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5-031
1
어머니가 국수를 만들어주신 날이었다.
어머니는 먹음직스럽고 풍성하게 그릇에 국수를 담아 육수를 끼얹어 주셨다.
어머니의 김치국물국수는 정말 맛있어서 내가 좋아한다.
아버지, 어머니, 나 이렇게 국수 그릇을 앞에 두고 먹으려는 즈음에 아버지가 그러신다.
"얘(져니) 없을 때 먹을 껄, 아니면 잘 때 먹을껄"
"얘는 쫌 만 주지."
"우리(부모님)끼리만 먹었어야 하는데...."
나는 별생각이 없이 국수를 먹었다.
2
저번에 고기 먹을 때에 7점의 고기가 남자, 아버지는 "내가 먹어야겠다. 너는 요것만(2점) 먹어라. 내가 이만큼(5점)을 먹겠다."라고 하시며 웃으셨다.
말로는 그렇게 말씀하시고 실제로는 고기 7점을 다 내가 먹게 두셨다.
아버지는 그렇게 늘 나를 먹을 것으로 놀리셨다.
3
국수 먹을 때, 아버지가 1번에서와 같은 말씀을 하시는데 나는 별생각 없이 국수를 후루룩 맛있게 먹느라 정신이 없었다. 어머니가 갑자기 나를 보고 웃으셨다.
"왜 웃어요?"
어머니는 계속 웃으시면서 "아빠가 계속 괄시하는데 니 얼굴에 별 반응이 없어서..."라고 말씀하시며 또 웃으셨다.
4
순간 나도 웃음이 나기 시작했다.
5
어릴 적이면 아버지의 그런 말씀이 섭섭하고 기죽고 눈치 보게 만들었겠지만, 나는 이제 성인, 아버지의 그러한 말씀에 동요조차 하지 않는다. 어차피 말로만 그러시지, 그간 나를 빼놓고 먹으시거나, 조금만 주신다거나.. 그런 일이 전혀 없었던 것을 아니까.
어머니는 내가 머리가 커져버린 나머지 이젠 작은 놀림이 통하지 않아서, 그래서 놀리는 데에 허탕치시는 아버지 모습이 재미있어서 웃으신 것 같다.
6
나는 행복해서 웃었다.
나는 아버지가 저렇게 기죽게 하는 말씀을 하셔도 아랑곳하지 않는 나를, 또 아버지의 섭섭한 말씀을 눈곱만치도 신경 쓰지 않는 나를 알아차렸다. 내 안에, 아버지의 그런 말씀들이 눈치 주시려는 게 "절대적으로 확실하게" 아니라는 믿음이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나는 먹을 것으로 구박이나 받을 미운 딸이 아니라는 확신 같은 것이었다.
7
같은 상황을 두고, 어머니는 재미있으셔서 웃고, 나는 행복해서 웃고, 아버지는 두 여자가 너무 심하게 웃으니까 어리둥절하신 채로 바라보셨다.
8
국수는 맛있었다. 위장도 마음도 든든해진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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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은 천천히 움직이므로 가난이 곧 따라잡는다.
-벤자민 프랭클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