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5-009
1
아버지, 어머니께서 부부싸움을 하셨다. 전쟁 발생 당일에는 살벌하셨다.
어머니는 그날 저녁 수제비를 하려고 반죽까지 다 해놓으셨는데 기분이 상하셔서 파업을 하셨다.
이날 저녁은 각기 알아서 챙겨 먹었다.
2
전쟁 발발 다음 날부터는 소강상태로 들어섰다.
어머니는 전날 만들어놓은 반죽을 버릴 수 없어서 수제비를 하셨고 아버지가 밉기는 하셨지만 그래도 굶기실 수는 없으셨는지, 그리고 싸우셨어도 가장이신 아버지를 어찌할 수 없으셨는지 늘 그러했듯 가장 큰 그릇에 가장 많은 양의 수제비를 담아서 식탁에 올려놓으셨다. 그러나 그릇을 식탁에 올려놓는 순간에 '탁'하고 놓으시는 게 아니라 '턱그덕' 하게 거칠게 던져놓으셨다. 그게 어머니의 작은 자존심이셨나 보다. 나는 너털웃음을 웃고 말았다.
3
전쟁 발발 3일째, 어머니께서 낮 시간에 내 방에 찾아오셨다. 내방에 오셔서 요리책을 살펴보시고 핸드폰으로 사진을 보여주시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보통 그 시간에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시거나 하셨는데 전쟁이 일어난 뒤에는 그럴 수가 없으셨던지라, 무료함을 달래시러 내 방에 찾아와 나를 붙들고 나와 시간을 보내시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슬쩍슬쩍 전쟁 당시의 상황을 복기하며 억울함을 내게 호소하기도 하셨다.
그런가 하면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나와 단둘이 있을 때면 그때 상황이 얼마나 이해 못 할 상황이었는지를 설명하셨다.
양 대립 진영에서 호소와 설명으로 당신들의 입장을 말씀하시며 나의 이해를 바라셨다. 과연 나를 포섭해서 무엇이 좋아지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일단 중립의 입장을 지켰다.
"그냥 남이라고 생각하세요. 남이라고 생각했으면 그렇게 하셨겠어요? 기분 상하지 않게 하려고 조심하셨겠죠. 너무 친해서 예의가 없어지신 거예요."
4
친할수록 상대방이 내 마음을 잘 알아줘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알아온 시간이 길고 깊으니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자기 배 아파 낳은 자식도 온전히 알기 어려운 것이 사람이다.
외로운 말일 수 있지만 세상에는 나와 남, 이렇게 둘로 나뉜다고 본다.
친하다고 나를 다 이해할 수 없고, 나도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그저 남과 잘 지내기 위해 예의로써 대하고 이해하지 못할 것이 있다면 물어보고 설명을 듣는, 소통을 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할 뿐이다.
꽤 오래전부터 사람을 대하는 내 신조는 "친할수록 예의를 지켜야 한다."이다.
그래서 나는 부모님께도 예의를 지키려고 한다.
이렇게 친한데 '남'이라고 생각해야 하느냐?는 의문이 있을 수 있다.
너무 삭막하다고 생각한다면 '친한 남'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하지만 본질은 '남'이다. 부모님을 사랑하지만 때로 오해가 생길 때 '남이라서 이해하지 못하신다'라고 생각하면 내 입장을 더 잘 설명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친한 남, 내가 사랑하는 남, 내가 존경하는 남, 이렇게 따뜻한 수식어를 붙이면 조금 덜 삭막하게 여겨진다.
하지만 본질은 '남'이다. 예의를 지키고 친절해지는 것이 제일이다.
어디까지나 내 생각은 그렇다.
5
오늘은 전쟁 발발 4일째. 이제는 소강상태라는 것도 무색하고 그냥 거의 화가 풀리신 것 같은데 화해의 실마리가 없어서 그냥 지내시는 것 같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
그냥 가만히 기다리다 보면 화해하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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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의를 지키는 자는 이자로 살고,
그것을 무시하는 자는 본전을 까먹는다.
-호프만슈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