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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리 Jan 03. 2021

나는 나의 이십 대를 이렇게 보냈다.

천 여권의 책을 통해 돌아본 십 년의 시간

지난 10년간의 독서를 되돌아봤다. 책을 되돌아봤다기보다는 스무 살 때부터 지금까지 읽어온 책을 통해 형성된 나 자신을 되돌아봤다는 말이 더 어울릴 것이다. 그동안 나는 의식이 이끄는 데로,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던 주변의 환경에 맞추어, 만나온 사람들의 영향을 받아 그리고 내가 경험해온 것들을 통해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어왔다. 전략이나 계획은 없었다. 그저 흥미에 이끌려 마구잡이로 읽었다는 말이 더 맞을 것이다. 


그렇게 읽은 시간이 10년이 되었고 천여권의 책을 거치고나니 한번 즈음 그 시간을 정리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책을 읽었는지도 중요하지만 책을 통해 나의 생각은 어떻게 변화되어 왔고 또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무엇이었는지를 말이다. 나를 정의하는 많은 것들 중에 가장 중요한 것들은 내가 읽은 것경험한 것 그리고 만나온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나에게 특히나 영향을 주었던 책을 정리하는 것은 나를 구성하는 것을 되돌아보고 나를 정리한다는 의미와도 같다. 언젠가는 경험한 것과 만나온 사람들에 대한 데이터도 긁어모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 


정리는 데이터를 모으는 것부터 시작되었다. 책을 구매한 적이 있던 서점의 구매 기록을 훑어보고, 10년 치 노트에서 문장을 모아보고, 기억을 더듬기도 하고 책장을 훑어보기도 했다. 책과 작가의 이름, 구매한 날짜, 책이 속해있는 카테고리를 나누었고 가격과 읽은 장소 구매한 곳도 모두 기록했다. 데이터를 정리하는데 한 달여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렇게 정리한 데이터를 시각화 툴을 활용해 돌려보니 일정한 패턴이 보였다. (시각화 데이터는 이 곳에서) 완독을 한 책은 매년 60권에서 70권 사이었고, 좋은 책을 골라내기 위해 거쳐갔던 책의 수도 해가 다르게 늘어났다. 완독을 했고, 한번 이상 책을 들여다보았고, 한번 이상 책을 선물한 경험이 있고, 혹은 다른 사람에게 추천할 수 있는, 강렬한 인상을 주었던, 또 그 분야의 책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책을 모았더니 60개 정도의 테마가 만들어졌다. 모든 책을 테마로 엮지는 않았고 나의 생각이나 가치관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던 것들 위주로 테마를 설정했다. 한 개의 테마는 최소 다섯 권에서 열다섯 권의 주옥같은 책으로 구성됐다.


한 테마의 책을 단기간에 몰아서 집중적으로 보던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 시간의 텀을 갖고 최소 몇 달에서 길게는 2, 3년에 걸쳐 관심을 갖고 꾸준히 보았다. 한 권 한 권을 끝낼 때마다 다음 책을 이해하는 이해력도 늘어갔고 속도도 더 빨라졌다. 양질의 책을 찾기 위해서 많은 양의 책을 접하는 것도 중요하기에 관심 있는 분야의 책은 웬만해서는 보이는 데로 (최소한 목차, 서문, 첫 챕터 정도라도) 훑어보았다. 도서관에 가서 그 당시에 관심 갖고 있는 테마의 책을 한 권 찾은 뒤, 책을 중심으로 오른쪽 왼쪽 위아래 꽂혀있는 모든 책을 훑어보았다. 서점에 가서도 마찬가지 었고 전자책을 살 때도 그랬다. 좋은 책은 내게 늘 끌어 오르는 호기심을 달래줄 수 있는 창구로서, 지적 욕구를 채워주는 정신의 양식으로서 존재했다. 그렇게 십 년 치를 정리하고 나니 내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보다 선명하게 보였다. 


스무 살의 나는 뭘 좋아하는지 모르는 백지상태였다. 그저 고등학교 때 읽었던 여러 권의 여행 관련 책들로 인해 세상을 구경하러 나가보고 싶다는 열망만 품은 채 말이다. 당시 나는 학교에서 금융과 정치를 공부했기에 관련 서적을 자연스럽게 찾아 읽었다. 나의 책장에는 월스트리트, 금융 분석과 같은 책이 꽂혀 있었고 중국 역사와 국제 정치사에 대한 책이 가장 많았다. 월스트리트와 관련된 (금융, 투자, 주식, 일하는 사람들의 수기 등)을 읽고 스무 살 여름 그곳에 가긴 했지만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해봐도 책을 읽어봐도 딱히 무언가 벅차오르는 감흥을 느끼지는 못했다. 그 당시 깊은 감흥이 있었더라면 아마 프랑스가 아닌 미국을 먼저 갔을지도 모른다. 이후 오랫동안 금융과 관련된 책을 읽지 않았다. 반면, 스무 살에 장 지글러의 주옥같은 몇 권의 도서를 접했고 이는 사막화로 인한 환경난민, 삼림 파괴, 전쟁 난민, 국제원조 등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그가 사랑한 언어인 프랑스어에 대한 지대한 관심도 함께. 


스물한 살이 되던 해에 프랑스로 향했고 그곳에서 날개를 달고 여행을 시작했다. 처음으로 완전히 홀로하는 여행의 시작이었다. 산, 바다, 들, 숲길을 훑고 다녔고 이나라 저나라 이 집 저 집 이차 저차를 타며 여행했다. 이 당시 나의 주제는 당연히 여행이었다. 파리는 어떻게 여행하면 좋을까? 와 같은 바깥세상에 대한 호기심은 점점 그 방향을 나의 내면으로 돌렸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잘 몰랐었고 그런 것들을 잘 알려줄 어른이 주변에 있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나만의 답을 찾고 싶었기에 어른들의 이야기가 들리지 않던 시절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때 나의 주된 주제는 이 끌어 오르는 청춘을 어떻게 보내는가에 관한 것이었다. 나는 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파울로 코엘로의 연금술사, 브리다, 순례자, 생텍쥐베리의 어린 왕자, 인간의 대지, 칼릴 지브란의 아홉 가지 슬픔에 관한 명상 사티쉬 쿠마르의 그대가 있어 내가 있다, 끝없는 여정과 같은 책을 통해 나보다 미리 젊음을 접했던 사람들을 통해 청춘의 다양성을 보았고, 성난 황소처럼 날뛰는 정제되지 않은 내면의 감정을 조절하는 법을 배워갔다. 그리고 내면이 느끼는 것과 머리로 판단하는 것의 감각적 차이를 익혀갔다. 매일매일 독서에 빠져서 지낼 수 있는 최고의 환경도 주어졌다. 아니 만들어갔다. 민박집에서 일해 번 돈과 아르바이트하면서 모았던 돈 그리고 부모님이 주신 용돈을 모아 모아 여행경비로 썼다. 장거리 기차 안에서 비행기 안에서 성당 안에서 그렇게 책을 읽었고 또 읽었다. 정차 없이 떠돌며 여행했다. 지도를 펴고 프랑스의 동쪽 끝을 가겠다며 끝에 다다르기 위해 거칠 수 있는 모든 도시와 마을에 들렀고 카우치서핑을 하며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 집에서 숙박을 해결하고 히치하이킹으로 도시와 도시를 오갔다. 


그렇게 프랑스 동쪽 끝에 다다랐을 때 나는 우연을 가장한 필연처럼 8년을 사랑할 남자를 만났고 정말 깊게 사랑에 빠져버렸다. 사랑의 깊이만큼 고통의 깊이도 더해진다는 것을 그때 아마 깨달았을 거다. 나는 사랑을 조절할 방법도 잘 몰랐고 사실 어떻게 사랑하는 건지 잘 알지 못했다. 그 남자는 나보다는 더 큰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고 나는 그를 통해 참 많은 것을 배웠다. 하지만 배움의 시작은 늘 아픔이었고 그 아픔을 위로하고 또 고통을 마주해서 극복하게 하는 것은 책이었다. 마음의 아픔을 위로해주는 책,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하는 책을 그 당시 참 많이 읽었던 기억이 있다. 처음에는 위로였지만 나중에는 마주함이었다. 고통스러워 죽겠는데 고통을 마주 하는 건 더욱 힘들었다. 하지만 그 과정이 있었기에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처럼 나는 내 안의 작은 알을 깨고 바깥으로 나올 수 있었다. 


내가 사랑했던 그 남자는 자연을 사랑했다. 지금까지도 그보다 더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 속에서 행복해하는 사람을 만나본적이 없다. 그를 통해 도시에서만 살아오던 나는 자연을 대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모든 동기는 그와 공통된 언어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컸으리라. 그렇게 스물셋이 되던 해에 나의 관심사는 생태, 자연, 나무가 되었다. 영성과 생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그쯔음이다. 내가 사랑하는 작가들은 이 관계를 너무도 잘 알고 그 안에서 문학을 하는 사람들이다. 거기에 하나 더 덧붙이면 불교나 힌두교 자이나교와 같은 살생을 하지 않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종교 역시 깊은 관계가 있다는 것도 이때쯤 알게 되었다. 


생태, 자연, 나무에 대한 책을 읽다 보니 그것들을 해치는 것들에 대한 관심도 생겨났다. 환경오염, 식량위기, 자원고갈, 사막화와 같은 것들이 그런 관심사였고 나는 자연스럽게 레이철 카슨의 침묵의 봄, 잃어버린 숲,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오래된 미래, E.F 슈마허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와 같은 책을 접하게 되었고 사회 그리고 환경 문제에 다가서기 시작했다. 이 당시 실제로 사하라 사막을 여행했고, 메마른 라자스탄의 농지를 방문했고, 개간되어 본래의 모습을 잃은 동남아시아 지역을 여행했다. 여행에서 돌아온 나는 내가 먹는 먹거리를 스스로 재배하고 싶은 마음과 자연을 이해하고 싶은 마음, 고기를 먹지 않고 채식주의자가 되어 탄소배출을 줄이겠다는 마음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스물네 살이 되던 해에는 그렇게 땅을 일구고 경작하는 것과 관련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씨앗부터 시작해 자연을 섬기는 유기농, 바이오다이내믹, 퍼머컬처 농법과 관련된 책을 읽었다. 농사를 지으며 훌륭한 깨달음을 얻은 멋진 인생 스승들의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농부 철학자 피에르 라비를 만나기 위해 그의 집에 찾아갔고 반다나 시바의 강의를 듣기 위해 이탈리아로 향했다. 장일순 나락 한알 속의 우주, 윤구병의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후쿠오카 마사노부의 짚 한 오라기의 혁명, 헬렌 니어링의 여기에 사는 즐거움을 만났고 그들의 눈으로 본 자연과 우주 그리고 그 안에 존재하는 나를 알아갔다. 


농사를 짓고 농법을 공부하고 나니 자연스럽게 나의 관심사는 그런 마을을 일구는 것으로 향했다. 생태마을 혹은 에코빌리지 또는 친환경도시로 불리는 곳들에 대해 관심가지기 시작했다. 생태도시 독일 프라이부르크를 여행했고 영상을 제작했고 책을 쓴 저자 홍윤순 교수님을 만나기도 했다. 핀드혼 공동체, 이타카 에코빌리지, 꾸리찌바, 가비오따스 변산공동체 등 전 세계에 존재하는 다양한 형태의 공동체와 도시를 알아갔고 방문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미리 이 분야에 관심 갔고 글을 쓰기 시작했던 황대권 선생님을 만나기도 했고 인도 오로빌에서 에코빌리지 디자인 수업을 들으며 생태 마을을 어떻게 구성하는지에 대해 공부하기도 했다. 


농사를 지으며 자연스레 먹거리에 관심이 생겼고 이러한 관심은 식량 문제로까지 나아갔다. 당시 나는 슬로푸드 문화원의 김원일 사무총장님을 알게 되었고 그는 나를 이탈리아 슬로푸드 축제 속으로 초대했다. 그곳에서 나는 우리나라 식문화 전문가들을 정말 많이 만났고 그들 중 일부는 지금까지도 좋은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건강한 먹거리에 대한 관심 속에서 나는 선재스님, 문성희 선생님, 르 바지크, 에릭 밀스턴, 반다나 시바, 피에르 라비, 마이클 폴란의 책을 읽었다. 특히 마이클 폴란의 잡식동물의 딜레마, 테라 마드레, 세컨 네이처, 푸드롤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었던 기억이 나고, 그가 교편을 잡고 있는 UC버클리 저널리즘 학과에서 대학원을 다닐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었다. 그들의 책을 읽으며 인도, 네팔,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모로코의 농지를 방문했고, 농부를 만났고, 사업가를 만나며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기도 하고 몇몇 곳에서는 우핑을 통해 직접 농부가 되어 그들의 삶을 이해하려고 하기도 했다. 


자연을 벗 삼아 살며 해가 되지 않는 삶의 방식은 곧 심플한 삶의 방식과도 이어진다. 법정스님이 이야기하셨듯, 잘 사는 것은 결고 편리하게 사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나와 내 후대에 지속 가능한 지구를 물려주기 위해서 우리의 삶의 방식은 심플함, 단순함으로 돌아가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물질적으로는 소박하게 마음은 풍요롭게 사는 방식을 따르고 사는 사람들을 만나러 떠난 건 스물다섯 살이 되던 해였다. 작은 캠핑카 한대를 타고 프랑스와 스위스의 작은 산속, 바닷 마을을  여행하며 소박한 삶의 방식을 고수하는 사람들을 만났고 인터뷰했다. 당시 나의 손에는 법정스님의 무소유,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윌든, 쓰지 신이치의 슬로라이프, 제러미 리프킨의 소유의 종말 , 헬렌 니어링의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와 같은 책이 쥐어져 있었다. 호숫가에 도착하면 주차를 하고 트렁크 문을 열고 차 침대에 누워 호숫가에서 불어오는 물 냄새를 맡으며 책을 보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있다. 그렇게 밤이 되고 쏟아지는 별을 카메라에 담고, 새벽 공기를 맡으며 아무도 없는 호숫가에서 실오라기 걸치지 않은 채 물속에 들어가 수영을 하던 기억, 시골마을 작은 카페에 들어가 더블 에스프레소와 크루아상으로 아침을 먹던 기억이 아직도 몸 세포세포에 저장되어 있다. 


그렇게 20대의 중반을 보내고 있었다. 늦깎이 대학생이 되어 졸업을 앞두고 있던 시점 나는 학교가 아닌 탄자니아를 여행하고 있었다. 사바나에서 정제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자연을 만끽했다. 자연 속에서, 인터넷도 안되고 모든 연결이 끊켰던 그때 나는 글을 썼다. 세렝게티 한가운데 설치해 놓은 텐트 안에서 기름등에 의지한 채 늦은 밤 나는 내가 본 것을 기록했고 느낀 것을 자세히 적어 내려갔다. 물소가 우는 소리, 하이에나 무리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면 섬뜩하긴 했지만 스릴 있었다. 그 당시 바바라 애버크롬비의 인생을 글로 치유하는 법과 수전 티베르기앵의 글 쓰는 삶을 위한 일 년의 책의 챕터 하나하나를 읽으며 여행했던 기억이 난다. 엄청나게 흔들리는 사륜구동을 타고 세렝게티 초원을 이동하면서, 거대한 바오밥 나무 밑 그늘에서 점심을 먹으면서도 책은 내 손에 늘 쥐어져 있었다. 


스물여섯 살이 되던 때였다. 나는 학교에서 경영을 공부하고 있었고 학기말 인턴쉽 대신 내 사업을 시작했다. 그동안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비즈니스라는 수단으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을 참 많이 봐온 터라, 나 역시 내 손으로 변화를 만들어 보고 싶은 열망이 있었다. 그때 나는 프랑스로 돌아와 유기농 와인을 만들던 친구들과 함께 중국에 유기농 와인을 수출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지금 와 생각해보면 그 당시 읽었던 책은 비즈니스의 기술적인 부분에 집중하기보다는 비즈니스를 통해 바꿀 수 있는 좀 더 거시적인 세상에 집중했었다. 뿐만 아니라 비즈니스적인 사고보다는 자연과 농업 그리고 농부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방식이 나에게는 훨씬 더 익숙했다. 착한 자본주의와 착한 기업에 대한 것들 말이다. 당시 나는 이본 쉬나드의 파타고니아, 로리 바시의 굿 컴퍼니, 마크 베니오프의 세상을 바꾸는 비즈니스 등을 읽으며 착한 자본주의를 실천하는 기업에 대해 생각했고 이것이 비즈니스의 미래라고 생각했다. 일 년 정도가 지난 뒤 여러 이유로 사업을 정리한 이후에도 나는 꾸준히 경영 서적을 읽었다. 여전히 테크닉 적인 부분보다는 리더십과 가치에 대한 부분에 좀 더 초점을 맞추면서 말이다. 모하메드 야누스의 Creating a wold without poverty, Building social business, A world of three zeros는 기업이 어떻게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를 아주 논리적으로 많은 예를 들면서 보여주었다. 이후에도 제시카 재클리의 진흙, 물, 벽돌, 마크 베니오프의 compassiante capitalism과 같은 주옥같은 책을 만나며 사회적 가치와 비즈니스의 융합에 대해 고민하고 또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업을 하는 동안 나는 중국에 있었고, 중국이라는 지리적 이점이 주는 혜택 중에 하나는 중국 자체에 관심을 갖게 만든 거였다. 나는 심천과 북경에 각각 4년씩을 살았지만 그곳은 삶의 터전이었기에 지역 자체의 관심은 그다지 없었다. 마치 서울에 살면서 서울에 관심 갖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상해에 사는 일 년 남짓 시간은 조금 달랐다. 나는 짧은 시간 동안 상해를 아주 빠르고 깊게 사랑하기 시작했다. 상해의 후미진 골목을 휘집고 다녔다. 걷고 또 걸었고 냄새 맡고 느꼈다. 이웃사람과 만두를 같이 빚어먹고, 5위안짜리 국수를 제공하는 단골집이 생겼다. 상해는 그렇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도시가 되어갔다. 그 당시 나를 상해에 빠져들게 한 책이 있다. 바로 왕안이의 상하이 여자의 향기. 새벽 공기를 가르며 요가를 다녀온 뒤 뜨거운 바이 차를 내려놓고 창가에 앉아 햇볕을 받으며 한 장 한 장 아주 소중하게 이 책을 읽던 기억이 난다. 


이후로 왕안이의 다른 책들도 읽어 내려갔고 자연스럽게 나의 관심사는 이 책을 출판한 출판사로 향했다. 출판사마다 각각 고유한 테마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그때 쯔음이다. 내가 좋아하는 서적은 모두 비슷한 몇 개의 출판사를 통해서 번역이 되고 출판이 되었다. 그중에 한 곳이 한길사고 한길사를 오랫동안 이끌어온 김언호 출판인에 대해서도 그 당시 처음 알게 되었다. 그가 쓴 책중에는 세계 서점 기행도 있었는데 나는 그 책을 읽으며 간접적으로 세계의 서점 여행을 했다. 재미나면서도 소중한 책으로 기억한다. 한길사 말고도 내가 좋아하는 출판사에는 랩 걸을 통해서 알게 된 알마가 있다. 알마 출판사를 가장 알마스럽게 해 주는 것은 단연 디자인과 글씨체 그리고 출판의 방향성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책 표지를 아름답게 만드는 출판사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책 디자인을 잘하고, 너무 사랑스러워서 읽지 않으면 안 될 글씨체를 사용해서 책을 출판한다. 무엇보다 여성, 나무, 과학, 심리, 또 내가 사랑하는 작가 올리버 색스 박사의 다수의 책을 출판했기에 더욱 사랑하는 출판사다. 한국에 있었다면 이 출판사에서 출판하는 책은 읽던 읽지 않던 모조리 구매해 소장했으리라. 


스물일곱 살 그렇게 나는 상하이를 느끼며 중국시장에 와인을 팔아댔다. 와인을 알기 위해서는 사실 그렇게 많은 책을 읽지 않았다. 시중에 나와 있는 책들은 대부분 와인을 취미로 즐길만한 것들을 담은 내용이었기에 흥미가 느껴지지 않았다. 나의 초점은 고급지고 유명한 와인을 알아가는 게 아니었다. 나는 와인을 알기 위해 유기농, 바이오다이내믹 농법을 통해 와인을 생산하는 생산자들을 만나기 위해 그들을 방문했고 그들을 통해 와인을 배웠다. 흙을 맛보았고 화강암 돌멩이를 혀에서 굴리며 와인이 주는 미네랄리티에 대해 생각했다. 농부들과 같이 포도를 땄고 땅을 갈았고 새벽에 포도밭을 거닐었다. 농부들의 와인 생산 과정을 기록했고 그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전달했다. 사실 나는 와인을 팔았다기보다 와인이 주는 메시지를 소개하고 그 값을 받았다. 사업을 통해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는 단가를 낮춰야 하고 판매 양을 늘려야 하는데 그렇게 하기에 비즈니스 자체의 윤리적 한계가 부딪쳤다. 포도나무를 대량 생산해서 원가를 낮추기 위해서는 생산성을 늘려야 했고 그러면 유기농의 방식을 고수하기 매우 어려웠고, 기계화는 정해진 수순이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와인의 가치는 내가 진정 전하고자 하는 가치가 아니었다. 나에게 있어 와인이란 포도라는 열매를 통해 자연의 깊은 맛을 느끼게 해주는 장인의 예술품이었다. 실험실에서 당도와 산도를 조절해내고 이산화황을 가득 넣어 상하지 않게 만드는 제품은 내가 원하던 생산방식을 통한 게 아니었다. 또한, 나의 이야기를 듣고 와인을 선택하는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더 많이 많은 와인을 마시라고 할 수도 없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나는 사업을 그만두었고 한국을 떠난 지 십여 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삶의 다른 챕터로 넘어가기 전에 몸과 마음을 정돈하고 싶었고 상해에 간 뒤로 쭉 해오던 요가를 더 집중해서 하기 위해 인도로 향했다. 상해에서 만난 나의 요가 스승님은 그들의 스승님을 나에게 소개해 주었다. 그렇게 샤밀라 선생님을 찾아 인도 고아로 떠났다. 그곳에서 나는 집중적으로 한 달 동안 아쉬탕가를 배웠다. 그때 아침저녁으로 요가 자세와 철학 그리고 다양한 명칭을 공부하면서 읽은 책에는 파타비 조이스의 요가 말라, 키노 맥그레거의 아쉬탕가 요가의 힘, 리노 밀레의 아쉬탕가 요가 그리고 니콜라이 배치 맨의 the language of yoga가 있다. 


한국에서 생활하기 시작한 스물여덟 살의 나는 매일매일 소설책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 해 겨울 나는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 밀란 쿤데라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그리고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에 푹 빠져 있었다. 그중에서도 줌파라히리의 이름 뒤에 숨은 사랑축복받은 집을 읽는 내내 반전의 플롯 매력에 빠져 잠을 이루지 못하고 보던 기억이 난다. 또한 그녀의 책은 나에게 잠시나마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강한 열망을 불러일으켰다. 로맹 가리의 자기 앞의 생은 글을 읽는 며칠 내내 가슴속에 먹먹하지만 아름다운 슬픔과 같은 감정을 끊임없이 만들어냈다.


한국에서 지내면서 가장 좋았던 것은 한국어로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는 환경이다. 남산 도서관에 걸어서 갈 수 있었고, 교보문고 근처에 사무실이 있어 이틀에 한 번은 꼭 들렀다. 알라딘에 가서 중고책을 마음껏 구매했고, 책 읽는 모임에도 나갔다.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집안에 나의 서재를 둔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늦은 새벽 양초 하나를 켜고 따뜻한 차 한잔을 준비한 뒤 좋아하는 책을 읽어 내려가던 이태원 집 나의 서재는 잊을 수 없다. 


그러다 스물여덟에서 아홉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나는 평생 한번 꼭 가보리라 꿈꾸었던 티베트로 한 달 동안 떠났었다. 음악을 통해 사람들에게 사랑과 연대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영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말이다. 인도에서 시작해 네팔을 거쳐 티베트의 심장 라싸로 가는 모든 길목에서 나는 틈틈이 책을 읽었다. 달라이 라마의 용서, 명상, 선한 마음, 인생론을 읽었고, 아잔 브라흐마의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 알마스의 늘 펼쳐지는 지금, 케빈 홀의 겐샤이, 미르카 크네스터에 마음에 대해 무닌드라에게 물어보라를 읽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하이라이트는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사실 나는 이 책의 영어 제목은 더 좋아한다. Man’s search for meaning. 의미를 찾는 인간. 우리 삶에서 의미와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 주는 아주 소중한 책이었다. 


내가 여행하는 순간순간을 의미 있게 만들어준 작가 중에는 딱 한 사람만 꼽으라면 나는 단연 헤르만 헤세를 꼽을 것이다. 나는 내가 읽은 그의 모든 책을 사랑한다. 네팔 보다낫 사원에서 스물셋 생일에 읽어 내려간 데미안, 산티아고 길을 함께한 싯다르타, 인도 배낭여행을 함께한 인도기행, 스트라스부르와 콜마르 사이를 오가던 기차 안에서 읽던 수레바퀴 아래서, 그 밖에도 유리알 유희, 청춘이란 무엇인가, 헤세의 여행, 헤세가 사랑한 순간들의 문장들은 너무 주옥같아서 한 장 한 장 넘기기 아쉬워하며 읽어나갔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그의 책은 나의 20대 전반을 아우르며 촉촉하게 삶 속으로 들어왔다.


이십 대 초반은 프랑스에서, 중반은 세상을 떠돌며, 후반은 중국과 한국에 돌아와 시간을 보냈다. 20대 대부분의 나의 인생은 호기심이 이끄는 데로 세상을 배워나가는 순간들이 모여 만들어졌다. 세상을 배우지 않고 내가 무엇에 집중해서 살아갈지 결정할 능력이 없었고 그랬기에 일단 배우고자 싶어 선택한 것들이었다. 그러면서도 먹고 살아가야 했기에, 기자로 일하기도 했고 여행 가이드도 했고 사업을 하기도 했으며 글을 쓰고 소정의 원고료를 받기도 했다. 아주 적은 돈을 벌었지만 그건 크게 상관없었다. 내가 하고자 하는 모든 배움과 길에 있어서 그 돈이면 충분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스물아홉이 넘어 서른이 되어가던 시기에 나는 미국에 왔다. 


이제부터는 최선을 다해 또 집중해서 아웃풋을 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인풋의 10년을 보냈으니 30대는 아웃풋의 10년을 보내보자라는 생각으로 말이다. 스무 살 배낭을 메고 잠시 들렀지만 매우 좋은 인상을 받았던 샌프란시스코로 왔다. 혁신과 자유로움이 공존하는 곳이었고, 자본이 흘러넘치는 곳이었다. 세상의 열악한 지역을 많이 여행하면서 자본이 있는 곳과 그곳을 연결하고 싶다는 열망을 품었기에 나에게 미국에서도 가장 부유한 실리콘밸리는 그 꿈을 펼치기에 무척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이 곳에서 살기 시작한 이후로 나는 바깥으로 늘 향해있던 에너지를 내면으로 모아가기 시작했다. 흩어져 있던 관심사를 좁히는 작업을 시작했고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하기보다 한 가지 일에 집중해서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려고 했다. 당시 나의 집중력을 도와주던 책은 게리 켈러의 원씽, 그렉 맥커운의 에센셜 리즘, 스벤 브링크만의 절제의 기술 그리고 레이달리오의 원칙이었다. 조금씩 조금씩 어디 가지 않고도 내가 앉은 그 자리에서 생각을 다듬고 집중하는 방식을 익히기 시작했다. 


미국에 오고 6개월이 지난 뒤 나는 대학원에 입학했다. 나의 주된 관심사는 이제 방법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사회 환경 문제와 해결책의 이해는 어느 정도 쌓여 있었지만 어떻게?라는 질문이 남았기 때문이다. 나는 대학원에서 소셜 섹터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고 자선, 비영리 단체의 운용, 임팩트 투자와 같은 분야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기 시작했다. 자본을 효율적으로 사회에 분배하거나, 재투자하는 방식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배웠다. 그 과정 중에서 주옥같은 몇 권의 책을 발견했다. Heather McLeod Grant의 Forces for good, Anand Giridharadas의 Winners Take all, 한스로즐링의 팩트 풀니스, 윌리암 맥어스킬의 냉정한 이타주의자, 멜린다 게이츠의 The moment of lift, 브레네 브라운의 리더의 용기, Abhijit Banerjee의 Poor Economics, 짐 콜린스의 good to great 외에도 다수의 책을 읽어가며 어떻게? 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마크 베니오프의 trailblazer는 테크 기업의 혁신이 어떻게 자선을 비즈니스에 융합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최고의 예제였다. 나는 대학원을 다니는 내내 세일즈포스와 마크 베니오프 그리고 세일즈포스 재단 CEO일 Rob Acker의 리더십, 재단의 다양성 있는 거버넌스에 대해 집중적으로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다.  


자선이라는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식의 전략적 자선 혹은 비즈니스적인 방식으로 사회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착한 자본주의에 대해 고민했다. 그런 방법에는 이전에 관심 가졌던 사회적 기업도 있고 새롭게 알게 된 임팩트 투자도 있다. 임팩트 투자는 비교적 새로운 분야여서 아주 많은 책이 있지는 않았고 1세대 전문가들이 지금도 활발하게 활약하고 있었다. 다행히 그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아낌없이 책을 통해 나누어주었다. 나는 대표적으로 Jed Emerson의 책을 많이 읽었는데 그의 것이라면 책과 논문 아티클을 빼놓지 않고 최대한 읽으려고 노력했다. 그는 연민의 자세로 투자를 대하는 아주 드문 전문가이자 귀한 이 시대의 리더이다. 나는 그에게 논문을 쓸 때고 가장 먼저 인터뷰 요청을 보냈고 그는 흔쾌히 수락했다. 지금까지도 종종 연락을 하면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소중한 인연이 되었다. 그의 이론 Blended Value와 최근에 나온 The Purpose of Capital은 자본주의 시대에서 자본의 목적에 대해 깊게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이밖에도 Judith Rodin의 The power of impact investing, 키이스 올맨의 임팩트 투자, Cathy Clark, Anthony bugg Levine와 Jed Emerson의 공저 impact investor는 임팩트 투자를 하는 투자가에 초점을 맞추었던 책이었고 특히 Multilingual 리더십에 대한 부분은 파이형 인재 크로스오버 인재처럼 새로운 리더십에 중점을 맞추었기에 더욱 인상적이라 기억에 많이 남는다. 


임팩트 투자의 기본적인 구조를 알기 위해 벤처 투자서도 읽었는데 그중에서 특히 Brad Feld의 Venture deals, Ben Horowitz의 the hard thing about hard thing 그리고 유명한 VC 인 랜 디커 미서의 승려와 수수께끼도 재밌게 읽으며 벤처 투자의 골격을 이해했다. 벤처투자나 사모펀드에 대한 이해도가 -100인 상태에서 이 책들은 나에게 기본기를 다지게 해 주었고, 논문을 쓰면서 인터뷰했던 많은 전문가들의 도움으로 비교적 빠르고 쉽게 새로운 세계에 다가설 수 있었다. 


본격적으로 how? 에 대해 공부를 하기 시작하면서 특히 생산성, 습관, 성공에 대한 키워드에 집중했고 이 분야에 대해 쓰인 책을 재밌게 읽어나갔다. 랜디 저커버그의 픽 쓰리, 티모씨 페리스의 타이탄의 도구들 웬디 우드의 해빗, 빌 조지의 최고는 무엇이 다른가, 엘렌스 테인 주니어의 승리하는 습관, 밴저민 하디의 최고의 변화는 어디서 시작되는가, 크리스 베일리의 그들이 어떻게 해내는지 나는 안다 등의 책이 특히나 이 주제를 심도 있게 파악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기업이나 비영리 기구에서 사회적 임팩트를 냈다면 그것을 명확하게 분석하는 것에도 중요성을 느꼈다. 그래서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방법 또 그것을 시각화해서 표현하는 방법 등을 익히는 시간을 가졌다. 데이터 분석과 관련한 책중에서는 Clinton Brown Lee의 Foundations for Analytics with Python를 입문서로 선택했고 시각화는 Cole Nussbaumer Knaflic의 Storytelling with data: A data visualization guide for business professionals 가 지금까지 만난 시각화 책 중에 가장 훌륭했다. 이 분야는 지금 적극적으로 알아가고 지식을 쌓아가고 있는 중이다. 


흥미와 관심이 이끄는 데로 살다 보니 다른 사람보다 집중된 커리어를 쌓는 시기가 늦어졌고 그 부분은 종종 나에게 불안감으로 다가왔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에게 나는 나만의 스토리를 가지고 나의 인생을 사는 사람이라는 것을 상기시켜줄 필요가 있었다. 자존감이 낮아질 때 다시 자존감을 끌어올려주고 나 자신을 사랑하고 이해하고 나만의 속도를 받아들이게 해 준 것도 책을 통해서였다. 그런 책에는 데이비드 엡스테인의 늦깎이 천재들의 비밀 와카스 아메드의 폴리메스, 말콤 글래드웰의 데이비드엔 골리앗, 브레네 브라운의 진정 나로 살아갈 용기 등이 있다. 


다 읽지는 못했지만 부분적으로 읽으면서 언젠가는 반드시! 를 외치게 한 여러 권의 교양서도 있다. 제레미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 스티븐 핑거의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유발 하라리의 여러 책 시리즈, 강신주철학 vs 철학,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만들어진 신, 눈먼 시계공, 지상 최대의 쇼,  이오덕의 우리글 바로 쓰기 전권,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등은 읽을 때마다 너무 재밌고 깊게 빠져들지만 내용의 깊이와 길이 때문에 늘 끝내지 못했던 책들이다. 이런 책들을 읽다 보면 나의 성찰과 생각의 깊이가 얼마나 얕은지 깨닫게 되고, 안다고 착각하는 게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 느끼게 한다. 지식 앞에서 겸손해지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뭐 급할 거 있는가 천천히 계속 읽어 가다 보면 언젠간 책을 온전히 이해하고 삶에 적용할 수 있는 날이 오겠지. 


이 외에도 공지영의 책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네가 어떤 삶을 살던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딸에게 주는 레시피 그리고 최근에 나온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십 년의 시간 동안 위로받고 싶을 때마다 꺼내 읽었던 귀한 책들이다. 마야 안젤루의 딸에게 보내는 편지새장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지 나는 아네 그리고 김미경의 책들 중에 이 한마디가 나를 살렸다는 작년 어느 때 많이 지치고 힘들었던 날 뜨거운 욕조에 앉아서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내려가며 한없이 위로받았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나는 2010년부터 2020년에 걸쳐서 많은 책을 만났고 그 안에서 인생을 배워왔다. 책을 쓴 저자의 주옥같은 삶, 경험, 과정을 단 한 권의 책을 통해서 만나게 되는 것은 매우 감사한 일이다. 직접 만나든 그렇지 않든 그들로부터 나는 많은 것을 배웠고 삶에 적용할 수 있었다. 책을 이해하고 소화하는 능력은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나이가 들면 들수록 늘어가는 것 같다. 이 책들을 다시 읽게 된다면 또 어린날 그 책을 이해하며 감명 깊었던 것들이 다르게 다가올 거라 생각한다. 2021년을 시작하며 책을 정리함으로써 나를 관통하는 관심사와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들을 되돌아봤다. 이제는 20살 초반 스스로에게 물었던 "나는 누구지?"에 대한 대답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내가 읽어온 책이고, 살아온 경험이며, 만나온 사람이고, 써온 글이라고 말이다. 그렇게 후회 없이 열정적으로 살았던 이십 대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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