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잘스토리 7 - 013 -뭘 할 때 즐거워?-커피 편

by 배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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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처럼 열성적으로 매일 내리지는 않지만 나는 커피 내려서 마시는 것을 좋아한다.

맨 처음에는 믹스커피보다 맛있다길래 핸드드립을 배웠다.

핸드드립 수업에서 만난 수강생은 커피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집에 가면 바로 배운 대로 드립 해서 2인 분량의 커피를 그날 혼자 다 마신다고 했다.

나로서는 이해가 안 갔다. 믹스커피처럼 달달한 커피를 마시다 온 나에게 드립 커피는 상당히 진한 원액이었다.

아니라는 것을 알기는 했지만 드립 커피 원액이 에스프레소만큼이나 진하고 쓰게 느껴졌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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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드립을 막 배우고 나서는 신이 나서 매일같이 커피를 내렸다.

그때는 그라인더도 수동형이라서 열심히 땀방울 흘리며 콩을 갈았다.

입자감 있는 커피를 필터에 쏟아붓고 준비한 더운물을 주둥이 긴 포트에 넣어 슬며시 흘려보내 알갱이들을 부풀리고 뜸을 들이는 그 순서들이 너무 즐거웠다.

이 과정에서 커피 향이 진하게 흘러나오는데 나는 되도록이면 향기가 날아가지 않도록 베란다 문들을 닫고, 혹은 되도록이면 부모님이 계시는 시간에 핸드드립을 했다, 그 좋은 향기가 사라지는 것이, 그리고 나만 맡기엔 아쉬워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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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 분량의 드립 커피를 다섯 번에 걸쳐 희석해 마셨었는데 이제는 2번에 걸쳐 희석해 마신다.

지금은 원액을 마셔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입맛이 드립 커피에 길들여졌다.

비로소 그 수강생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정말 맛있어서 네댓 잔은 무리가 없겠더라.


여름이 되어도 뜨거운 물을 부어내리는 드립 커피가 싫어지지 않았다.

비록 그 여름에 수동 그라인더를 돌리다 보면 등줄기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지만,

일단 순서를 거쳐 커피를 내리면 그러면 모든 게... 그냥, 끝내주게 끝이다.

얼음을 잔뜩 넣어 그 친숙한 아. 아를 마시는 즐거움. 아아... 아. 아. 아아~.

원두를 바로 갈아 막 내리니 향이 진하고 깊었으며, 맛있다는 느낌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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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약간의 권태기가 왔다. 신선하고 진하고... 좋다, 좋지. 하지만 힘이 들었다.

고작 40g을 분쇄하는데 수동형 그라인더를 너무 여러 번 돌려야 했다.

등줄기의 땀이 낭만적이었는데 어느새 노동이라는 느낌이 들어서 하기 싫어졌다.

하지만 커피는 마시고 싶으니, 나는 노동을 해야 했고 번번이 힘들어서 한숨이 쉬어졌다.

체력 최하급, 팔근육 없음, 힘드니까 기분 상태 수시로 변함....

이러한 것들을 참다못해 질렀다, 전기 그라인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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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기분 상태가 상쾌해지고 즐거워졌다.

원두를 편하게 많이 분쇄할 수 있으니 이것저것 여러 잔을 만들어 볼 수도 있었다.


이것을 계기로 좀 더 재료를 구비해서 라테를 만들기 시작했다.

핸드드립은 오프라인 수업을 들어서 배웠지만 라테 제조는 유튜브 영상으로 습득했다.

이제 간단한 라테 정도는 문제없이 만든다.

이 이상의 고급 기술을 원하지 않는다.

나는 많은 날들, 아메리카노를 마실 것이고, 살짝 추운 날이나 허기가 질 때 달달한 라테를 만들어 마실 뿐일 것이다.

그라인더를 수백 번 돌리지 않아도 되는 이상, 커피 내리는 절차는 여전히 낭만적이고 소소한 재미가 있다.

모카포트도 이용한다. 모카포트는 끓기를 기다리는 조바심이 재미있게 느껴지고,

과정과 맛에 있어서 핸드드립은 아날로그적이며 묘한 향취가 있어서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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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믹스커피보다 좀 더 맛있는 커피를 마시겠다고 배운 핸드드립이 결과적으로 삶의 요소를 좀 바꾸어놓았다.

그게 나는 싫지 않고, 외려 좋으며 기쁘다.

맛도 좋지만 만드는 단계가 재미있다. 그 과정 자체가 문화적인지라, 나는 원두를 구입하면 지출 분류 항목에 '문화비'라고 적는다.


커피는 문화적이어서 좋다. 그래서 나는 커피 내려 마실 때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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