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해가 지나고 달이 바뀐지도 4번.
마음이 바쁜데 막상 해놓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면
마음이 바빠지는 게 아니라 조급해져서 진땀마저 나게 된다.
2
서서히 컨디션과 속도를 찾을 줄 알았는데,
어쩐지 점점 힘도 빠지고 느려져서 쳐지는 기분이다.
그에 대해 할 말은 있다.
새 작업에 대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배워가는 중이었고
그 와중에도 기존 작업은 계속하고 있었으며
새로운 학습처도 찾아서 단정히 수강하고 있었음은 물론이고,
여러 가지 다른 모색까지 하느라
집중해야 할 힘이 분산되어 그런 거라고....
-비겁한 변명입니다. 그냥 산만한 거 아닙니까?-
...라고 내면의 목소리가 날 꾸짖는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집중력이 분산되어 어느 정도 산만해졌던 것을 인정한다.
3
아는 게 병,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이 있다.
이번 경우, 새로 알게 된 정보는 병이었다.
그 정보에 대한 실행을 하고자 작전을 구상하고 기반을 만드느라
무려 4일을 소비했다.
잠시 잠깐 정보에 홀려서 수여 일을 열 일 하다가 생각해 보니,
하려는 일이, 전에는 내가 염두에 두지 않았을 일들이었다.
돈을 벌 수 있다니까, 내가 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해 볼만 하니까,
그래서 준비해 보다가 문득 의문이 든 것이다.
할 수는 있겠는데, 꼭 해야 한다면 하긴 하겠는데,
다시 일을 한다면 즐겁게 할 수 있는 일로 돈을 벌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려고 투자한 시간과 노력이 있는데 그걸 외면하고
쉽게 벌 수 있다는 유혹에 넘어가서,
사실 또 쉽게 벌 수 있다고 장담도 못하는 분야에 홀려서,
기어이, 굳이, 반드시, 꼭, 이번 일을 해야 하는 걸까?
4
여러 가지 일을 해내는 사람들이 존경스럽다.
나는 전화받으면서 낙서하는 것도 잘 못한다.
멀티태스킹이 안되고 일에 대해서도 동시다발적 진행이 잘 안된다.
모르는 게 약이었을 정보를, 이제 잊어서 모르는 정보로 변환해야겠다.
오랜 기간에 걸쳐 숙지한 정보는 버려도 괜찮은데,
준비한 파일들과 만든 일러스트 파일이 아까워 재활용하고 싶을 따름이다.
아우, 일러스트 파일을 꽤 공들여 만들었는데.... 아까울 뿐.
5
일상을 소박하게 두 세가지 업무로 간소화 할 생각이다.
그렇게 '두 세가지'라고 단순하게 통칭해도,
각각의 작업은 세분화하면 엄청나게 나누어지게 된다.
한 박자를 나누려고만 하면 2박자, 8박자, 16박자는 물론,
32박자 이상으로 나눌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세분화하려고만 하면 한없이 나누어진다.
멀티태스킹이 안되는 내가 32가지 업무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인식하게 되면....난... 죽는다, 피곤해서.
6
그저 두 세가지 작업을 하겠다고 마음 먹는다.
왠지... 비장해지고 만다.
역시 나는 알고 있는 것이다.
그 두 세가지 작업이 32가지 세부 업무 덩어리라는 걸.
이렇게 한없이 힘들어지고 투쟁적이게 되는 마음을 다스리려면?
...음... 뭘 먹는 게 좋겠다. 과자가 어딨더라~?
7
통칭 '두 세 가지 작업'이 너무 가짓수가 많고 어렵게 여겨지다 보니
겉보기에 해 볼 만한, 좀 쉬워 보이는 한 가지 작업으로 전향하려 했다.
보기에 그럴싸한, 달콤한 정보에 마음을 빼앗겨
갓길로 완전히 새어버릴 뻔 했지 뭔가.
많은 것을 하려고 하지 말고
오늘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것들에서 최대한을 행하려 해야겠다.
그리고 생각보다 나는, 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방황하지 말고 방향을 잘 잡아가며 나아가되,
심사가 괴롭고 신경이 예민해질 때엔 잠시 멈추자.
그런 다음, 당분을 섭취하자. 과자가 어딨더라?
8
마음이 조급해서 몸이 앞으로 쏠릴 때,
움직이는 대로 나아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
나의 경우엔, 병 같은 정보와 바쁜 마음에 내맡겨져 하릴없이 움직이기보다
무게 중심을 낮추고 천천히 움직여야 한다.
진중하게 한 발 한 발 딛고 나아가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나의 경우엔 그렇단 의미이다.
지금은 한 걸음 한 발자국, 찾으러 가려 한다, 나의 경우엔,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그 무엇과 못지않게 이 순간 중요한... 과자를.
장담은 못하지만 아마, 나는 둘 다 찾을 것이다.
아무렴.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