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잘 스토리 9 - 004 - 민감하다는 것은 장점

by 배져니






1


민감하다는 것은 장점이 아닐까 싶다.

같은 정보를 접해도 그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해석의 요인들을 더 많이 발견하는 민감성을 가진 것이니 말이다.

물론 너무 많이 발견하게 되면 뇌의 작동량이 많아지므로 피곤하긴 할 것이다.

남보다 힘이 세도 칭찬 거리가 되고, 남보다 아는 게 많아도 부러움의 대상이 되며,

심지어 엄청 많이 먹을 수 있는 식사량이 찬탄의 시선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러니 남보다 많은 정보량을 캐치하는 민감함은 좋은 것이라고 본다.

어느 특성이나 장단점이 있지만, 민감하다는 것은 제대로 다루기만 하면 정말 우쭐해도 될, 좋은 특성이라고 생각한다.




2


때때로 그 민감성을,


"너 왜 이렇게 예민하게 굴어?"


...라고 면박 주는 자가 있다.

민감성으로 찾아낸 부조리함을 비판하려 하면, 불리한 자들이 저런 말을 사용한다.

민감한 자들을 압제하느라 쓰는 말이라고 하겠다.

민감한 자들은 상처받기가 쉬워서 저런 말에 '내가 정말 너무 예민하게 구는 건가?'... 하고 의기소침해지기 일쑤이다.

하지만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말하는 자가 진정 그렇게 생각하고 말한다면, 그 사람 자신이,


'왜 예민하게 그래? 나는 모르겠는걸, 나는 당최 무뎌서... 난 그런 걸 알 수 없는 똥이야...'


...라고, 다름 아닌 고백임을 말이다.

혹시 정말 알고도 그런다면?

짚어내어 말하는 부조리함을 모르는 게 아니고, 알고도 의도적으로 면박을 준다면?

큰일이다, 그 사람을 멀리해야 한다, 그는 당신에게 백퍼 나쁜 사람이다.




3


그렇다고 무조건,


'나보고 예민하다고? 저놈 똥이군.'


...이라고만 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성향도 잘 살펴봐야 한다.

사회에서 여러 상황을 겪으면서, 내가 부조리함을 발견하는 민감한 사람인지,

아니면 그냥 다 반대하고 싶어 하는 투덜이 스머프인지,

스스로를 알아차려야 한다, 그래서 살아온 경험, 사회경험이 필요하다.




4


시샘 많은 사람도 만나봤고, 불평 많은 사람도 만나봤고, 더 일찍이 똥 같은 사람도 겪었다.

나는 내가 소심하고 예민하고 게으르게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런저런 경험을 토대로 최종 진단 내려본 결과,

잠이 많을 뿐 게으르지 않고, 예민하기 보다 민감성이 높다고 볼 수 있으며,

예민하다고 해서 소심해졌었지만 이제는 덜 소심한 편이 되어도 괜찮을 것 같다.

집순이라서 데이터가 모이는 데에 시간이 걸렸다.

사회경험이 풍부해서 데이터가 많았으면, 점검이나 진단이 더 빠르고 정확했을 터이지만,

살아온 경험들로 대체해서 데이터양을 채우고 결과의 신빙성을 높였다.

자기 진단, 자아성찰은 한순간에 결정되고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보니,

삶이 지속되는 동안 데이터와 진단 결과는 누적되고 갱신되어야 할 것이다.

수십 년을 살면서 여러 번 갱신해서 생각해 봐도,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나는 민감성 높은 좋은 사람이다.




5


평생을 살아도 '내가 누구'인지는 알기 힘들다.

사람은 숨이 멎는 순간, 꼴까닥 하기 직전, 죽음을 앞두고

잠시 잠깐 한순간 찰나에 뭔가를 깨닫는다고 한다.


그냥 생각하기엔, '대자연의 섭리, 순리' 같은 것이 통째로 느껴지는 게 아닐까, 추측만 해본다.

아니면 '세상에 대한 큰 사랑'같은 게 느껴지지 않을까? 적어도 죽어가면서 앙심을 간직한 채,


'나한테 예민하다고 했던 놈, 걔 언제 죽나?'


...라는 걸 궁금해하지는 않을 것 같다.

사람은 숭고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인생의 말로가 세상의 사랑과 이치를 알게 되며 끝이 난다면,

그건 참 아름다운 것이고, 그게 진정 세상사의 미학이라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나이 들어 죽기 전까지, 세상에 대한 사랑, 인간애,

아름답지 않은 자들에 대한 연민,

불완전한 것들에 대한 수용, 악한 것들에 대한 이해...

그러한 것들로 채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굳이, 죽을 때 '걔 언제 죽나?'할 거 아니라면,

그렇게 사무치지 않는다면, 생애를 조금은 건전하게 살려고 해야 하지 않을까?




6


지금 나는 나의 생애를 한 바퀴 되짚어보고 돌아왔다.

나의 민감성은 상처와 혼돈과 부조리함을 느끼는 경험들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 사랑과 호의와 예의, 올바름도 있었음을 인지한다.


한 가지 상황을 다각도로 볼 수 있는 이 민감성이 나는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왜 그렇게 예민하게 굴어?"


...라고 말했던 사람은 무딘 사람이 아니었고 나쁜 사람이었다.

그 나쁜 사람을, 축복받은 민감성을 지닌 내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생각해 본다.

역시 위에 언급한 것이 답이다.

불완전한 것들에 대한 수용.... 악한 것들에 대한 이해....


수용과 이해... 생판 남도 수용과 이해가 어려운데,

나쁜 사람을 수용하고 이해해야 하나 회의가 들지만, 해봐야겠다.

뭐... 용서와는 또 다른 영역이니까 우선 해봐야지.


민감성 높은 사람이 성불한다...라는 선례를 남기고 싶다.




-끝-






매거진의 이전글자잘 스토리 9 - 003 - 뜻밖의 조언으로 셀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