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은 70년 삶의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움푹 팬 물웅덩이를 길어내어 반짝이는 호수를 만들고, 평화로이 띄운 배에 가족을 실었다. 아버님은 ‘아버지’의 대명사다.
“며늘아, 내가 군대 가기 전에 형한테 소 다섯 마리를 맡겼어. 그 당시 소 다섯 마리는 엄청난 거야. 아니, 근데 제대해보니까 소 한 마리만 남아있지 뭐냐. (껄껄.) 그때 땅을 사뒀으면 지금 엄청난 부자가 되어 있을걸.”
다 지나간 얘기라고 치부하기엔 큰 사건이었지만 삼겹살을 한 점 드시며 지난 얘기를 하는 아버님에게 원망의 눈빛은 찾아볼 수 없었다. 혹독하게 번 돈이 허망하게 사라졌는데도 아버님은 머리를 한번 털어 보이시며 웃으셨다. 그런 아버님을 보며 어머님은 못 미덥다는 듯 항상 말씀하신다.
“너희 아버진 어쩜 저렇게 욕심이 없나 몰라.”
두 분은 오래전에 동네 슈퍼를 운영하셨다. 아버지가 매일같이 새벽 시장에 가서 각종 야채와 신선식품을 가득 싣고 오면 그때그때 팔려나가 장사가 그렇게 잘 되었다고 한다. 그 시절에 모은 종잣돈으로 무쇠처럼 단단한 이 집을 사셨다. 태권 브이 같은 우리 집은 꼭 아버님을 닮았다.
“아버님은 대단해. 어떻게 그렇게 성실하게 일하실 수 있지? 몇 년을 하루도 안 빠지고……. 진짜 대단해.”
“새벽에 일어나서 시장 간 건 아빠 성격 때문이고, 저녁엔 엄마가 일할 동안 아빠는 동네 사람들하고 술 마시고 그랬어. 엄마가 엄청 고생했어.”
남편은 아버님이 개미처럼 살다가 남 좋은 일만 시키고, 정작 본인은 돈을 못 벌었다고 한소리를 했다. ‘아들은 역시 엄마 편인 건가.’ 감정 표현이 거의 없는 남편은 평소와는 다르게 엄마에 대한 연민을 내뱉었다. ‘내가 모르는 그들만의 삶이 있겠지.’ 어쩌면 아버님 밑에서 자랐기 때문에 ‘아버지’에 대한 기준이 너무 높은 건 아닌지. 그 어느 아버지보다 훨씬 더 위대한데 말이다.
내가 존경하는 것을 아버님도 느끼셨을까. 아버님의 나에 대한 사랑도 예사롭지 않았다.
“나는 솔비 어미가 싹싹하고 예뻐.”
우연이 엿듣게 된 아버님의 한마디에 울림이 있었다. 누군가를 평가하는 방법으로 며느리를 보지 않기에 가능한 말이다. 아버님은 나에게 곧잘 선물을 주셨는데, 젊은 시절 옷을 만들었던 아버님은 지인의 공장에 들른 김에 솜씨 발휘를 해봤다며 동화 속 공주가 두를법한 빨간 목도리를 능숙하게 짜서 선물해주셨다. 장인의 손끝에서 탄생한 꽈배기 모양의 빨간 목도리를 얼굴과 목에 칭칭 감고 현관에 들어서면 아버님은 작은 눈이 더 작아져 숫제 눈을 감은 채 웃어주셨다.
목도리에 자신감을 얻은 아버님은 그 후에도 가죽 재킷을 두 벌이나 사다 주셨다. 맙소사. 주머니에 리본 가죽이 달려 있는 게 아닌가. 아기자기하게 생긴 며느리에게 리본 재킷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셨던 모양이다. 감사한 마음으로 그 옷을 소화하기에는 큰 용기가 필요했다. 철 지난 재킷이 외롭게 옷장에 걸리기 시작한 시점부터 아버님의 선물이 바뀌었다. 흰 봉투에 용돈. 합리적인 선물임을 인정하면서도 선물 고르시는 기쁨을 뺏은 것 같아 죄송하다. 그리고 나도 아버님의 선물이 못내 그립다.
아버님이 게으름 피우시는 걸 본 적이 없다. 무수한 추억이 서려 있는 오래되고 낡은 주택은 자질구레한 변덕을 피며 아버님의 손길이 닿기를 주말마다 기다리고 있다. 갈라진 페인트를 덧칠하거나 수도 배관을 수리하고, 장마 초입에는 비 새는 곳이 없는지 일일이 확인하며 방수 실리콘 작업을 직접 하셨다. 그렇게 우리 집은 노화를 극복하고 있는 것이다.
나이가 많은 우리 집에도 젊은 구석은 있다. 그곳은 단연 옥상이다. 돌나물, 방풍나물, 취나물, 시금치, 상추, 오이, 호박, 더덕, 미나리, 심지어 배추와 무가 말쑥하게 자라고 있다. 다양한 채소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옥상은 젊은 생기와 풀 냄새가 가득하다. 일요일 아침. 옥상에서 들리는 둔탁한 소리가 아버님이 보내는 신호 같아 올라가 보면, 아버님은 노련한 농부처럼 짙은 흙빛의 거름을 뿌리거나, 새벽이슬에 젖은 초록 잎 하나에 정성을 기울이고 계신다. 청소년기 자녀를 키우듯 제멋대로 자라지 않게 부지런히 가꾸어 주는 것이다. 식물에게도 아버지 역할을 톡톡히 하고 계신 셈이다. 하릴없이 아버님 곁에서 서성이면 새로 드린 화분이 뭔지, 어디에 꽃이 폈는지 설명해주셨고 가끔은 금귤 같은 열매를 따서 입에 넣어주곤 하셨다. 아버님은 나를 위해 기꺼이 옥상 도슨트가 되어주셨다. 우리 가족은 해 질 녘이 되면 주황색 불빛을 켜고 옥상 식탁에서 종종 저녁을 먹는다. 바알간 숯불을 피우고 옥상 식탁에 직접 가꾼 채소를 한 움큼 씻어 놓으면 부지런한 아버님 덕분에 우리 집 옥상은 도시 한가운데 있는 근사한 캠핑장이 되곤 한다.
아버님이 서울에서 포천까지 일하러 가시면서 저녁 식사마다 막걸리 한 병이 일상이 되었다. 나는 몸에 안 좋을 것 같다고 만류했지만 막걸리는 보약 같은 거라고 괜찮다고 하신다. 아버님의 신념은 아무도 못 말린다. 그런 며느리의 걱정이 맘에 걸리셨는지 며칠 뒤 쉽지 않은 속마음을 털어놓으셨다. 이례적인 일이다.
“며늘아, 내가 왜 집에 와서 막걸리 먹는지 아냐. 일이 너무 고되다. 너무 힘들어.”
“그럼 쉬는 편이 훨씬 낫지 않아요? 왜 힘들게 일하세요. 저는 싫어요.”
“그래도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가야 할 곳이 있고, 내가 할 일이 있다는 것 때문에 다니는 거야. 몸이 허락되는 한 계속 다닐 거야. 이제 나 없으면 공장이 안 돌아간다니까!”
자신만만한 아버님의 목소리에 나는 자못 엄숙해졌다.
신혼 초에 아버님과 건강 프로그램을 본 적 있다. <부자로 살 수 있는 쿠폰, 20대로 돌아갈 수 있는 쿠폰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다면 무엇을 고르겠는가>라는 주제로 패널들의 설전이 오가고 있었다. ‘그런 황금 같은 기회가 온다면 당연히 부자지!’ 나는 갑자기 아버님의 생각이 궁금했다. 아버님은 질문도 아니라는 듯 짧게 대답하셨다.
“당연히 젊음이지.”
젊음을 원하셨던 아버님은 어느덧 칠순이 되셨다. 해가 지면서 청력이 떨어진 아버님은 보청기를 맞춰 놓고 사용을 안 하신다. 저녁 시간 대화를 주고받다가 어머니는 같은 말을 두세 번 하면서 언성이 높아지고, 아버님도 고래고래 답하시다 보니 얘기가 겉돌았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서 우리 집은 아이들이 어렸을 때보다 더 소란스러워졌다. 이제 내 목소리도 한없이 커질 예정이지만 그것은 아버님에 대한 배려와 사랑에 정비례할 것이다.
어마어마한 노력으로 삶을 일구고
일상의 사소한 행복에 웃을 줄 알며,
삶에 불평하지 않는 아버님.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두말할 것 없이 아버님을 말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