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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작가 JaJaKa Mar 04. 2022

손 편지

시대가 바뀌었다. 모든 것이 너무나 빠르게 돌아간다. 때로는 그 빠른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나 혼자만 뒤처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과거와는 달리 바로바로 상대방에게서 회신이 오고 미처 생각할 시간도 주지 않고 상대방은 답장을 요구한다.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보채기 시작하고 기다리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지루하고 힘든 일인 것처럼 무엇이든 빠른 대답을 원한다.      


느려진 두뇌회전으로 시간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나는 무엇인가에라도 쫓기듯 신중하게 생각할 시간도 갖지 못한 채 답장을 보내게 된다. 이메일, 메신저, 문자메시지, SNS 등 수많은 첨단 문명 앞에서 나는 기다리는 것에 익숙하지 않게 되었다.      


어느새 인가 나도 답장이 늦어질 때면 나도 모르게 보채고 혼잣말로 너무 느린 거 아니야, 하고 말할 때도 있다. 과거에는 시간을 두고 기다리는 것이 미덕인 시대도 있었는데 말이다.      


요즘에 손 편지를 받아본 적이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편지라는 것 자체가 어느 순간인가 마치 과거의 유물처럼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 설레던 편지를 기다리고, 기다리던 답장이 왔을 때 그것을 조심스레 뜯어서 편지지를 꺼내어서 읽고, 한 번 더 천천히 읽어보던 그때의 기억들이 이제는 추억으로만 남게 되었다.      


또박또박 손으로 한 자 한 자 써 내려간 글씨를 보면서 상대방에 대한 마음과 정성을 느낄 수 있었고, 때로는 글씨체를 보면서 개발새발 쓴 글씨를 보면 읽기도 힘들었지만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했고, 단정하고 예쁘게 쓴 글씨를 보면 나도 그렇게 쓰고 싶어서 부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던 시절이 있었다.     




손 편지를 보기가 힘든 요즘에 나는 가끔 손 편지를 받고는 한다. 엄밀히 말하면 손 엽서라고 하는 게 맞겠지만. 

그때가 언제인가 하면 꿀을 주문하고 택배 상자를 받을 때이다.      


몇 년 전부터 한 꿀 농장에서 꿀을 주문해서 먹고 있는데, 꿀이 든 택배 상자에 언제나 꿀 외에 덤으로 주는 작은 선물과 함께 손 편지가 들어 있다. 

아마도 꿀을 주문해 먹는 다른 가정에게도 손 편지를 직접 써서 보내실 것으로 추측이 되는데, 요즘과 같은 시대에 누군가에게 이렇게 손 편지를 어디에서 또 받을 수 있겠는가.      


꿀을 주문하는 모든 가정에게 편지를 동봉하는 것이 비단 쉬워 보일 수 있지만 정성이 필요한 일이다. 얼마 전에도 꿀과 함께 그곳의 소소한 일상을 적은 손 편지가 들어있었다. 시골의 정취와 정이 듬뿍 담겨 있는.   

  

마지막으로 손 편지를 썼을 때가 언제였던가. 

학창 시절에는 크리스마스 카드를 해마다 꼭 쓰고는 했고 종종 연애편지를 쓰기도 했는데, 언제부터인지 기억이 정확히 나지는 않지만 편지 쓰는 일이 점점 드물어져 갔다.      


누구에게 편지를 받지도 않지만 나 자신도 편지를 쓰지 않게 되었다. 그냥 자연스레 물이 흐르는 것처럼 그렇게. 

지금은 문명이 더 발전하고 속도가 더욱 빨라져서 편지를 쓰고 주고받고 하는 사람들이 아예 없지는 않을지라도, 내 주위에 그런 사람들은 없는 것 같다.      


어떤 이벤트용 행사로 편지를 보낼지는 모르겠지만 손으로 또박또박 펜글씨로 써서 편지를 보내고 답장을 받는 일은 이제 추억 저편으로 사라져 버린 것은 아닌가 생각하니 왠지 아쉽고 씁쓸한 기분이 든다.      

 

예전 학창 시절에 편지를 주고받았을 때, 답장을 받았던 편지들 중에서 내가 보관하고 있는 수십 통의 편지는 한 종이봉투에 담겨서 책장 한 구석에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누구 하나 관심을 두지 않은 채 한 구석에서 먼지만 쌓인 채 그대로 있다. 

더 시간이 지나면 혹시나 볼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예전에 편지를 주고받았던 일이 거짓이 아니라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으로서의 역할만 하고 있다.   

   

한 자 한 자 내 손으로 글씨를 써 내려가던 그때의 추억들이 불현듯 떠오르며 가끔은 편지를 쓰지 않더라도 빈 종이에다가 내 손으로 직접 글씨를 써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글씨를 쓰지 않다 보니 글씨체가 점점 보기 좋지 않게 변해가는 것 같다.      


스마트폰이다, 노트북이다, 전자기기다 해서 손으로 글씨를 쓸 일이 점점 없어지는 요즘에, 예전에 글씨체를 보면 그 사람 마음씨를 알 수 있다고 했는데 아직도 그 말이 유효할까 싶은 생각이 든다. 

갑자기 펜이나 연필을 꺼내어 들고 직접 손으로 한 자 한 자 글이 쓰고 싶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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