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대비로 책

시즌5-030

by 배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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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휴가 시작하니 나도 나름 휴일에 대한 대비를 해야 했다. 긴 연휴 동안 별달리 특별한 일이 생기지 않을 것이고 그렇다면 놀 꺼리가 필요할 테니, 나는 그 놀 꺼리를 책으로 정했다.

카하.. 책이 좋다지만 굳이 휴일에 놀꺼리로 독서를 한다는 것은 좀 고리타분 한 것 같다.

허나 어쩌겠는가, 외출하기엔 날이 궂고, 술자리는 적성에 안 맞고, 지인들과의 대화는 재미있지만 내리 5일을 함께 할 수는 없는 터, 그래서 책이 적당했다.






2


구석에 처박아둬도 말없이 기다릴 줄을 알고, 혼자 가만히 생각하고 있을 때 방해하지 않고, 오직 내가 능동성을 가지고 책장을 넘길 때 그제서야 떠들썩 말할 줄 아는 책들, 여러 권의 책들이 모여 있다가 그중 한 권이 선택되어도 책들은 질투하지 않는 데다가, 그저 자신만의 개성으로 어필하려고 묵묵히 대기하고 있을 뿐이어서 나는 책이 편하다.





3


열렬한 독서광이라던가 활자 중독자라던가... 그런 것과 거리가 멀다. 빨리 읽지도 못하고, 많이 읽지도 못하고, 넓게 읽지도, 깊이 읽지도 못한다.

그럼에도 뻔질나게 책을 대여하는 이유는 독서가 사람을 만든다는 속설, 아니 아마도 진실 때문이다. 그런 이유가 없었다면 내가 왜 책을 읽겠나 싶다.

나는 독서 자체가 즐거워서 읽는 사람이 아니라, 뭔가 얻을 게 없나 살피면서 꾸역꾸역 힘들게 읽어가는 사람이니 이득이 없었다면 안 읽었을 것이다.





4


너는 독서를 좋아하느냐?


예.


왜 좋아하느냐?


읽다 보면 언젠가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서요.

게다가 책 읽는 사람이 성공도 한다잖아요.


네 이놈! 독서에의 의지가 순수하지 않구나! 네 독서력을 꺾어놓겠다.


꺾으세요. 성공에의 의지가 다시 세워놓을걸요.







5


아마도 나는 독서의 신과 언쟁을 벌였나 보다. 그래서 그분이 내 독서력을 꺾어놓았나 보다.

예전과 달리 현격하게 독서량이 줄어들었다.







6


좋은 사람이 되는 성공, 행복한 사람이 되는 성공, 사랑받는 사람이 되는 성공, 건강하게 사는 성공 등등.

많은 종류의 성공이 있다. 나는 굳이 '돈 많이 버는 성공'을 빼놓지는 않겠다.

그렇다 해도 '성공'이라는 것을 너무 세속적으로 해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주변의 기분 좋은 작은 일들이 모두 성공이다.







7


오늘 식탁에 마늘쫑이 나왔다.

예전에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을 때 친구가 내게 마늘쫑을 먹어보라고 권했다.

집에서 어머니가 가끔 반찬으로 올려놓으시긴 했지만 나는 마늘쫑을 먹지 않았다.

그냥 풀줄기 같은 것이 맛없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때까지 한 번도 마늘쫑을 먹지 않았었다.

예전 어느 날 식당에서 나온 그 마늘쫑도 본체만체 안 먹고 다른 반찬을 먹고 있었는데 친구가 먹어보라고 권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안 먹겠다고 했는데 친구는 계속 여러 번을 권했다. 먹기 싫은 마음보다 귀찮은 마음이 커져서 '그냥 한 번 먹어주고 말자.',라는 생각으로 한 젓가락을 집어먹었다.

생각 외의 맛이었다. 짭짤하고 고소한 게 꽤 맛있었다. 남은 밥을 그 마늘쫑을 반찬 삼아 비웠다.

나는 친구에게 말했다.

"이제 마늘쫑 먹으면 네 생각 날 것 같아."

"왜?"

"안 먹는다고 그렇게 거절을 했는데 끝까지 먹으라고 해서... 그래서 맛있는 반찬을 발견한 거라.... 네 생각 날 것 같아."

그 친구가 풋 웃은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내가 한동안 옛 기억을 잃어버려서.....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 이야기인데 오늘 마늘쫑을 보니 어렴풋이 옛 기억이 떠올랐다. 내 식성의 범위를 넓혀준 친구는 잘 살고 있을까?








8


성공이라는 걸 크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나는 기억의 한자락을 찾아낸 것으로도 성취감을 느낀다.

다이어리 일일 페이지에 일과를 적는 것에도 성취감을 느낀다.

책나래 신청한 책 4권을 무사히 대여해 온 것으로도 약간의 성취감을 느낀다.

아마 책 한 권을 완독하면 그 나름의 성취감을 느낄 것이다.

즐거워서 읽지는 않을망정, 읽고 난 뒤 성취감을 느낀다는 것은 좀 희한한가? 여하튼 나는 그렇다.

작은 성취감도 느끼고, 좋은 사람도 되고, 성공도 하고..... 나는 그 모든 것을 이룰 셈으로 독서를 한다.

그래서 독서의 신이 꺾어놓은 독서력을 성공에의 의지로 일으켜 세우고 말 테다, 암.

사실, 성공 의지가 순수하지 못할 것은 뭔가.

책 측에서도 '나를 읽고 성공한 10대 인물', 이런 거 발표하면 좋은 거 아닌가?





9


머릿속이 번잡하다.

기억과 계획과 이 순간이 모두 얽혀 돌아간다.

지식과 상상과 현실이 섞여서 뒤죽박죽이다.





10


무술년이다.

새해가 시작되는데 머릿속이 뭐 이리 엉망진창인지 모르겠다.

연휴 대비로 책 빌렸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삼천포로 빠진 느낌이지만 수정하지는 않겠다.

자잘자잘 스토리의 묘미는 자잘한 이야기가 자잘하게 늘어놓이는 것이니까.





11


모쪼록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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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생은 실험이다. 더 많이 실험할수록 더 나아진다.

-랄프 왈도 에머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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