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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대혁 Feb 05. 2022

퇴사와 취준의 늪에서 벗어나는 길

천주희 저, <회사가 괜찮으면 누가 퇴사해> 그래픽 레코딩 

2016년 <우리는 왜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가>를 통해, 영리 수단이 된 교육과 취업 경쟁 그 틈바구니에서 핍진해지는 청년의 현재를 담고 진단했던 천주희 작가가 2019년 펴낸 책이다. 


목차를 먼저 살펴보면서... 


'1장 취업시장의 문턱'은 '스펙인간' ''첫 직장'의 환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취업문이 좁아지면서 스펙 경쟁, 학력 인플레이션이 벌어진 건 익히 알고 있는 일. 때문에 취업의 문턱은 높아졌지만, 그렇게 들어간 '첫 직장'은 그들의 노력에 상응하는 직장이 아니었다는 얘기일까? 어쩌면 높은 문턱 때문에 첫 직장이 한뼘 발디딜 곳 없는 천 길 낭떠러지라는 것을 알아챌 수 없었다는 얘기일까?  


'2장 수상한 노동 세계'는 '일터는 원래 이래요?' ''일 잘하는 사람''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 잘하는 사람'이라는 칭찬 혹은 기준이 일과 삶의 구분을 없애고 번아웃시키는 상황을 설명하려나? 일터와 집을 쳇바퀴처럼 돌고도는 모습이 떠올랐다. 


'3장 일신상의 사유'는 ''소진'과 '견딤'의 시간' '합법적으로 직원을 내쫓는 방법' '"일신상의 사유로 퇴사하겠습니다"' 구성되었다. 번아웃에 대한 얘기려니 짐작했다. 재가 될 때까지 일하는, 재가 된 뒤에는 쓰레받이에 담겨 일회용처럼 버려지는 청춘들에 대한 얘기일까? 


'4장 퇴사란 무엇인가'는 '퇴사할 용기' '직장 탈출, 백수 탈출의 도돌이표'는 마치 스카이 다이빙을 하듯 용기를 내야만 퇴사할 수 있지만 결국 퇴사자가 착륙하는 곳은 또 다른 '범의 아가리'임을 설명하려나? 


각 장의 제목과 소제목에서 어느 정도 내용을 상상해 볼 수 있었는데, 마지막 '5장 퇴사해도 괜찮은 사회'란 선뜻 내용이 연상되지 않았다. 그건 책에서 확인해 보기로. 


책의 목차를 보고 내용을 상상해 보았다. 


1장 취업시장의 문턱 

1장을 읽고 그린 그래픽 레코딩


1장은 예상했던 내용들을 담고 있다. 취업을 해야 정상으로 인정받지만 '정상'이라기엔 너무나 취업의 문은 좁기만하고 때문에 스펙 쌓기가 경쟁이 되어 버렸다. 경쟁의 톱니바퀴 위에서 질주를 하는 심리는, 실패 후의 후회와 자책이 두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달리고 달려도 겨우 제자리. 


스펙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고용시장은 한 줄 스펙을 제공해준다는 빌미로 최저임금도 되지 않는 조건으로 노동력을 부린다. 당연히 생활을 위해서는 다른 알바를 전전하게 되면서 이들은 '첫 직장'에 대한 기대로 버티지만, 조만간 이들은 그 '첫 직장'이 신기루 였음을 알게 된다.  



2장 수상한 노동 세계

2장을 읽고 그린 그래픽 레코딩

청년들의 취업 준비는 대학 졸업 훨씬 이전부터 시작된다. 수년에 걸친 준비 기간 동안 고도의 스펙을 갖추고 들어온 직장의 현실에 이들은 경악하게 된다. 


직장을 그만둔 이유의 거의 절반이 열악한 근로 여건 때문이다. 그중 급여를 보면 전체의 약 80%가 200만원 미만의 급여를 받았다. 한때 문화 예술분야의 특징이었던 열정 페이가 전 분야로 확산된 것이다. 그러고보니 '열정 페이'란 말도 이상하다. 페이란 급여란 얘긴데, 열정을 급여로 준다? 사실은 급여도 제대로 못 받고 열정도 지불하는 거 아닌가? 그야말로 돈주고 사는 고생인데. 정확히 얘기하면 '열정 갈취'라고 해야하는 건 아닌지? 


생활 임금이 되지 않는 낮은 급여 때문에 청년들은 알바를 찾고, 과로한다. 직장의 관리자들은 청년이 미숙하기에 이렇게 줄 수밖에 없다고 변명한다. 그럼에도 일 할 청년이 많다는 현실은 이런 체제를 지속하게 한다. 


갓 들어온 청년들이 일을 배울 수 있는 시스템이나 선배가 없다는 사실도 청년들이 퇴사하게 되는 이유다. 이런 회사에서 일이란 그저 '잘 못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되고 만다. 자연히 성장이나 보람이 있을 수 없다. 이런 체제는 <오징어 게임>의 유리 다리 시퀀스를 떠오르게 한다. 


길을 안내해 줄 선배나 시스템이 부재한 상황에서 무조건 앞으로 나아가라는 지시만 있는 조직은, 영화에서 유리 다리 위에 놓인 인물들이 느끼는 스트레스나 압박과 그다지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오징어 게임>은 얼마나 탁월한 은유인가? 아니, 너무 적나라한 직유인가? 


'일잘러'에 대한 직장과 노동자의 간극도 흥미롭다. 청년들이 그리는 '일잘러'가 업무에 대한 이해와 효율, 협업에 능한 인물을 이야기하는 반면, 직장에서 말하는 '일잘러'는 단지 '헌신'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저자는 해석한다. 이때의 '헌신'이 고작 저임금을 참는 것 혹은 '보상 없이 오래 자리 지키기' 등이라는 사실에는, 여전히 우리 노동 현장이 수십 년 전에 머물러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2장을 읽으면서 전반적으로 '가축'이 연상됐다. 막내 직원을 마치 마당에 메어놓은 강아지 취급하는 상사들, 그리고 소처럼 보상 없이 여러 인간의 몫을 수행해야 하는 상황, 그리고 좁은 닭장이라는 구조의 압박 때문에 서로 괴롭히게 되는 현실은 '사육'과 그리 다르지 않은 것 같다. 



3장 일신상의 사유 

3장을 읽고 그린 그래픽 레코딩

취업준비자는 사상 유래없는 고스펙을 갖추게 되었지만, 정작 직장은 90년대의 고민을 그대로 안고 있다는 이 낙차 때문에 결국, 청년들은 입사 후 1~3개월 사이에 퇴사를 고민하게 된다. 


퇴사의 사유 중 가장 큰 것은 '비전 없음'이다. 곧 '성장 가능성 없음'인데, 이는 두 가지로 해석된다. 사회가 '저성장 사회'로 진입하면서 과거 노동자에게 임금 상승과 사내 복지를 제공해주면서 생산성 향상을 요구하던 시대와는 달리 지금은 노동자에게 제공해 줄 것이 없다. 단지 '회사의 주인은 너'라는 공허한 슬로건 뿐. 


또 앞서 언급한 회사 내 교육 및 업무 시스템이 없어서, 선배가 없어서, 의사 결정 시스템이 투명하지 않아 변화 가능성을 발견하지 못하는 경우도 '비전 없음'의 진단을 받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회사 내 핍진한 선배를 보면서도 비전 없음을 느끼게 되고, 선배가 없어도 마찬가지로 '비전 없음'을 느낀다는 점이다. 


일을 숙명으로 여기고 자신을 마모시키고 소진시키던 청년은 결국 '이렇게 살 필요가 없다'는 '단절점'을 맞이하게 되고 퇴사를 결심하거나 워라벨을 찾게게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워라벨도 결국 소비와 노동의 순환 고리로 이어지게 되면서 퇴사를 지연시킬 뿐이다. 


퇴사자는 쫓겨난 사람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자발적 퇴사란 '합법적 비자발적 퇴사'의 다른 이름이다. 이미 사람을 내쫓을 수 있는 다양한 합법적인 방법들이 있다. 인사 고과를 이용하거나, 직장 내 괴롭힘도 노동자를내쫓는 흔한 수단이지만, 합법의 영역에 있는 해고도 이미 사용자가 자의적으로 수단화할 수 있는 방법들이 많이 있다고 한다. 


비자발적인 퇴사임에도 청년 노동자는 평판 조회로 자신의 이후 커리어도 차단될까 두려워 이를 제대로 얘기하지 못한다. 속마음은 회사에 불을 지르고 싶은 심정이면서도. '회사는 전쟁터 나가면 지옥'이라고 한단다. 회사에 총질을 한들, 회사에 불을 지른들, 전쟁터에 전쟁터 대접을 해줬다고 할 밖에 없을 것 같다. 



4장 퇴사란 무엇인가

4장을 읽고 그린 그래픽 레코딩


4장에서는 '퇴사'가 퇴사자의 경제적 배경에 따라 또 어떻게 다른 의미를 지닐 수 있는지를 살핀다. 여유가 있는 이들에게야 퇴사는 새로운 전환을 모색하는 '기회'가 되겠지만, 대다수의 그렇지 못한 이들에게는 퇴사란 다음 직장을 모색해야 하는 짧은 이행기일 뿐이다. 


이들에게 퇴사 기간은 단지 실업급여에 따라 버틸 수 있는 기간이 정해지고, 그 기한이 차면 별다른 충전의 시간도 갖지 못한채 퇴사자는 앞뒤 재볼 것도 없이 다른 직장으로 뛰어들게 된다. 저자는 이를 두고 '표류하는 삶'이라고 한다. 퇴사가 이제껏 청년들이 자신을 위해서 처음으로 내린 결단임에도 그 결단의 결실을 보기 훨씬 이전에 다시 취업 과정에 뛰어들고 그렇게 쳇바퀴 돌듯 하면서 결국은 소진되고 만다. 


여기서 옛 영화 '데블스 어드버킷'의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다. 악마의 유혹에서 벗어나 주인공이 승리를 쟁취하는 듯 하지만, 결국 그 승리의 기쁨에 취한 것만으로도 다시 악마의 손아귀에 있었다는 얘기. 자신을 위해 퇴사라는 결단을 내리지만 다시 퇴사와 구직의 소용돌이 혹은 요요 이행에 갇혀 버리게 되는 삶이 딱 이 영화의 주인공 같다. 


저자는 이 영겁회귀에서 벗어나는 길을 적극적으로 제시하고 있지는 않다. 다만 '주체적인 인간' 즉, 왜 퇴사를 했는지, 내가 원하는 일터는 무엇인지 자문하고 성찰하는 사람만이 여기서 벗어나고, 좀 더 만족스런 직장으로 옮길 수 있다고 한다. 


이 책에서 가장 아쉽고 의문스러운 지점은 바로 이 지점이다. 경제적인 이유로 요요 이행에 갇힐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경제 상황이 해결되지 않는 한 과연 '주체적인 인간'으로 바뀔 수 있을까? 



5장 퇴사해도 괜찮은 사회 


결말도 역시 개운치 않다. 저자는 퇴사할 필요가 없는 직장을 만들기 위한 최소한의 제도를 소개하고, 또 퇴사 과정이나 퇴사 이후에 청년들의 의지가 될 만한 여러 제도들을 소개하고 있지만, 뭔가 좀더 할 이야기가 남은 것은 아닌가, 좀더 논의를 이어가야 하는 건 아닌가 싶다. 


본문에서 계속 우리 산업 구조의 변화를 이야기하고, 구직자 청년의 인식 변화, 고스펙에 비해 이를 따라오지 못하는 일터를 다룬 반면, 해결책은 구조의 가장 표피에 있는 제도에만 그치고 있다는 생각이다. 


어느새 직장에서 관리자 사용자가 된 나로서는 이 책을 보는 내내 편하게 남의 일처럼 볼 수는 없었다. 바로 이 책에서 진술한 청년들이 겪는 문제들이 우리 직장에 다니는 청년들도 비슷하게 겪고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선뜻 이야기할 수가 없었다. 그간 수많은 퇴사자를 만들어 오기도 했고. 


저자의 지적처럼 우리 일터를 돌아볼 계기는 되었으나, 이 현실도 구조에서 비롯된 문제이고 보면 당장 개선해 내야 하는 과제도 있겠지만, 서로 비전을 공유하면서 변화의 경로를 그려보는 작업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오는 9일 삼양동에서 이 책의 저자 천주희 작가와 북토크를 이어갈 텐데 그때 좀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길 바란다. 북토크에 대한 정보는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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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양청년회관 "삼양 한다리 클래스"] 


취업만 하면 될 줄 알았더니, 직장생활 스트레스도 어마어마하고...

부모님 친구 할 것 없이 결혼이 정답인 것마냥 이야기하는 사람들까지... 

혼자 고민하고 있나요? 우리 같이 야이기 해보자구요!

신청은 아래 링크를 눌러주세요

https://bit.ly/3nwyK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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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강 <회사가 괜찮으면 누가 퇴사해>

- 강연자 : 저자 천주희 / 2022.02.09.(수) 19:00 / 삼양청년회관 2관


2강 <비혼 1세대의 탄생>

- 강연자 : 저자 홍재희 / 2022.02.23.(수) 19:00 / 삼양청년회관 2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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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x그래픽레코딩>은?

저자의 책과 독자의 그림을 놓고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그림을 못 그려도 Never mind!

일단 그려보시면 책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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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비 :

- 강의당 3만원

강의 전 그림을 1장이라도 제출하시면 3만원을 송금해드립니다.


- 입금계좌

신한은행 100-033-621559 (사단법인 공공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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