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에서 우연히 만난 남자

그에게 지금 필요한 건 1화

by 자자카 JaJaKa

주하가 광화문에 있는 대형서점에 발을 들여놓은 순간 그녀의 코끝으로 좋은 냄새가 났다. 서점에 온 것이 아니라 마치 어디 호텔 로비에 들어선 것처럼.


주하는 반질반질 윤이 나는 바닥에 천장의 불빛들이 비치는 것을 보면서 천천히 걸어갔다.

책을 고르는 사람, 누군가와 통화하는 사람, 책 검색대 앞에서 자신이 원하는 책을 검색하는 사람, 계산대에서 고른 책을 계산하려고 줄을 선 사람, 같이 온 일행과 대화를 나누는 사람, 책을 정리하고 있는 서점직원 등 다양한 사람들이 책이라는 매개체로 모여든 이 공간에서 주하는 편안함을 느꼈다.


서점의 출입구에서 안쪽 공간으로 걸어 들어가자 그녀의 코를 통해 책 냄새가 나기 시작했고 비로소 주하는 서점에 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바쁘다는 이유로 서점에 나올 일이 없어진 요즘 그리고 온라인으로 책을 구매할 수 있게 된 후로 서점에 나올 일이 점점 줄어들게 되었다. 과거에는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던 책 냄새를 맡고 어떤 책이 나왔나 살펴보고 책을 고르고 직접 손으로 책의 감촉을 느끼면서 내용을 살펴보는 일이 이제는 큰맘 먹고 일부러 시간을 내서 나와야 하는 일이 되어버린 것 같아 씁쓸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주하는 서두르는 기색이 없이 오랜만에 찾은 서점 이곳저곳을 천천히 거닐었다. 서점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마치 책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왠지 친근하게 느껴졌다.

주하는 자기 계발서 코너를 지나쳐 소설코너 쪽으로 향했다. 그동안 어떤 신간들이 출판되었을까?

주하는 국내소설과 외국소설 신간코너를 기웃거리면서 새롭게 출간된 책들을 훑어보았다.

소설코너를 살펴본 그녀가 에세이코너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미 익숙한 제목의 책들을 뒤로하고 신간코너로 향했다. 신간코너에서 눈에 띄는 제목이나 전에 읽었던 작가의 책 위주로 책을 살펴보았다.

주하가 책을 살펴볼 때는 대개 작가의 프로필, 대부분 책의 맨 뒷장에 있는 책의 판매부수, 작가의 말, 대략적인 책의 내용 그리고 책 내부의 디자인과 글자 크기를 위주로 살펴보고는 했다.


언제부터인가 책을 고르거나 살펴볼 때면 그냥 그렇게 자동적으로 쭉 하고 훑어보게 되었다. 어떤 작가의 글인지 어떤 내용이고 사람들이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읽었는지를 무의식적으로 확인을 했다.


또한 소설책은 대개 그러지 않은데 에세이 책들 중에는 책 내부의 디자인이 조금은 유치하게 되어 있거나 그녀가 보기에 조잡하게 되어 있는 책은 제대로 살펴볼 마음이 일어나지 않아 들었던 책을 원래 있던 자리에 그대로 놓아두고는 했다. 그런 책들은 그녀의 구매의사를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그냥 읽기 편하고 깔끔하게 책을 만들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하면서 책을 내려놓을 때면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자신만 그렇게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은 아기자기하고 다양한 색깔이 들어간 책을 좋아할지도 모른다고.


주하가 에세이코너에서 책을 살펴보다가 어떤 책 앞에서 멈추어 섰다. 일단 제목이 그녀의 눈길을 끌어서 평대 위에 있는 그 책을 평소에 그녀가 살펴보는 순서대로 먼저 작가가 누구인지 그리고 현재 몇 쇄의 책을 찍어냈는지, 작가의 말을 읽어보고 나서 흥미가 생기자 책의 내용을 살펴보기 위해 책을 들어 올렸다.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기면서 짧은 단락으로 이루어진 글을 읽었다. 조금만 안의 내용을 살펴보고 다른 책들을 살펴보려고 했는데 어느새 책의 재미에 빠져서 다른 책을 살펴보는 것도 잊은 채 책을 읽었다.

글을 읽고 있자니 문득 엄마 생각이 나기도 했고 어떤 부분에서는 눈시울이 조금은 붉게 물들기도 했다. 그렇게 감정이 조금은 울컥해서 책장을 넘기며 책을 보고 있는데 옆에서 어떤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주하가 응? 뭐지? 하는 표정으로 옆으로 고개를 돌려서 바라보니 한 남자가 주하 앞에 놓인 책을 가져가기 위해 눈치를 보며 손을 뻗고 있었다. 주하가 서서 책을 읽고 있다 보니 본의 아니게 다른 사람이 책을 고르는 것을 방해하고 있었는가 싶어 얼른 공간을 내어주며 말했다.


“미안합니다.”


그 남자가 원하는 책을 빼가면서 고개를 살짝 숙이면서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아마 괜찮다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하고 주하는 생각했다.


그 남자가 고른 책은 주하가 살펴보고 있는 책하고 같은 책이었다. 스르르 책장을 넘기면서 살펴보는 남자를 보니 어쩌면 책을 고르거나 읽는 취향이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데 그 남자에게서 어디선가 맡았던 향수냄새가 났다. 분명히 주하가 아는 사람 중에 이 향수를 즐겨 썼던 남자가 있었는데 향수의 이름도 그 남자의 이름도 기억이 나지가 않았다. 따뜻하면서도 무겁지 않은 이 향수의 이름이 생각이 나지 않자 갑자기 뭔가 속이 답답해지면서 책에 집중이 되지가 않았다.


아, 뭐지? 뭐였지? 이 향수 이름이 기억이 날 듯 말 듯 주하의 심기를 건드렸고 이 향수를 사용하던 남자도 기억이 떠오를 듯 말 듯해서 은근히 짜증이 일어났다. 아, 누구였지? 회사 동료? 대학교 때 알던 사람? 고객 중에서? 갑자기 머리에 과부하가 걸린 것처럼 머릿속이 지끈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