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6-048
1
어머니께서 작은 어항 하나를 들고 오셨다.
어항 안에는 1~3cm 정도 되는 물고기들이 바글바글했다.
어디서 가져오신 것이냐고 여쭙자,
"000 여사가 전부터 가져가라고 계속 그랬는데 안 가져간다고 했었어.
근데 물고기가 알을 낳아 번식을 해서 많아졌다며 또 가져가라는 거야.
우리 예전에 금붕어 키워봤지만 물 갈아주는 게 얼마나 번거로웠니.
그래서 한사코 마다했는데 이렇게 챙겨서 가져가라고 하지 뭐니."
그래서 다시 찬찬하게 살펴보았다. 작은 물고기가 25~35마리쯤 있는 것 같았다.
자세히 살펴보니 수초도 넣어줬고 바닥에 작은 자갈도 깔려있었으며 콩알만 한 우렁이도 있었다.
어머니의 말씀은 계속되었다.
"옛날 우리가 키우던 건 7~8cm 정도였고 거기에 어항도 70cm 정도 되는 거라 물갈이하는 게 일이었는데,
이 구피는 작고, 어항도 작아서 물갈이가 어렵지 않다는구나.
캐리카 끌고 간 참이라서 어항을 들고 올 손도 모자라다니까 그이가 집 앞까지 들어다 주지 뭐니.
이게 그 집 물고기 1/4을 덜어줘서 가져온 거야. 그 집에는 아직도 더 많아."
다시 한번 주의 깊게 살펴보니 어항이라고 생각한 원통 유리에는 입구 쪽에 뚜껑을 돌려닫을 수 있는 나선 홈이 있었다.
그 병을 돌려서 확인해보니 "000 꿀"이라는 상표가 달려있었다.
2
어항이 생겨서 나는 너무 기분이 좋았다.
공기 펌프를 넣어주지 않으면 물고기들이 곧 죽지 않나요?라고 묻자 어머니 왈.
"그 집도 공기 펌프 없이 그렇게 번식까지 했다는구나. "
어머님의 말씀을 듣고 속으로 생각했다.
팍 죽어버리면 속상할 것 같은데, 오래 살아서 번식까지 한다면.. 그렇다면 정붙여도 될까?
3
오늘로서 우리 집에 입성한지 3일째, 구피 녀석들은 사람이라는 존재가 익숙하고 편한가 보다.
아침에 일어나서 잘 살아있나 살피러 어항 앞에 가면, 갑자기 녀석들이 떼로 몰려와서 수면 위로 입을 뻐끔거리고 난리도 아니다.
소리 없는 아우성이라는 게 이런 걸까?
000 여사님이 어항과 함께 얼마간 덜어서 챙겨줬다던 먹이를 일부 수면 위에 뿌려줬더니, 녀석들, 정신없이 수면 위를 탐색한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밥을 주는 존재라는 걸 아는 모양이다.
그래서 어머니가 가까이 다가가시든, 아버지가 가까이 가시든 녀석들은 온몸이 꼬리가 된 듯 흔들어 젖힌다.
아버지는 물으셨다.
"얘네 밥 안 줬냐?"
"줬어요."
"밥 줬는데 왜 이러냐?"
그러게요. 나보다 옛 주인분이 밥을 더 두둑이 주셨나?
4
3일째 구피 녀석들을 관찰한 결과, 녀석들의 흔들어 젖히는 춤은 습관성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배가 고프던 아니던, 일단 사람이 나타나면 떼로 몰려와 춤을 춘다.
어항 안을 유유자적 유영하는 물고기들의 모습을 보고 싶어서 슬며시 다가가지만 너무 몰려와 춤을 추니,
수질과 건강을 위해 밥을 더 줄 수 없는 입장인 져니는 녀석들의 떼춤이 부담스럽기만 하다.
녀석들의 혼연일체의 몸짓이 자꾸 "밥 줘요. 밥!"하는 소리 같아서 마음이 약해진다.
이런, 내가 이미 구피 녀석들에게 마음을 빼앗겼나?
녀석들... 죽지 않고 오래 살아서 번식까지 한다면...
그렇다면 정붙여도 될까?
흠흠. 아무튼 그렇다 할지라도 녀석들아, 밥은 하루에 한 번만 줄 거다.
--------------------------------------------------------
동물은 서로를 미워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런 동물보다는 나아야 한다.
-엘비스 프레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