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의 조건

그에게 지금 필요한 건 7화

by 자자카 JaJaKa

주하는 몇 달 전에 나영이가 한 얘기가 생각이 났다. 거래처 사람 중에 괜찮은 남자가 있어서 조만간에 개인적인 자리를 만들 생각이라고 했다.


나영은 마지막 관문만 남았고 그 관문을 통과하면 사귀는 단계를 건너뛰어 아예 결혼을 해버릴지도 모른다고 했다. 나영이가 말하는 마지막 관문이라는 것은 나영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조건이었다. 그것은 바로 사귀기 전에, 진지한 만남을 가지기 전에 남자와 같이 술을 마시는 것이었다. 술을 먹고 주사가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하는 것.


나영은 어렸을 적부터 그녀의 아버지의 술주정에 학을 띠었다. 평상시에 술을 마시지 않았을 때는 전혀 그런 난폭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때로는 자상하기까지 했는데 술이 뭔지 술만 마시면 어떻게 그렇게 돌변할 수 있는지 완전히 딴 사람이 된 듯 바뀌어버렸다.


그녀가 기억하기에 그녀의 아버지가 술에 취해 들어왔을 때 처음에는 그렇게까지 난폭하지 않았다. 제대로 피지도 못한 자신의 인생에 대한 신세한탄을 하며 울먹거리던 것이 어느 날부터인가 그 모든 것이 가족 때문이라는 듯 가족을 향한 욕설로 바뀌었고 그 후에는 손찌검을 비롯해 폭력으로 이어졌다.


어렸을 때부터 그녀의 아버지가 술을 마시고 들어오는 날에는 아버지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숨을 죽인 채 숨어 있어야 했다. 아버지가 고꾸라져서 잠이 들기 전까지 그녀는 갖은 욕설과 가정폭력으로 인해 신음하는 엄마의 울부짖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나영도 그런 가정폭력에서 예외는 아니어서 그녀의 몸 구석구석에는 시퍼런 멍 자국이 없는 날이 없을 정도였다.


그녀의 아버지가 술 때문에 돌아가시기 전까지 그녀는 말 못 할 고통을 꼭꼭 숨긴 채 살아야 했고 그녀가 고2가 되었을 때 비로소 두려움과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술만 마시면 돌변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어렸을 때부터 보고 자란 나영은 언제인가 굳은 표정으로 그런 말을 했다.


“나는 남자 얼굴? 성격? 능력? 이런 것보다 술을 먹은 후에 술주정을 하는지 하지 않는지가 가장 중요해. 아무리 잘생기고 능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나는 술을 먹고 조금이라도 술주정을 하는 사람은 그 누구라도 만나지 않을 거야. 차라리 못생기고 능력이 대단치 않더라도 나는 술주정을 하지 않거나 술을 한 잔도 못 마시는 남자를 택하겠어. 나는 남자건 여자건 술을 먹고 주사를 부리는 사람을 보면 정말로 가까이하기가 싫어. 그게 친구건 회사동료건 누구 건 간에.”


실제로 나영은 술을 먹고 술주정을 부리는 것을 보면 다시는 술자리를 갖지 않았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옛날 그 아픈 기억들이 떠올라서 너무나 고통스럽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고등학교 친구 중에 나영의 친구로 남은 사람은 유일하게 주하뿐이었다.


나영은 언제나 누군가를 사귀기 전에 일단 술을 같이 먹고 그 남자의 상태를 확인했다. 조금이라도 술주정을 하면 그 어떤 남자라도 한번 이상 만나지 않았고, 관계는 시작도 하기 전에 끝나고는 했다.


몇 달 전에도 정말 괜찮은 남자를 발견했다면서 조만간에 자리를 만들어 술을 같이 할 생각이라고 했는데 그가 바로 안기주 과장이었던 것이다. 그와 술자리를 같이 한 후 나영은 정말 너무나 아쉽다는 듯 이런 말을 했었다.


“내 상대는 아닌 것 같아. 정말 괜찮은 사람이었는데. 그 사람도 주사가 있더라. 그것도 하나가 아니야. 휴우, 이러다가 나 결혼도 하지 못하고 혼자 살아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어. 차라리 술을 한 잔도 못 마시는 남자를 찾는 게 더 빠를지도 모르겠어. 어디 술 한 잔도 못 마시는 남자 없니?”


주하가 그때의 일을 떠올리고 나영을 향해 말했다.


“기억났어. 네가 했던 얘기. 아, 나는 그것도 모르고. 이제 어떡하니? 그냥 우리 둘이 가겠다고 말해볼까?”


나영이가 고개를 저었다.


“지금 와서 그런 말을 하면 좀 그렇지.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그럼 어떡하지?”


나영이가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지 말이 없다가 주하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주하야”


“응?”


“사실 안과장이라는 사람 괜찮은 남자야. 내가 보기에도 사람 괜찮고 능력도 있고, 근데 나한테는 영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너도 알 거야. 나는 평생 혼자 살망정 그 어떤 남자건 주사가 있는 사람은 단연코 노, 거든. 근데 너는 나와는 다르게 주사가 있느냐, 없느냐를 나만큼 중요하게 보지 않잖아. 그렇다면 네가 오늘 자리를 함께 하면서 찬찬히 살펴봐봐. 어떤 남자인가.”


“내가?”


“너 이런 기회 흔하게 오는 거 아니다.”


주하는 나영의 말이 진담인지 농담인지 확인하기 위해 나영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진심이야?”


나영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백 퍼센트 진심이야. 내가 아는 한 안과장님, 괜찮은 사람이야. 그리고 주하, 기주, 두 사람의 이름 중에 한 글자가 겹치는 것도 뭔가 의미심장한 것도 같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