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머니께서 양념 게장을 만드셨는데,
어머니 왈,
"니 아빠는 요즘엔 게장을 안 좋아해,
너 먹으라고 만든 거야."
...라고 하셔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전에 아버지가 간장 게장 잘 드시는 걸 봤는데 말이다.
어느 날 아버지와 점심을 차려 먹으면서 아버지께,
게장 안 좋아하시냐고 여쭸다.
"게장 먹으면 (게살) 나오는 건 얼마 없고,
또 나는 집게발만 먹어야 하니 딱딱해서 먹기도 번거로워.
맛이야 있지."
...라고 하신다.
그러니까 내가 살점 가득한 부분을 우선적으로 집어 드는 것과 달리,
아버지는 인기 없는 집게발을 희생정신(?)으로 집어 드시다가
건치도 좀 약해지셨고, 살점보다 버리는 껍데기가 더 많고...
영 그런 상황이 마음에 차지 않으셨나 보다.
어쩐지...
전에 간장 게장을 잘 드시던 걸 기억하는데 말이다,
양념 게장이라서 안 드시는 줄 알았지 뭔가.
나도 치아가 아주 튼튼한 편은 아니어서
게장의 집게발은 가끔 의무적으로 집어 들어
그래도 가장 튼튼한 어금니로 깨물어 겨우 발라먹곤 했다.
그러다가 가끔 깨진 게 껍데기에 혀가 찔려거나 살짝 베여서
쓰라리고 따끔하고... 그러하다 보니,
도저히 안되겠기에 어머니께
"게장의 집게발은 모아서 찌개 끓일 때 사용하는 게 어떠하심니?"
...라고 건의, 우리 집 셰프님께서 받아들이셨다.
조만간 게발 찌개를 먹게 될 것 같다.
2
며칠 전에 아버지께서 들으시면, 싫어하실 만한 직언을 했다.
아버지는 허허 웃으시며 농담으로 받아치셨지만,
나는 정색하고 농담을 받아들이지 않고, 다시 직언했다.
근데, 그러고 나서 좀 후에, 나도 좀 죄송하기는 했기에 마음이 쓰였다.
그래서 다음날,
"식사하셨어요?", "원두커피 드실래요?",
"간식 드실래요?".... 등등 갖은 관심 표현을 드렸다.
한낮이 좀 지나서 안방에 다시 가보니,
마침 오수에 드시려는 아버지에게
"이불 덮어드릴까요?"라고 여쭈니,
아버지는 졸음 가득한 눈을 감으시며 고개를 저으시길래,
'아싸! 무방비 상태이시다!
방어도, 공격도 못하신다면?!'
...라고 생각되자, 조그마한 소리로, 그러나 또렷하게,
"아부지 사랑해."
...라고 말하고는 얼른 안방을 나왔다.
그 후는 어떻게 되었느냐고?
지금 내가 이 글을 쓰는 와중에,
아버지께서 내 방문을 두세 번 슬쩍슬쩍 열어
나의 상황을 보시더니, 그다음 방문을 여실 때엔
쓱, 간식을 두 개를 건네주시고 가셨다.
우리 아버지이시지만,
아직 유머감각 건재하시고, 직언에 격분하지 않으시고,
유연한 정신에, 사랑까지 많으시니,
여전히 젊으신 것 같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내가 그렇게 정색할 일은 아니었는데,
너무 날이 서지 않았었나 반성한다.
그래도 아무튼 결론은 부녀간의 꽁냥꽁냥,
한때의 에피소드로 정리되었다.
3
작년 추석 연휴 즈음과 올 설 연휴 기간...
정신적 파문이 너무 심하게 일어나는 사건들이 있어서...
거의 일상이 마비되었다... 는 것은 거짓말.
원래 명절 연휴는 일상과는 좀 다른 날이니까...
거의 일상들과 다른 날이었다...는 게 참말.
그러나 아무튼 심리적 동요가 많이 되는 날들인 건 분명했다.
다시금 새해를 맞이했으니,
내 외면 다시 재정비하고, 발 디뎌 나아가야겠다.(디딤 발은 왼발이 먼저.)
모든 이들에게 싱그러운 첫발 디딤이 있길 기원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