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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리 Dec 16. 2020

그저 평화로운 아침

목표가 없어도 환경이 주어지지 않아도  

스무 살 초, 문 선생님을 따라 마운트 아부에 명상을 하러 간 것은 진리를 찾기 위해서도 큰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혼자 조용히 있을 시간이 필요했고, 복잡한 마음이 정리되어 은은한 호수처럼 고요해질 수 있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때 나에게 명상이란 인도에 가야만 마운트 아부에 가서 명상실에 들어가 앉아야만 할 수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또한 마음이 복잡하고 여러 가지 감정에 지배되어 나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용도로서 가장 잘 기능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명상실에 앉아있어도, 수백 명이 함께 앉아 집중의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는 곳의 한가운데 있어도 요동치는 마음과 혼란한 머리를 진정시키기 어려웠다. 그 곳에 머무는 동안 매일 명상실에 들어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지혜의 눈에 집중하기도 하고, 마음을 비워 보려고도 하고, 호흡에만 집중하려 하기도 했다. 그렇게 애쓰는 나날이 반복되고 모든 일정이 마무리되었을 때 나는 다시 길을 떠났고 복잡한 삶 속으로 들어갔었다. 그렇게 명상은 내 삶에서 '환경을 찾아야만' '의지를 가져야만' '목적이 있어야만' 하는 그런 의식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수년이 지나고 야생마 같았던 에너지가 조금 안정이 되고 나니 문득 다시 명상을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괴롭지도 않았고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편안하고 집중된 마음을 갖고 하루를 시작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렇게 매일 아침 일어나서 10분에서 15분 정도 명상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두 달 정도가 흘렀는데 문득 명상을 하기 위해 마운트 아부에 찾아갔던 기억이 났고, 나의 길을 안내해 주셨던 문 선생님이 떠올랐다. 모든 일이 마음먹은 것처럼 되지 않았기에 성난 마음은 몸에까지 전달되어 몇 날 며칠을 아팠던 기억도 고스란히 떠올랐다. 그때 늘 미소를 지으며 따뜻하게 손을 잡아주고 길을 안내해 주던 문 선생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하루도 안돼 등을 돌려 마운트 아부를 떠났으리라. 매일매일 복통에 시달려 명상에 집중하기 어려웠을 때, 선생님은 나의 등과 손을 집중된 에너지로 마사지해주셨고 그 이튿날 인도에 간 첫날부터 나를 괴롭혔던 복통이 씻은듯 나았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마치 내 아픔을 가져가기라도 하신 듯 그다음 날부터 선생님이 나의 통증을 그대로 느끼셨다. 아마도 본인이 아프시리라는 것을 알고 계셨으리라. 그런데도, 그런 선택을 하셨으리라. 


그때 선생님이 수 십 년째 동이 트기 전 새벽에 일어나 명상의 시간을 갖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일 년에 한 번 정도 더 큰 에너지를 얻기 위해 마운트 아부에 가신다는 것도. 나에겐 일생의 어쩌다 한번 떠난 길이었지만, 선생님에게는 마음을 집중된 에너지로 채우기 위한 중요한 의식에 나를 기꺼이 동참시켜 주신 것이었다. 본인에게 중요한 의식의 흐름이 아픔으로 인해 끊길 수도 있다는 것을 아셨을 텐데 그럼에도 나를 치료해주신 선생님에게는 아직도 갚지 못한 빚이 있는 것처럼 마음 한편에 감사함과 죄송함이 자리 잡고 있다.


그때 선생님은 내가 매일 명상을 하길 바라셨다. 하지만 욕심만 많고 환경 탓만 하던 나에게 명상은 명상실에 들어가야 할 수 있는 의식과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십 년의 시간이 지난 오늘 아침. 너무나도 평범한 그런 아침에 나는 문득 깨달았다. 배낭을 메고 길을 떠나지 않아도, 복잡하고 뒤엉킨 감정 때문에 괴로워하지 않아도, 목적이 없어도 우리는 충분히 고요하고 집중된 순간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을. 해가 떠오르기 전 붉게 물든 하늘을 바라보며, 잔잔하게 일렁이는 바다를 생각하며, 혹은 달을 생각하며 썼다는 곡을 들으면서도 충분히 내면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을. 요가를 하며 몸의 근육을 단련하고 더 튼튼하게 만들듯, 마음의 근육을 단련하여 보다 건강하게 만드는 그런 작업.


평소보다 일찍 눈이 떠진 오늘 아침 지난해 이맘쯤 구매했던 따뜻하고 커다란 목도리를 몸에 감고 자리에 앉았다. 내면의 집중하기 명상 세션을 프랑스어로 들었다. 오랜만에 프랑스어가 듣고 싶었다. 한국어보다 아직은 조금 불편한 프랑스어로 명상 세션을 듣고 있자니 아무래도 조금 더 귀 기울이게 되고 조금 더 집중하게 되는 듯했다. 익숙한 것으로부터 조금 덜 익숙한 것으로 들어갈 때 나는 보다 더 집중한다. 처음에 익숙하지 않았던 명상 앱 자체가 그랬고 앱을 이용하는 것이 편안해지니 언어가 그랬다. 명상을 마치고 바깥을 보니 그 어느 때보다 고요했다. 잔잔하게 일렁이는 바다 수면 위를 훑고 지나 가는 배가 남기는 흔적의 꼬리를 따라 의식을 집중시키는 것은 편안함이 황홀함으로 바뀌게 해 주었다. Lindsey Stirling의 Lunar Lullaby의 부드러운 바이올린 선율을 들으며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바깥을 바라보았다. 창문을 살짝 열고 바깥공기를 마셨다. 나무 타는 냄새가 조금 섞인 공기였다. 겨울이 되고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바라보는 것 냄새 맡는 것 부드러운 음악에 귀를 맡기는 것 그리고 아무것도 안 하고 그저 이 모든 것 안에 있는 것이 예전의 잘 기억나지 않는 어느 날의 비슷한 에너지 속에 있던 때를 기억하게 했다. 마음이 차오르고 정신이 맑아지며 차분하고 평화로움이 몸을 감싸는 것이 느껴진다. 


문 선생님께 편지를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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