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제오늘 아버지가 내 방과 안방 사이를 자주 오가셨다.
아버지는 탁주에 홍어를 드시고 싶어 하신다.
전에 홍어 회(초고추장 들입) 낱개 포장 10개를 구입해서
늦은 오후쯤에 가끔 개봉하고 드셨는데,
삭혀진 정도가 내 입맛에도 알맞아서,
아버지는 막걸리를, 나는 콜라를 두고 나누어 시식했다.
물론 아버지는 탁주에 안주 삼아 홍어를 드셨고,
나는 주전부리로 홍어를 먹고 입가심으로 콜라를 먹었다는 게 차이랄까.
2
그 간식거리가 다 소진되어서 다시 안주로 마련해놓고 싶으신
아버지께서 다시 그 상품을 구입하라고 명을 내리셨으나,
이미 내가 알아봤지만 품절이었다.
아버지는 연휴 전에 샀던 곶감도 알아보라고 하셨다.
그것도 이미 내가 알아봤으나 품절이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런 사정을 모르시니 컴을 켜고 웹창을 열어
품절 표시를 보여드렸다.
어라?
근데 곶감은 그 상품이 다시 나왔더라.
아버지가 4상자를 사라고 하셔서... 응?
"네(4) 상.. 자요?"
"엄마도 너도 잘 먹잖아. 네 상자 사.홍어도 봐봐.."
아휴, 참, 우리 아부지... 말끝에 여운을 좀 두셨으면,
처자식 사랑하는 낭만적 아버지로 격상되실 터인데,
바로 ".. 상자 사홍어도 봐봐"...
감동할 틈을 안 주신다. 약간 낭만적이시진 않다.
사실 아버지의 티끌이라기 보다, 아버지에 대한 나의 로망이 컸을 뿐,
아버지는 가족에게 제공할 수 있는 것들을
최선을 다해 내어 주시고 계심을 알고 있다.
자기 비하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나는 참 못났다.
음... 많이 못나진 않았으나 스스로 부족함을 안다.
여하간 스스로 부족하고 특출난 게 없다는 걸 아는데,
부모님께선 그냥... 자식이라는 이유로
이렇게 사랑해 주시니... 그래서 이렇게 안온한 생활을 하고 있으니...
전생에 나는 나라를 구했고,
전생에 나라를 구한 나를, 둥가 둥가 여전히 이뻐하시는 것 보면,
내가 구한 나라가 부모님의 나라였나 보다.
울 부모님, 황제, 황후... 후후후.
어라? 나라 구한 공은 보통 장군이 갖던데, 나... 전생에 남자였어?
3
아닐 거다. 어제 구입한 액세서리가 도착했을 때, 내가 얼마나 좋아했는데!
여자가 아니면 좋아할 수 없는 포인트 아닌가?
근데 액세서리, 그게 쫌 비싼 거라, 어머니께 말씀드려놨다.
"어무니, 아부지가 혹시 나 이거 착용한 거 보시고 '그건 언제 샀냐?'라고 하시면
어무니가 옆에서 '언제 적부터 하고 있던 걸 그러시우~'라고 말씀해 줘요, 네?"
내가 이렇게 마음이 조마조마해 하는 여린 심성인데...
흠... 근데...
자꾸 이쁜 거, 갖고 싶은 걸 사들이는 거 보면....
가벼운 통장을 소유한 자로서 담력이... 대장군의 담력이 있는걸?
4
어제는 그렇게 곶감을 샀고,
오늘은 홍어를 사려고 많이 살펴봤지만 마땅한 게 없다.
오늘 검색창을 좌르륵 보여드리니,
아버지께서도 중량 대비 가격이 너무 차이가 크다는 걸 확인하시고,
그럴 바엔 아예 노량진에서 박스째 배달 주문하시겠단다.
....음 그럼 나는... 입가심 콜라를 주문해야 하나?
라이트급 통장 소유주는 대장군의 용기를 발휘하야 콜라를 주문하랴??
...버그 걸렸다.
5
액세서리는 아직 안 걸렸다.
어무니 섭외를 잘 해야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