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게 지금 필요한 건 3화
찻집에서 만난 남자는 주선자가 말한 대로 인물은 나쁘지 않았다. 근데 향수를 뿌리고 나온 것이 아니라 실수로 향수병을 쏟았는지 그 남자가 맞은편에 앉자마자 아니 그녀 쪽으로 걸어오는데 이미 향수냄새가 진동을 했다. 은은하게 풍겼다면 그 향수냄새가 좋았을지 모르지만 너무 과하게 나는 향수냄새에 주하는 속이 울렁거렸고 그녀의 코가 마비가 되는 것 같았다.
어떻게든 향수냄새를 참아내며 대화를 나누어보았는데, 얘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주하는 자기랑은 맞지 않는 남자라는 느낌이 점점 더해갔다. 일단 그는 자기가 웬만큼 생겼다는 것을 아는지 외모에 대한 자신감이 느껴졌고, 그가 다니는 빵빵한 직장에 대한 자부심 또한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래봤자 어차피 한순간에 어찌 될지 모르는 샐러리맨 신세이건만.
그와의 대화에서 그의 외모와 빵빵한 직장에서 오는 자신감은 자기가 만날 여자를 고르는 데 있어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 같은 느낌을 여러 차례 받았다.
솔직히 주하는 찻집에서 일어나는 순간 바로 집으로 가고 싶었다. 그러나 그가 차만 마시고 헤어지기 아쉬우니 가까운 데서 술이나 한잔 하면서 더 얘기하자는 말에 거절을 했어야 했는데, 급한 일이 생겼다고 그냥 갔어야 했는데 괜히 주선자의 얼굴이 떠올라 거절하지 못하고 따라가게 되었다.
그냥 가까운 데로 가면 되겠구먼 뭘 그리 찾는지 이 골목 저 골목을 헤매고 다닌 그가 찾아낸 곳은 어느 와인 바였다. 그래도 초면에 아무 데나 갈 수 없지 않겠냐며 분위기가 어느 정도 있는 곳에 가야 한다는 그의 말에 하이힐을 신고 쫓아다녀 다리가 아팠지만 주하는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
와인 바에서 와인과 치즈를 시키고 대화를 나누었다. 거의 그가 하는 대화를 주하가 들었다. 그는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지 주하가 말하는 이야기를 듣기보다 자신이 주도권을 쥐고 얘기하는 것을 좋아했다. 회사에서 본인이 맡고 있는 일과 학창 시절에 잘 나갔던 이야기가 거의 대부분이었다.
만난 지 조금 지났는데도 그에게서 나는 향수냄새는 아직까지 주하의 코를 힘겹게 했다. 찻집에서나 자리를 옮긴 와인 바에서나 두 사람의 자리로 차나 와인을 가져다주던 직원들이 지독한 향수냄새에 순간 멈칫하면서 살짝 인상을 찡그리는 것을 주하는 놓치지 않았다.
남들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을 이 앞에 앉은 남자는 모르는 것일까? 오늘만 이렇게 향수를 뿌린 것인지 아니면 매일같이 이렇게 향수병을 들이붓듯 향수를 뿌리고 다니는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다른 사람들을 생각해서 적당히 좀 뿌리고 다니면 안 되겠니? 하고 면전에 대고 쏘아 부치고 싶은 충동을 주하는 그와 함께 있는 동안 내내 참아야 했다.
술이 들어갈수록 그는 자신의 잘남을 뽐내기에 바빴다. 자뻑 근처에서 어슬렁어슬렁 헤매고 다니는 사람처럼.
지금 자기가 싱글인 것은 자기가 여자가 없어서가 아니라 아직 적당한 여자를 만나지 못한 것이다. 지금이라도 여자를 만나려고 하면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 지금 내 조건이면 여자들이 줄을 설 정도는 된다. 괜히 하는 소리가 아니다. 직장 내에서도 여럿 여자들이 추파를 던지지만 자기가 생각하는 조건에 영 미치지 못해서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들으면 들을수록 실소를 금할 수가 없는 얘기들이 이어졌다. 예의상 조그만 앉아 있다가 바로 일어나야지, 하고 생각하면서 그의 얘기를 듣다가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피식, 하고 웃음이 나왔다.
사실 주하가 보기에 그 정도로 보이지는 않는데 그는 자신이 잘나도 너무 잘났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리 대단해 보이지도 않는데 꼬래 지 잘난 맛에 사는 인간이구만, 하고 생각을 하면서 그가 얘기하는 것을 듣고 있다가 너무나 어이가 없어서 그녀 자신도 모르게 피식, 하는 웃음이 나온 것이다.
근데 그가 자신이 한창 신이 나서 말하고 있는 도중에 주하가 피식, 하고 웃은 것을 보았는지 얼굴빛이 살짝 바뀌었던 것 같았다. 살짝 눈가를 찡그리고 입술을 깨물던 그가 갑자기 손을 들어 직원을 부르고는 메뉴판을 보지도 않은 채 이름도 어려운 어떤 와인을 시키고 추가로 안주도 더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