 든다.
아쉬탕가에서도 finishing sequences라고 불리는 수련의 마지막 단계에 명상이 포함되어 있다. 명상 전에 여러 아사나를 거쳐야 하지만 나는 하프만 했으니까 바로 명상으로 들어간다. 명상 역시 아쉬탕가 요가에서는 연꽃 자세로 앉은 뒤 손은 요가 무드라를 취한다. 즉 가부좌를 튼다는 점에서 비슷하지만 왼쪽 발과 오른쪽 발이 둘 다 다리 아래로 향하는 것이 아닌 다리 위로 향하게 앉은 뒤 등을 곱게 편다. 손은 두 무릎 위에 엄지와 검지를 붙이고 중지와 검지 그리고 새끼손가락은 길게 편 뒤 무릎 위에 가볍게 올려놓는다. 이런 손동작을 요가 무드라라고 부르는데 아쉬탕가에서는 친 무드라 (Chin Mudra)를 취한다. 이 무드라는 불과 공기의 조화, 우주와 자기 자신 간의 의식적 조화를 위한 자세이다. 시선은 코 끝을 향하게 두고 약 스무 번에서 서른 번 정도의 깊은 호흡을 한다. 아쉬탕가 요가에서는 이렇게 명상을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르게 한다.
아쉬탕가 요가가 파타비 조이스에 의해서 구성되었을 때는 없었던 하지만 2020년을 살고 있는 나에게는 없어선 안될 필수 어플 하나가 있는데 그건 바로 캄(Calm)이라는 명상 어플이다. 무언가에 의존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귀가 닳게 들었고 눈이 시리게 읽었지만 가끔 좋은 집착과 의존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어플은 명상을 다시 시작하거나 새로 시작하는 사람에게 훌륭한 가이드와 동기부여를 해준다. 요가 하프 시리즈를 완료하고 난 뒤 매트에 앞자락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어플을 켠다. 어플에서는 나지막한 새소리와 물소리가 흘러나온다. 나는 주변에서 나는 사소한 소음도 차단하고 싶어서 노이즈 캔슬링 되는 헤드셋을 낀 뒤 인공적으로 녹음되었지만 한때는 생생했었을 새소리와 물소리에 귀를 기울인 뒤 명상시간을 10분으로 맞추어 놓는다. 처음 10분은 따로 가이드가 없는 온전히 나의 호흡으로만 이루어진 명상이다. 나는 10분 동안 최대한 호흡에 집중하려고 노력한다. 다른 생각이 드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 어젯밤 나눈 대화, 평소에 하고 있는 생각, 신박한 아이디어, 고양이 밥 줘야 하는데.. 등등 별별 생각이 다 떠오르지만 다시 의식적으로 생각을 흘려보내고 호흡으로 수도 없이 다시 돌아온다. 물론 가끔 너무 신박한 아이디어가 생각나면 눈을 뜨고 옆에 마련해 놓은 노트에 그 아이디어를 적는다. 떠오른 아이디어를 잊어버리지 않기 위한 노력은 명상을 방해한다. 그래서 믿을 수 없는 나의 기억력에 의존하는 대신 노트의 힘을 빌리고 다시 호흡에 집중한다.
명상을 할 때는 나는 아쉬탕가의 방식보다는 달라이 라마의 방식을 취한다. 물론 달라이 라마는 자신의 방식이라고 하지 않았고 그가 배우고 수련한 티베트 불교의 방식을 따르겠지만 나에게는 그가 스승이니까 달라이 라마의 방식이라고 하겠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등은 부드럽게 편다. 허리가 너무 안쪽으로 가지도 바깥쪽으로 가지도 않게 자연스러운 등의 모양을 유지해야 편안하다. 작은 방석을 깔고 앉는 것도 좋은데 나는 그냥 요가매트만 깔고 한다. 배에서 네 손가락 정도 떨어진 곳에 손을 놓는다. 왼 손이 오른손바닥 위에 올라오게 하고 양 엄지 손가락은 맞대어 삼각형을 만든다. 이런 형태의 손 역시 또 다른 요가 무드라인데 이 무드라는 디야나 무드라(Dhyana Mudra)라고 불린다. 보다 차분한 에너지를 느끼며 깊은 사색과 성찰을 할 때 취하는 무드라다. 시선은 코 끝을 향하게 한 뒤 감지도 뜨지도 않듯이 지그시 바라보며 눈에 힘을 푼다. 물론 한번에 집중할 수 없는 산만하고 나약한 정신력을 가진 나는 보다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서 바로 그런 시선처리를 하지 않고 눈에 힘을 모조리 빼고 그냥 눈을 감는다. 명상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눈 커플의 힘이 살짝 풀린 뒤 자연스럽게 명상의 눈이 된다. 실제로 절에 가서 부처님상을 바라보다 보면 그 어느 부처님도 눈을 감고 있지 않다. 지긋이 눈을 뜨고 명상을 하고 있는 형태다. 물론 그 시선이 코 끝을 향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렇게 호흡을 시작하는데 보다 빠르게 집중에 들어가기 위해서 아홉 번의 호흡을 시작으로 명상을 시작한다. 아홉 번의 호흡이란, 우선 엄지로 왼쪽 콧구멍을 막고 오른쪽 코로 숨을 들이신 뒤에 막았던 왼쪽 콧구멍을 열고 검지로 오른쪽 콧구멍을 막고 왼쪽 콧구멍을 통해 숨을 내 쉰다. 이렇게 세 번을 반 복한 뒤 순서를 바꾸어 왼쪽 콧구멍을 막고 숨을 들이마시고 오른쪽 콧구멍을 열고 숨을 내쉬는 동작을 세 번 반복한다. 그렇게 총 여섯 번의 호흡을 마치고 나면 손을 다시 배 앞에 모으고 두 콧구멍 모두로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것을 세 번 반복한다. 이렇게 총 아홉 번의 호흡을 마치고 나면 빠르게 호흡에 집중할 수 있다. 나는 호흡이 자연스러워질 때까지 복식호흡을 하는데 이 호흡법은 요가를 하면서 배웠다. 숨이 목구멍을 스쳐 지나가면서 배와 가슴이 크게 부풀어 오름을 느낀다. 그리고 숨이 다시 기도를 스치듯 올라오면서 천천히 내쉬어진다. 약간의 기도를 긁어내는 소리가 난다. 이런 방식의 호흡을 여러 번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자연스러운 호흡으로 넘어가게 된다.
얼굴에 긴장은 풀어줘야 한다. 사실 명상을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미간이 찌그러져 있고 입은 힘을 주어 꼭 다물고 있게 된다. 이 때는 미간의 힘을 풀고 입은 다물지 않은 상태로 혀는 입천장 끝 앞니 바로 앞에 살짝 가져다 덴다. 오랜 시간 명상을 할 때 입이 마르지 않게 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달라이 라마는 설명했었다. 물론 나는 수시간에 걸쳐서 명상을 하지 않지만 기본적인 것은 지키려고 노력한다. 디테일한 설명 때문에 글을 길어졌지만 이 모든 동작을 하는데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는다. 1분 정도. 그렇게 호흡에 집중해서. 들어가는 숨을 관찰하고 잠시 숨이 멈추는 그 구간을 인식했다가 다시 숨을 내쉬는 과정을 반복하고 그 과정을 집중을 하다 보면 어느새 티벳의 싱잉볼의 소리가 나지막이 울린다. 띵- 10분이 모두 채워졌다는 이야기. 의외로 시간은 정말 빠르게 간다. 10분이 지나고 나면 나는 다시 캄으로 돌아가 가이드명상 하나를 튼다. 그날그날 내가 듣고 싶은 주제를 선택한다. 어떤 때는 집중과 관련된 주제를, 어떤 때는 관계 또 어떤 때는 위로를 선택하기도 한다. 보다 편안하고 안정적인 느낌을 받고 싶으면 한국어로 이명진이라는 분이 안내하는 명상을 듣는다. 그녀의 목소리를 매우 안정적이고 떨림이 없어서 듣다 보면 모든 게 다 괜찮아지는 것 같다. 약간의 텐션을 느끼며 크리스피 한 집중을 원할 때는 영어로 어플 설정을 바꾸고 Tamara Levitt의 가이드 명상을 듣는다. 그녀는 특히 자신이 경험한 것을 직접 이야기하며 명상을 가이드하는데 목소리에 나지막이 감정이 들어가 있어 세세한 감정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 가르침을 받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좋다. 그렇게 가이드 명상까지 끝나고 나면 요가 매트를 정리한다.
귀에는 여전히 헤드셋을 끼고 캄에서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튼다. 대부분은 악기와 연주만으로 이루어진 음악들이다. 캄을 몰랐을 때 나는 보통 Putumayo 앨범 중 그날 오전에 듣고 싶은 것들을 선택해서 들었다. 음악을 들으면서 그날그날 마시고 싶은 것을 준비한다. 배가 고프고 무언가 풍성하게 마시고 싶을 때는 우유를 잔뜩 넣은 커피를 준비하고, 명료한 정신을 유지하면서 몸의 가벼움을 느끼고 싶을 때는 차를 마신다. 크리스피 한 정신을 원할 때는 녹차를 가벼운 몸을 원할 때는 보이차를 그리고 약간의 감기 기운이 있는 것 같으면 철제 주전자에 바이 차를 넣고 팔팔 끓인 뒤에 한 시간 정도 동안 계속 마신다. 가끔 홍차를 마실 때도 있고 홍삼을 타서 마실 때도 있다. 커피 향기를 진하게 맡고 싶을 때는 원두를 갈아서 핸드드립 커피를 만들기도 한다.
이렇게 만든 나만의 아침음료를 가지고 서재에서 나에게 없어는 안 되는 또 다른 어플 에버노트를 켠다. 예전에 모든 기록은 몰스킨 노트에다가 했었는데, 나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나의 생각을 궁금해하는 몇몇 사람에 의해서 그 노트의 내용이 나의 동의 없이 공개되었을 때 무척 혼란스럽고 격동하는 감정을 느끼게 되었고 비교적 안전하다고 믿어지는 에버노트를 시작했다. 물론 처음에는 몰스킨 노트에 생각을 읽히지 않게 하기 위해 불어로도 썼다가 중국어로도 썼다가 영어로도 쓰고 해 봤지만 누군가는 그중 한 언어를 할 테니, 아니 무엇보다도 내가 가장 사랑하는 언어인 한국어로 나의 마음을 그대로 표현하지 못한다는 점이 너무 싫어 선택한 게 바로 에버노트이다. 아 물론 지금까지도 노트를 쓴다. 하지만 글을 쓰기 보다는 생각의 그림을 그리거나 브레인스토밍하는 용도 정도로만.
앱을 켜고 우선 일기를 쓴다. 내가 그 전날 무엇을 했는지를 적기보다는 명상을 하면서 떠올랐던 생각이나 감사한 것들을 소소하게 적어 내려 간다. 가끔은 정말 길게 무언가를 써내려 갈 때도 있다. 또 주말 오전처럼 시간이 비교적 여유로울 때는 그간 읽었던 책에서 마킹해놓았던 문구를 옮겨 적고 그 문구에 대한 나의 생각을 밑에 써놓기도 한다. 일기나 일기 코너에 글을 쓰는 일은 요가, 명상, 마시는 것에 이은 나의 제4의 아침 리츄얼이다. 글을 쓰다 보면 어렴풋했던 생각이 정리되고 명료해진다. 명료하게 표현하거나 쓰지 못하면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 번째 내가 그 주제에 대해서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하고 있거나 두 번째 글 쓰는 것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거나. 글을 쓸 때는 최대한 정확한 단어를 선택하기 위해 노력한다. 가끔 나도 모르게 여러 단어를 혼동해서 쓰곤 하는데 그러지 않으려고 한다. 의식과 인식, 틀림과 다름, 효율과 효과 등이 대표적이다. 정확한 단어를 선택한다는 것은 보다 의식적으로 그 상황을 인지하고 있고 깨어있다는 말과 같다. 물론 매 순간 깨어있을 수 없고 매 순간 의식적으로 행동하지는 않는다. 사실 그건 너무 피곤한 일이다. 가끔은 그냥 바보 같을 때도 있어야 하고 욕망에 철저히 맞추어진 삶을 사는 것도 나는 내 삶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술한잔을 마시면서 의식적일 수 있단 말인가. "음.. 이 술이 내 목구멍을 넘어가기까지 씨앗이 열매가 되고 따뜻한 햇볕과 바람의 도움을 통해 발효라는 과정이 일어나고..." 그냥 마신다.
그럼에도 오전 시간만큼은 조금 의식적인 시간을 갖기 위해 노력한다. 사실 노력이라는 것은 이러한 습관을 만들어 가는 때에 했던 것이고 요가, 명상, 차 마시기 그리고 글쓰기가 습관이 된 지금은 그러한 ‘노력’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노력은 하고 싶지 않거나 익숙하지 않은 일을 즐겁고 잘할 수 있고 또 익숙해지게 만들기 위한 하나의 에너지 소모니까.
이런 리츄얼 끝에는 하루를 어떻게 보낼 것인지에 대한 계획을 세우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보통 월요일에는 한 주의 계획, 하루의 계획을 세운다. 그런 한 주가 세 번에서 네 번 정도 지나가고 나면 한 달의 목표를 점검하고 일 년의 목표를 세운다. 예전에는 3년 5년 10 년의 목표도 세워 봤지만 이젠 그런 목표를 디테일하게 잡지 않는다. 세상은 너무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하면서 살아가다 보면 5년 전 10년 전 내가 새운 목표는 세상과 거리가 먼 일이 되기 쉽다. 좀더 유연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장기 계획은 물렁물렁한 상태가 좋다. 그래서 너무 장기적인 것은 별로 고민하지 않고 단기 적인 것에 보다 집중한다. 욕심과 호기심이 많은 나는 하고 싶은 것도 많아서 해야 할 일 목록을 길게 적곤 했었는데 이젠 그러지도 않는다. 어차피 다 못하니까. 못하면 못하는 데로 인정하면 되는데 못하면 괜히 못해서 기분이 찜찜하다. 굳이 내가 그러한 기분을 만들어 내는 게 싫어서 작은 목표를 잡고 그 목표를 다 완성하는 것을 즐기게 됐다. 그리고 나에게는 조금을 즐기면서 깊게 하는 게 많은 것을 스트레스받으며 빠르게 하는 것보다 맞다. 아니 좋다.
이를테면 책 한권을 읽어도 그 책을 다 빨리 다 읽고 다른 책을 읽는 것을 선택 하기보다는, 시간을 내어 작가에 대해서도 찾아보고 이력도 보고 감사의 글도 읽으며 그 사람이 누구와 관계가 있는지도 상상하는 것까지 독서에 포함시키면 그 책을 읽는 즐거움은 두배가 된다. 거기다 그 책이 맘에 들면 저자가 읽고 인사이트를 받았다고 이야기하는 다른 책도 덤으로 읽어보며 한 책을 중심으로 책 주변의 관계망을 넓혀 가다 보면 나의 인식까지도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할 수 있다. 이런 경험과 즐거움을 획득하려면 무엇보다 여유로운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To do list를 지워나가는 것 행위 자체는 이런 여유로운 시간을 갖는 것을 방해한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To do list를 적고 바로 캘린더를 열어 그 하나의 목표를 달성할 시간을 바로 입력하는 것이다. 최소 한가지의 일에 적게는 한 시간에서 많게는 네 시간까지 확보해 놓는다. 아홉 시부터 열두 시까지는 이 일 점심 먹고 오후 시간은 이것. 이렇게 말이다. 사실 그렇게 시간 설정을 하다보면 많은 일을 할 수도 없다. 하루에 생산성이 높다면 세 가지 정도의 일을 달성하고, 생산성이 비교적 낮거나 집중이 잘 안된다면 한 가지 정도의 일을 완수한다. 예전에 픽쓰리라는 책을 쓴 랜디 저커버그도 하루에 세가지 일만을 했다지. 이렇게 캘린더에 하루의 일과를 계획하는 것이 리츄얼의 마지막이다. 그러고 나면 하루가 캘린더에 맞게 시작된다.
리츄얼은 하루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자 내가 가장 사랑하는 시간이다. 온전하게 갖는 나만의 시간이자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다. 보통은 1시간 에서 한 시간 반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물론 지금처럼 글을 길게 쓸 때나 리츄얼에 책을 더하면 그 시간은 두 시간에서 세 시간까지도 소요될 수 있다. 나만의 리츄얼을 갖는 동안 나는 비워지고 다시 채워진다. 어떤 특정한 이유 등으로 이 시간을 갖지 않으면 유리멘탈을 가진 나에게는 어김없이 이상반응이 온다. 마음에 심각한 결함이 생기기 시작하고 우울, 불안, 슬픔과 같은 감정의 군대가 쓰나미처럼 밀려 들어온다. 나의 긍정적 정신줄을 잘 유지하기 위해서, 또 언제든지 들이닥칠 수 있는 부정적 감정에 잘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매일매일 나만의 리츄얼을 갖는 것은 중요하고 매우 소중하다.
이제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 계획하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