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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대혁 Feb 17. 2022

꼭 그렇게 살지 않아도 돼

홍재희 작가의 <비혼 1세대의 탄생> 그래픽 레코딩 


홍재희 작가의 글은 시원하다. 거침이 없다. 글 맛처럼 사람도 그럴까, 궁금한 독자들에게 작가의 삶을 살짝 엿볼 수 있는 책이 바로 이 책 '비혼 1세대의 탄생'이다. 작가가 에필로그에 썼던 것처럼 이 책은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어느새 비혼으로 50을 맞이한 작가가 자신의 삶의 궤적들을 돌아보면서 비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과 비혼의 삶을 이야기 한다. 결혼과 출산, 육아에 이르는 인생 GPS가 가리키는 경로는 벗어난 저자가 맞닥뜨린 '다른 삶'을 펼쳐 보이면서 저자는 독자들에게 '당신도 다른 삶을 상상해보라' 권한다. 그 초대장을 받고 책을 펼치다보면, 마치 저자의 육성이 음성지원되는 듯한 구절들을 만날 수 있다. 



1. 비혼 1세대의 탄생 


1장에서는 X세대에서 어떻게 비혼 1세대가 나오게 되었는지 맥락을 짚는다. 비혼 1세대의 이전을 압축하기 위해 저자가 선택한 은유는 '뒤옹박'이다. 남자를 어떻게 만나느냐에 따라 여물을 담는 여물통이 되기도 하고, 쌀을 담는 쌀 그릇이 된다는, 그만큼 여자 팔자는 남자 만나기에 달렸다는 이야기를 전하면서 남자에 종속된 여자들의 이야기를 되짚는다. 


재혼 후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당하다가 미국으로 떠났다는 이웃의 이야기에서 잠시 잊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연립주택 1층 단칸방에 비스무레한 가구들이 화장실 하나를 같이 쓰던 때였다. 그때 안쪽 방에 살던 아줌마를 보고 사람들은 '남씨'라고 불렀다. 보통 자식 이름을 따 '누구 엄마'라고 부르던 때 그는 왜 '남씨'로 불렸을까? 나와 한 학교에 다니던 딸도 있었는데. 


추측이지만 아마 남편도 없고, 술집에 나가는 소위 '직업 여성'이라는 걸 그렇게 호칭으로 드러냈던 것은 아닐지. 내 주위에도 그렇게 가부장제에서 벗어난 여자에게 가해지는 은근한 혹은 노골적인 차별과 멸시가 있었다. 저자의 책에 소개된 이웃처럼 박차고 떠난 이들 외에 다수는 꾸역꾸역 그 수모를 참고 살았으리라. 어쩌면 이 책에서 얘기하듯 '대안의 삶'을 모색했던 이들은 이 책에 소개된 '이오네 엄마'처럼 이미 오래전에 이 땅을 떠나는 것으로 대안을 삼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지금은 세상을 뜨는 것으로 대안을 삼는지도. 


이런 공고한 가부장제에 금이가는 것은 IMF 무렵이라고, 저자는 진단한다. 내가 대학을 졸업했을 때다. 지금도 그때 거리에서 종종 대학 동기들을 만나던 일을 떠올린다. 학점도 볼 것없이 대학 졸업증만 있으면 취직하던 선배들의 영화는 그때 이후로 과거가 되어버렸다. 결혼이 약속하는 '미래' 역시 과거가 되었다고, 저자는 진단한다. 뒤웅박 팔자라도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없어서 감내해야만 했던 '결혼'이, 마지막 이유마저 사라져 버린 셈이다. 


IMF의 직격탄을 맞은 X세대에서 '비혼 1세대'가 나온 것은 그래서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비혼이라고 해서 모두 같은 것은 아니다. 저자는 '자발적 비혼'과 '어쩌다 비혼'을 나누면서 중요한 것은 '종속되거나 파멸되지 않으리라는 주체적인 삶'이 결국 행복한 '비혼'을 만들 수 있다고 강조한다. 


1장의 말미에 기억에 남는 구절은 '여자는 남자의 식민지'라는 말이었다. 여성의 주체성을 억압하는 현 상황을 아주 선명하게 그려내고 있는 말인 듯 싶다. 


2. 40대 비혼의 풍경 


2장에서는 좀더 구체적으로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꺼낸다. 책을 읽는 중에서 가장 흥미진진했던 내용도 이 부분이었다. 그 중에 단연 압권은 집을 구하려다가 자존감에 상처를 내야만 했던 에피소드다. 나를 포함, 서울에서 집을 구하려고 했던 이들은 많이 경험들 했을 텐데, 비혼에다 예술인인 저자의 경우는 더했으리라. 


점점 구석으로 지하로 내려가면서 저자는 상당히 상처를 받았다고 한다. 그러다 문득 이게 다 뭐야, 싶은 생각이 들었을까? 박차고 해외로 긴 여행을 떠났다고 했다. 그 결과가 궁금해 현기증이 날 것 같은 독자를 두고, 저자는 우리에게 집이란 어떤 의미인지를 되짚어 본다. 그리고 '화려한 싱글'입네, '골드 미스'입네 하고 있지만 이는 모두가 구매력을 충동하는 마케팅의 용어일 뿐. 돈이 없는 비혼은 논외의 세상인 것이다. 


영화감독이기도 한 저자는 이 당시 1년간 예술활동으로 벌어들인 돈이 0원이었노라고 한다. 예술인의 27.5퍼센트가 이렇게 예술활동으로 전혀 수입을 얻지 못하고 있단다. 비혼의 풍경은 이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예술인이기에 더 극단적일 수는 있으나, 가난 + 여성 + 싱글 = 극빈층이라는 자조가 전혀 과장이 아닌 시대다. 


여성 비혼의 풍경이 가난의 풍경이 되는 이유는 여성 차별에도 크게 기인한다. 단지 여성이기에 급여 차이가 발생한다. 남들 못지않게 열심히 살았지만 '그냥 여사원'이라는 푸념과 자조가 뒤따른다. 


2장을 읽다가 '풋' 웃음이 터져나온 대목이 있었다. 영화인들의 가난을 이야기하면서 '영화계 탈출은 지능순'이라는 문장에서 뿜어져 나왔다. 그러면 나는 작가 홍재희보다 지능이 높다는 얘긴가? 작가를 만나면 이 얘기를 꼭 해주고 싶었다. 


저자는 예술가들의 가난에 대한 대안으로 프랑스의 엥테르 미탕이라는 제도를 소개하고 있다. 수입의 절반을 보험으로 내면 나중에 일이 없을 때 돌려받는 보험이라고 한다. 혹하긴 한데... 한국에서 이게 가능하려면 일단 예술인들이 받는 급여가 좀더 올라가야 한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내 경우 현장 편집으로 받은 급여가 800만 원이었는데, 그 작품 촬영 기간이 무려 10개월이었다. 여기서 절반을 보험금으로 낸다? 안 될 말이다. 프랑스 예술인들이 얼마나 받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면의 비교가 필요한 듯 싶다. 


아, 그래서 저자는 집을 구하다 말고 여행갔다가 다시 어떻게 되었느냐고? 한국에 와서 아주 낡았지만, 아주 불편하지만, 아주 맘에 드는 집을 발견해 잘 살고 있다고 한다. 



3. 조금 더 행복하게 사는 법


마지막 3장은 '그래서'의 영역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 이런 헬조선에서 결혼도 쉽지 않고, 비혼도 쉽지 않고. 물론 단방약은 없다. 우리 삶의 모순들이 켜켜이, 삶의 모든 영역에 전방위적으로 쌓여 있는 터라 한 두가지 해결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닌 것이다. 저자 역시 다양한 제안을 내놓고 있다. 


1. 덜 소유하고 덜 쓰기 

2. 짐을 줄이자 

3. 집에 대한 기복 신앙 버리기  

4. 동거하자 

5. 남자들에게 살림법 전수 

6. 서로 늙음을 돕자 


여섯 가지로 정리될 것 같은데 정확한지 모르겠다. 하나하나 주옥이다. '4번 동거하자'는 독신이어도 가능한 거 아닌가 싶어 갸웃거리게 하지만, 여기까지 읽다보면 저자가 하는 말은 다 맞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 


인상 깊은 구절은 다섯번째 '남자들에게 살림법을 전수하자'라는 항에서 여자들이 살림하는 모습을 춤에 비유한 대목이다. 어느 나들이 모임에서 여성들이 일을 나눠 착착 먹을 거리를 준비하는 모습에서 군무를 연상했다고 한다. 살림은 곧 춤이다. 좋은 말, 곱씹을 말이다. 


네번째 동거하자에서는 우리네 '생활동반자법'의 모델이기도한, 프랑스의 PACS제도를 소개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프랑스는 참... 이래서 선진국인가 보다. 이 법은 간단한 서류 제출만으로 동거인들이 서로 돌보는 '가족'임을 증명하고 가족에 준하는 혜택을, 국가가 제공해준다고 한다. 우리도 1인 가구나 셰어 하우스처럼 새로운 주거 형태가 늘어나면서 도입이 시급한데, '가족'을 신성시하는 관습상 여러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 


세번째 집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저자는 '아파트 벽에 '마을' 글자를 써놓은 게 마을이 아니다'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고시원이나 아파트나 어떤 면에서 사람들을 박스에 포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매트릭스의 코쿤처럼 혹은 어느 영화의 제목처럼 'Boxing People'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 안에서 사람들의 삶은 납작해지고, 관계는 산산조각이 나고 만다. 


저자는 책을 닫으면서 이 '관계'를 다시 만들자고 제안한다. '비혼'이 혼자 주체적으로 서는 거지만, 외로워지자는 것은 아니라면서. 이러기 위해서는 처음의 초대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 다른 삶을 상상하자. 저자가 제안하는 것들이 다양한 상상들을 불러 일으키면서 삶들이 좀더 다양해지면 좋겠다. 꼭 이래야 저래야 하는 모범답안이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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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재희 작가의 책 <비혼 1세대의 탄생>을 두고 저자와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삼양청년회관 "삼양 한다리 클래스"] 


지난주에 이어 다음주 23일 수요일에는 홍재희 작가의 <비혼 1세대의 탄생>으로 북토크x그래픽 레코딩을 진행합니다. 삶에 지친 이들에게 '꼭 그렇게 살 필요는 없어'라고 다독여주는 글입니다. 함께 읽어봐요. 

이번에는 홍재희 작가님이 타로점을 봐주신다는 소문도... 


신청은 아래 링크를 눌러주세요

https://bit.ly/3nwyK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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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강 <비혼 1세대의 탄생>

- 강연자 : 저자 홍재희 / 2022.02.23.(수) 19:00 / 삼양청년회관 2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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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x그래픽레코딩>은?

저자의 책과 독자의 그림을 놓고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그림을 못 그려도 Never mind!

일단 그려보시면 책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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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비 : 3만원

but 강의 전 그림을 1장이라도 제출하시면 3만원을 송금해드립니다.


입금계좌 : 신한은행 100-033-621559 (사단법인 공공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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