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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원 Apr 22. 2022

당근마켓 빌런

드디어 만났다. 당근마켓 빌런.


말로만 들었던 그를 만나게 된 계기는 의외로 사소했다. 동생의 추천을 받아 당일이 유통기한인 신선식품을 싸게 파는 곳이 있다 하여 방문하였다. 샐러드 한 통에 천원에 파는 등 과연 저렴하였는데, 그곳은 식품뿐만 아니라 전자기기, 그릇, 장난감 등 여러 종류의 물건들을 저렴하게 팔고 있었다.


그곳에 모노폴리 K-부동산이라는 게임이 있었다. 가늘고 긴 박스에는 "대한민국 현실 그대로 반영, 게임하면서 배우는 부동산 상식" 이라고 적혀있었다. K부동산에 많이 당해 벼락 거지 외길을 걷고 있는 나에게

이 게임은 연우에게 조기교육을 시키기에 적당해 보였고, 가격또한 3,000원으로 저렴했다.

위에 증정품이라고 써있었지만, 가게 특성상 그러려니 하고 신경 쓰지 않았다.

저렴한 가격에 득템하여, 집에 와서 게임을 해보려고 보니. 이런... 이건 확장판이어서 모노폴리 본판이 필요하였다. 급하게 인터넷을 검색하니 본편+확장판 세트로 충분히 저렴하게 팔고 있었다. 나... 당한 건가?


미리 검색하지 않은 나의 과오를 탓하며, 이럴때 믿을수 있는 당근마켓을 열었다. 많은 모노폴리들이 있었는데 , 한번 사용했다고 하는 5,000원 물건에 말을 걸었다. 구매 의사를 밝히자 대뜸 다른 물건은 안 사냐고 물어본다. 혹시, 다른 보드게임들을 팔고 있나 해서 살펴봤는데, 옷 같은 전혀 다른 종류의 상품들이었다. 이때 쐐함을 느끼고 거래를 중단했어야 했는데...


 너무 멀면 찾아가기 힘들어서 대략적인 위치를 물었는데, 답은 하지 않고 혼자 시간약속을 잡고 있다. 나는 아직 구매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고!!! 몇번을 묻고 물으니 **빌라라고 건물 이름을 말해주는데. 검색해보니 동일한 이름의 빌라가 너무 많았다. 아직 만나지도 않았는데, 현장 3번 다녀온듯한 이 피로감...


약속 시간을 정하는데 본인은 6시쯤 일이 끝나니 본인 집으로 와줄 수 있냐고 물어서, 집 근처에서 일하나? 하면서 6시에 간다고 하였다. 6시에 맞춰 약속 장소에 도착하여 연락했더니 아직 일이 안 끝났는데 왜 벌써 왔냐고 한다. 6시가 약속 시간이니까 왔지. 왜 벌써 왔겠니? 꾹 참으며 얼마나 걸리냐고 물어보니 회사에서 집까지 4~50분 걸린다고 한다. 그럼 약속을 7시에 잡았어야 하는 거 아닌가?


약 1시간이나 기다릴 수는 없어서 구매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집에 가는데 산다고 한 사람이 나밖에 없는지 계속 채팅으로 질척인다. '내일은 어떠냐? 주말은 어떠냐?' 대꾸하고 싶지 않아서 꾸벅 인사하고 좋은 하루 보내라는 이모티콘을 보내고 괜한 시간 낭비했다고 마무리했다.


고 생각했는데, 잘못 이해했는지 월요일 낮에 갑자기 지금 거래가 가능하냐는 메세지가 온다. 평일에는 갈 시간이 없다 하고 혹시 우리 집까지 와준다면 교통비를 더 챙겨주겠다고 하니 알겠다고 한다.

약속 시간을 잡고 기다리는데, 좀 있다가 부모님이 아프셔서 오늘은 안되겠다는 메세지가 온다. 이건 너무 전형적인 핑계 아닌가? 거래 거절의 완곡한 표현인가 해서, 간호 잘하라고 메세지를 보냈다.


그리고, 연락이 안 올 줄 알았는데, 갑자기 내일 저녁 거래 가능하냐고 톡이 온다. 그럼 오늘처럼 와 줄 수 있냐고 물으니 답이 없다. 다음날 야근 때문에 회사에 있다가 갑자기 왔다고 연락 올거 같아서 혹시 오늘 오냐고 물으니. 대뜸 본인 집으로 와 줄 수 있냐고 한다. 주중에는 늦게 끝나서 힘들다고 주말에 보기로 했다.


아내에게 경과를 말하니 이상한 사람 같다고 거래 하지 말라고 한다. 나는 그래도 사람은 착한거 같다고 하니 아무나 다 착하다고 한다고 나무란다. 나는 나지막이 말했다. "울 아내도 착해."


약속 시간을 정확히 정하지 않으면 지난번 같은 사태가 생길거 같아서 토요일 오전 9시로 확실히 정했다. 그리고, 금요일 저녁에 채팅이 다시 왔다. 내일 본인이 가는데 교통비 더 챙겨주는 게 맞냐고. 맞다고 말하니 감사하다며, 사장님 쉬시라고 한다. "역시 사람은 착하네."


토요일 9시가 되었지만 그에게는 연락이 없었다. 이젠 왜 연락이 없는지 궁금하지도 않았다. 

12시가 되니 다시 연락이 왔다.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당당하게 말한다. 혹시 근처 역에서 만나면 안되냐고. 너무나 당당한 나머지 내가 혹시 채팅을 잘 못 썼나하고 다시 확인했지만, 나는 오전 9시라고 정확히 말하였다.

착하지만 모자란 친구가 분명했고, 난 혹시 못 알아들을까 봐 거래 종료의 의사를 정확히 밝히고 채팅창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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