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를 위한 바느질

시즌5-001

by 배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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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머니는 전에 동대문에서 사온 검은색의 천을 꺼내시고는 "내 셔츠를 만들어야겠다."라고 하셨다.

천을 사온 당시부터 최근까지, 계속 셔츠 본을 그려달라고 요청하셨지만 내가 게을러서 차일피일 미루자 어머니는 당신께서 직접 옷본을 그리고 재단을 하시겠다는 것이다. 어머니가 아가씨였던 그 옛날에 양재를 배우셨는데 너무 오래전 일이라 다 잊었지만 그래도 대략의 과정은 기억하고 있으시단다.


"너 없어도 만들 수 있어"라고 시크하게 토라지시며(?) 초크와 자를 가져가 요래저래 본을 그리시고 재단, 재봉을 하시더니 정말 칼라 달린 칠부 소매 셔츠를 떡하니 만들어 내셨다.







2


그대로 착용하실 수는 없었다. 셔츠이기 때문에 단추를 달아야 했다.

단추달기는 바늘에 실만 꿸 수 있으면 다 할 수 있다. 문제는 단춧구멍이었다.


단춧구멍은 완성하는 데에 시간이 걸린다. 옷감에 구멍을 작지도 크지도 않은 길이로 잘라야 하고, 올이 풀어지지 않게 박음질과 사슬 감침질도 할 줄 알아야 한다. 구멍의 위치도 잘 선정해야 하고 말이다. 깔끔하게 구멍을 만드는 것이 좀 어렵다.

어머니께서 그렇게 내 도움을 받지 않으시고 셔츠를 만들어내시니 나로서는 편하기는 했지만 좀 죄송했다.

애초에 옷 만들기 과정을 수강한 동기가 어머니의 옷을 만들어드리고 싶어서였는데, 막상 그렇게 해드리지 못했으니 말이다.


어머니는 내게 단춧구멍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하셨다. 검은 천에 검은 실로 바느질을 밤에 하려니 안 보인다고 말이다. 나는 일말의 죄책감을 씻고자 그러겠다고 순순히 응답했다.






3


그날 밤. 바느질을 시작했다.

'단추 지름' 더하기 '단추 두께'를 계산하여 나온 수치로 단춧구멍의 사이즈를 결정하고, 검은 천을 펼치고, 검은 실로 바느질하다가, 검은 쪽가위로 구멍을 뚫고, 검은 단추를 통과시켜 사이즈를 확인한 뒤, 다시 검은 실로 사슬 감침질을 했다.


정말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정성이 들어가는 과정이었다. 가정용 재봉틀에는 자동으로 단춧구멍 만들어주는 기능이 있어서 금방 만들겠지만, 그게 없는 나로서는 한 땀 한 땀, 이태리 장인과 같은 마음으로 한 땀 한 땀 꿰매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단춧구멍 5개를 만들고 나서 나는 기진맥진했다. 뭔가 거대한 존재에게 기를 빨린 느낌이었다. 진짜 열심히 하면 이렇게 힘든 건가 보다.


아무튼 한숨 돌리고 화장실에 가서 손을 씻으며 거울 속의 내 얼굴을 봤다.

너무 예뻐 보였다. 놀래서 다시 봤다. 정말 원래 모습보다 예뻐 보였다.

깜짝 놀라서 원인을 살펴보니 바느질이 이유였다.


어머니를 위한 마음으로 정성을 쏟고 난 뒤라 얼굴이 해맑아졌다....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려는 게 아니다.


검은 천과 검은 단추, 검은 실, 검은 쪽가위.. 온통 검은 것들에게 수십 분을 눈 두고 있다가 검은색보다 밝은 내 얼굴을 보니, 밝다 못해 환하게 광채가 뿜어져 나오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이유를 알지 못했을 때에는 잠깐동안 '효심으로 신성이 깃들어 내게 아우라가 생성된 건가'라고 생각했지 뭔가.

그냥 착시일 뿐이었는데......... 잠시 자체발광이라 생각했던 내가 부끄러워지는구나. ... 흑.








4


다음날, 어머니는 손수 만드신 그 검은색 옷감, 검은색 단추의 셔츠를 입고 외출하셨다.

작은 체구시라 맞는 옷이 얼마 없었는데 재단하여 만든 옷이라 잘 맞아서 무난하게 어울리셨다.


셔츠 만들기에 성공하신 울 어머니, 동대문에 천 사러 가자고 벌써부터 벼르고 계시다.

아무래도 셔츠를 더 만들고 싶으신가 보다. 아, 큰일이다. 단춧구멍을 계속 내가 해야 하나?

천 사러 가자고 하시면 아픈척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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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옷을 입고 있으면 누구나 기분이 좋아진다.


-찰스 디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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