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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원 Jul 17. 2023

캠핑장 펀치왕

그럴 때가 있는 거 같다. 시원하게 흐르는 계곡, 눈이 편안해지는 녹음의 자연, 밤에 빛나는 별.

여기에 작은 모닥불을 피워놓고 소세지를 굽고, 시원한 맥주를 한잔 마시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그런 로망.

이를 이뤄줄 수 있는 것에는 캠핑만 한 것이 없다. 특히 아이가 어리면 더 좋다. 

야외에도 나오고, 물놀이도 할 수 있고 특히 요즘은 아이들이 놀기 좋게 풀장이나 방방까지 갖춰진 곳이 많다.


동생도 그럴 때가 왔다. 캠퍼로 탈바꿈하고 짐을 바리바리 챙겨서 이른 여름휴가에 함께했다.

영월에 있는 키즈 캠핑장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해서인지 여러 이벤트와 놀이기구들이 있었다.


거기 있는 아이들중 가장 큰거 같은 장연우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펀치머신.

평소 펀치머신을 치면서 본인의 강함을 시험해보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요즘 보기가 힘들었는데

때마침 찾아간 캠핑장에서 펀치머신을 발견하였다.


연우는 눈을 반짝이며 아빠에게 삥 뜯은 지폐를 바로 기계로 투입하였고, 펀치를 치기 시작하였다.

아마 999점이 만점인 거 같은데, 표시된 최고점은 880점 정도였다.

장연우는 아직 요령이 없는지 700점대가 나오고 있었다.

온가족이 한번씩 쳐보는데, 아내는 770점 정도가 나왔다. 나는 너무 진심으로 치면 좀 없어보일꺼 같아서

아빠의 파워를 보여줄 정도로만 세게 쳤더니 800점대 후반이 나왔지만, 최고점을 넘지는 못했다.

옆에서 보던 동생이 치지 않는 손으로 치는 손의 손목을 잡고 치면 더 많이 나온다고 요령을 알려주면서

뻥 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920점을 쳤고, 바로 최고점을 넘겼다.

연수를 받은 연우의 점수는 800점대까지 올랐다.


캠핑장에서 여러 이벤트도 하였는데, 그 중 하나가 엄마 펀치왕이었다. 사람들을 모아서 간단한 넌센스 퀴즈로 분위기를 풀고, 대회에 참여할 엄마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 그런데, 엄마 펀치왕이 끝난 후에 아빠 펀치왕도 한다는 것이었다.

아내는 줄을 섰고, 난 아까 최고점을 쳤던 동생이 생각나서 조카 손을 잡고 동생을 데리러 가면서 말했다.

"아까 아빠(동생)가 1등한거 봤지? 아빠 힘이 장난아니니까 이번에도 1등할수 있을꺼야." 


동생에게 빨리 오라 말을 하고, 이벤트 장으로 걸어가는데, 저 멀리서 어디서 많이 본 사람이 단상 위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다.

헛! 이게 무슨일인가? 하면서 빠르게 걸어가니 아내가 1등 자리에 앉아 있었다. 

연우에게 물어보니 엄마가 양손으로 쳐서, 850점 정도가 나왔다고 했다. 말을 하는 와중에 큰 타격음이 들려서 보니 한 어머니가 아내보다 약간 높은 점수로 1등을 탈환해 갔다.


한 칸 낮은 의자로 내려왔지만, 2등도 대단한 거고 그다음으로 나오는 어머님들은 600점도 제대로 치지 못하였다. 이제 남은 사람이 거의 없었다. 이대로라면 2등은 확정이었다 상품이었던 1박 2일 상품권은 어떻게 사용하지? 하는 상상을 하는 와중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좌중이 동요하였다. 885점. 

힘 좀 쓰셨던 분인지 남들과는 다른 타격음으로 1등을 차지했고, 아내는 슬프게도 단상에서 내려왔다.


이제, 아빠들의 차례가 되었다. 고기굽느라 잘 안 보이던 덩치 좋은 아빠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아빠들은 묵직한 소리와 함께 대체로 900점대 초반을 치고 있었다. 

사람 놀리기 좋아하는 사회자는 885점보다 낮으면 벌칙이 있다고 하였다.

다른 사람들을 보니 아깐 엄청 높았던 920점이 굉장히 평범해 보였고, 동생도 평범하게 치고 내려왔다.

내가 치려고 폼을 잡고 있으니까,가족들이 걱정하기 시작한다. 885점 넘을 수 있겠냐고

그래도, 아까는 대충 쳤고 이번엔 진심을 다해 치니 뭔가 다르겠지 하는 생각으로 줄을 섰다.

너무 본격적이지는 않게 남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몸을 풀었다.

드디어 내 차례, 연우가 갑자기 큰 소리로 내 이름까지 말하며 응원을 시작한다. 


남들은 양손을 잡고 치지만, 나는 한 손으로 치기로 했다. 허리를 회전하며 몸의 무게를 주먹에 실으며 스윙을 했다. 내 귀에는 큰 폭발음이 들렸다. 느낌이 좋았다. 펀치머신을 부셔버린듯한 이 기분.

점수는 뒤부터 올라가기 시작했다. 70점이 보였다. 됐다. 찢었다!! 

앞자리는 6. 7. 8....에서 올라가지 않았다. 점수는 870점. 

여자 1등보다 낮은 점수가 나오자, 사회자가 신이 나서 놀리기 시작했고,

나는 귀를 닫고 빠르게 단상을 내려왔다. 가족들에게 큰 실망을 준 듯 하였지만, 애초에 기대가 있지 않았기 때문에 실망도 없었다.


결국 몸 좋은 아저씨들이 960~70점대를 쳐가며 1등을 하였고, 1등 상품이 장작, 2등 상품이 생맥주 한잔인 걸 보고 난 아까 가위바위보 이벤트에 이겨서 맥주를 탔으니 역시 두뇌파였어. 라던가

사실 어깨탈구가 있기 때문에 너무 강하게 치면 캠핑장 와서 병원 갈 수 있으니까 내 몸이 알아서 리미트를 건 거야. 라는 변명을 하였지만 아무도 듣지 않았다.

다만, 한 아저씨가 나보다 낮은 점수를 쳐서 꼴등은 아니었다는데 위안을 얻었고, 아내가 3등이 아닌 2등을 하였다면 우린 2등 커플이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다음날, 짐을 챙겨서 차에 놓고 동생 텐트 정리하는 걸 도와주는데, 아내가 차키가 어디있는지 물었다.

바지 주머니에 넣어놓은게 불편해서 가방에 집어 놓고, 가방은 차 트렁크에 넣어놨던게 생각났다.

찾아올게 하고 가서 트렁크를 여는데, 트렁크가 꼼짝하지 않는다.

내 차인데, 내차 아닌 그런 느낌. 아까 짐 넣어 놨을때만 해도 잘 열려서 이런 일은 상상도 못 했다.

갑자기 식은땀이 줄줄 났다. 급하게 검색을 해보았더니 차 문을 뜯네, 유리창을 깨네. 그런 농담들이 있었다.

급박한 상태에서 그런 농담을 보니 웃기지 않고 짜증 났다. 방법은 열쇠 전문가를 부르는 수밖에 없었는데

강원도 영월 캠핑장에서 부르려니 돈이 얼마나 들지... 여러가지 방법을 찾아 봤지만,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전문가밖에는... 결국 바보 비용 15만원을 들이고, 2시간을 기다려 문을 땄다.

2시간을 기다린 탓인지 집에 오는 길은 막혔고, 나 자신에게 너무 화가 났지만, 화를 내도 아무 소용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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