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잘 스토리 9 - 013 - 나은 쪽

by 배져니






1


오랜만에 앓았다.


상온에 하루 둔 음식을 먹었더니,

상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살짝 세균 번식이 활발히 되었었는지

먹고 나서 탈이 났다.


머리가 아프고 몸이 으슬으슬하고...

수십 년간 살아본 경험으로 이건 체한 것이 아니면

몸살 아니면, 가벼운 식중독의 증상이다.


의심 가는 정황이 있다 보니 삼자에 해당하겠다.

달리 구급약이 없어서 생수에 레몬즙을 다 마시고,

전기장판에 으슬한 몸을 데피고,

까무러치듯 자다가 깨다가를 반복했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보니 이틀이 지났고 그러다 보니,

찾아오지 못한 공문서와 관람 기한이 줄어들고 있는 전시 표와

마침표를 찍어야 할 이런저런 일을 해결하지 못했다.




2


자다 깨다 정신없는 와중에 꿈을 꿨다.


어린아이 몸통만 한 백수정 클러스터를 얻는 꿈이었다.

크기가 큰 것이다 보니 귀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클러스터 안의 수정 기둥들은 완전무결하게 투명하지는 않았으나

알 수 없는 이유로 귀하게 여겨지는 것이었고

그것은 갑작스레 떡하니 내 앞에 나타나

나의 것이 되었다.


힐링스톤 수집이 취미이라지만 가벼운 가격 내에서

작은 돌들을 구입하는 소소한 수집가이고

그렇다 보니 꿈에서 본 어린아이 몸통만 한 클러스터는

당장에는 내가 넘볼 수 없는 굉장한 고가의 돌인 것을 꿈에서도 알아봤다.

꿈에서 그것이 나의 것이 될 것임을 예감하는 순간

든 생각은 '너무 기쁘다.'보다는 '비쌀 텐데... 값을 얼마나 치러야 하나?'였다.

시장 경제에서 공짜가 어디 있겠는가, 다 오고 가고 주고받는 기브 앤 테이크이겠지...

근데 딱히 그걸 건네주는 사람이 없었다.

꿈속 화면 가득 수정이 보이는데 그 수정을 들고 있는 누군가의 손이 보였다.

그러다가 한순간에 누끼 딴 것처럼 수정만 덩그러니 떠있었고

소유주가 불분명하게 된 데다가, 또 주변에 아무도 없었으므로

내 것이 된 것이었다.




3


내가 해석한 꿈속의 백수정은 내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잊었고 잃었던 내 인생 기억이 내게 돌아오는 것이라 생각한다.

완전무결하게 투명하지 않다는 것은 완벽한 기억은 아니지만 현실성 있는 기억이란 의미로,

여전히 귀하고 가치 있는 수정 같은,

과거의 보석 같았던 내 인생 기억이 현재의 내게 와 안기는 것이라 생각한다.


기억의 완전성을 구하는 게 중요하다고 여겨서

수소문했지만 얻을 수 있는 것이 많이 없었다.

많이 괴로워했지만 이제 상관 없어졌다.

기억이 백 퍼센트 돌아오지는 않았지만 대체로 돌아왔고,

이제 연연하지 않고 내 인생을 사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이미 많이 회복된 기억인데 더 회복하겠다고 파고들다가는

신경쇠약 걸릴 것 같아서 어느 정도 포기하는 면도 있다.

뜻대로 되지 않는 건 얽히고설킨 인과의 설계도에 어긋나게 하지 않기 위한

큰 존재의 의도가 있을 것으로 짐작할 뿐이다.

그리고 그 존재가,


'너의 인생은 백수정 클러스터처럼 귀한 것이다'


...라고 신의 카톡, 꿈으로 메시지를 날려주신 것이리라.




4


빠르면 2주, 길면 2달 안에 뭔가 결정이 날 것 같다.

오늘의 내 컨디션으로는 최장 2달을 상정하지만,

현실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일들은

2 주면 가늠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늘 힘들었던 문제라서 2년 정도 집중해 본 건 후회가 되지 않는다.

이득이라면 기억을 찾기 위해 안 해보던 것들을 해 본 것인데,

바보 같은 행동도 있었지만, 그 바보 같았던 노력을 스스로 높이 평가한다.

평생 바보 같지 않으려고 노력해왔는데 자청해서 바보가 되어봤으니 말이다.


많은 것이 변할 것 같다.

항상 생각한다, 사람은 갑자기 변하면 죽는다, 고.


약한 식중독이긴 했으나 앓느라 자다 깨다 하다 보니

죽었다 살았다 한 것 같이 힘들었다.

이렇게 힘들 거면 사람 변하고 죽는 게 더 쉽겠다는 생각이다.

사람이 너무 심하게 앓으면 늙는다, 주름 생긴다.

변하는 게 두렵지 않고 앓는 게 두렵달까.


그러니 진화 방향으로의 변화라면 앓는 것보다 낫다고 본다.

변해야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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