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옷을 입다
며칠간 구름도 없이 너무 맑던 하늘에 그동안 참기 힘들었다는 듯이 검은 구름이 잔뜩 몰려와 비를 내립니다. 그동안 메말랐던 풀과 꽃과 강과 씨앗들은 비가 한 모금이라도 더 자기를 향해 내려주길 바라며 몸을 흔들어보지만 비는 언제나 그렇듯 자기가 내릴 수 있는 모든 곳에 공평하게 내리지요. 그건 오랫동안 말라있던 작은 웅덩이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내리기 시작한 비는 잦아들었다 다시 찾아 왔다를 반복하며 이곳저곳을 적시다 빨래를 미처 다 말리지 못한 사람들이 입을 옷이 없을 때쯤 다시 해 뒤로 숨어들었습니다. 그동안 마른 웅덩이는 물이 찰랑거릴 정도로 고이게 되었고 비를 머금고 팔을 더 뻗을 수 있게 된 나무들은 물웅덩이 위로 넓은 그늘을 만들어 물웅덩이는 근처에 살고 있는 동물들에게 좋은 휴식처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찾아오기 힘든 곳에 있는 물웅덩이이지만 바로 앞에는 약간은 허름해 보이는 집이 있어요. 그 곳에 그 집에 있는 것이 당연할 만큼 자연스러워 보이는 집입니다. 이 집에는 작은 아기와 차를 타고 멀리 일을 나가시는 아빠와 아기를 예뻐해 주시는 엄마, 세 가족이 살고 있어요.
“아, 며칠 동안 내린 비 때문에 빨래가 산더미네. 그래도 오늘은 날씨가 좋으니 마당에 널면 금방 마르겠지.”
엄마가 빨래가 가득 담긴 바구니를 들고 나오며 말합니다. 그 뒤로 옷을 안 입은 아기가 자기 발보다 큰 신발을 신고 달그락 거리며 따라 나옵니다.
“홍아, 옷도 안 입고 나왔니? 엄마 빨래 널 동안 너무 멀리 가지 말고 빨래가 다 마를 때까진 갈아입을 옷도 없으니까 흙장난하면 안 된다.”
엄마가 뭐라고 말씀하시던 오랜만에 밖에 나온 아기는 신이 나서 개미들 지나가는 모습도 구경하고, 거미줄도 구경하다가, 노랗고 작은 나비를 따라 집 뒤로 달그락 거리며 갔습니다. 비를 머금고 더 푸르러진 나뭇잎과 촉촉하고 부드러운 흙 때문에 아기는 더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때 아기는 반짝이는 무언가를 발견했습니다.
“아, 예쁘다.”
아기는 반짝거리는 곳으로 다가갑니다. 나뭇잎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에 물웅덩이가 반사되어 반짝거리고 있었습니다. 아기는 이런 웅덩이는 태어나서 처음 봅니다. 아기는 쪼그려 앉아서 가만히 물웅덩이를 지켜봅니다. 그러다 갑자기 볼이 빨개지더니 아기는 물웅덩이를 손가락질하며 외칩니다.
“아이, 부끄러워! 발가벗었잖아.”
“홍아, 어디 갔니? 엄마 빨래 다 널었어. 이제 옷 입자!”
집에서 아기를 부르는 소리가 나고 아기는 얼굴을 빨갛게 붉히더니 뒤를 돌아 집으로 뛰어 들어가 버렸어요. 아기가 가고 난 후 혼자 남은 웅덩이는 생각했어요.
“부끄럽다고? 발가벗었다는 게 뭐지?”
처음 보는 친구에게 부끄럽다는 얘기를 들은 물웅덩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며 잔잔한 물결을 일으켰어요. 물웅덩이에 찾아오는 친구들 중 누구도 물웅덩이를 부끄럽다고 말한 친구는 없었어요. 도대체 발가벗었다는 게 뭐 길래 부끄럽다는 걸까요? 물웅덩이는 옆에 서있는 나무에게 물어봤어요.
“나무야, 발가벗었다는 게 뭐니?”
“발가벗었다는 건 옷을 입지 않았다는 거야.”
“옷이라고? 그게 뭔데?”
“사람들이 몸을 보호하려고 감싸는 천이지. 토끼의 털이나 비둘기의 깃털 같은 거야.”
“나무야, 너도 옷을 입니?”
“아니, 난 옷을 입지 않아. 하지만 내 나뭇잎 색이 바뀌는 것을 보며 사람들이 아름다운 색동옷으로 갈아입었다고 말하기도 해.”
“그렇구나. 맞아, 너의 나뭇잎은 정말 아름다워.”
“고마워.”
물웅덩이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다시 나무에게 말을 걸었어요.
“나무야, 나도 옷을 입으면 너처럼 아름다워질까?”
“글쎄? 그게 그렇게 중요하니?”
“나무야, 너의 나뭇잎을 나에게 조금만 떨어뜨려줘. 나도 옷을 입고 부끄럽지 않은 물웅덩이가 되고 싶어.”
“물웅덩이야. 나뭇잎을 떨어뜨리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네가 옷을 입지 않았다고 해서 부끄러운 건 아니야. 넌 물웅덩이잖아. 넌 너만의 아름다움이 있어.”
“나무야~ 난 지금 몹시 부끄러워. 나도 옷이 있었으면 좋겠어. 부탁할게.”
물웅덩이가 자꾸 졸라서 나무는 물웅덩이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어요.
“알았어. 그럼 나뭇잎을 떨어뜨려줄게.”
“고마워. 나무야. 고마워!”
나무는 가지를 흔들어 물웅덩이 위로 나뭇잎 몇 개를 떨어뜨렸습니다. 물웅덩이 위에 떨어진 나뭇잎들은 작은 원을 그리며 흔들리다. 바람에 맞춰 춤을 추듯 떠다녔습니다.
“야호~ 다음에 아기가 오면 옷을 입을 나를 보고 예쁘다고 하겠지?”
나무는 물웅덩이가 옷을 입은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요. 조용히 바람 사이로 한숨을 쉬고는 다시 햇빛 아래로 가지를 뻗는 일에 열중했어요.
물웅덩이는 언제 아기가 오는지 기다렸어요. 기다리는 동안 물웅덩이 위로 떨어진 나뭇잎들이 조금씩 까맣게 변해가고 있었지만 물웅덩이는 신경 쓰지 않았어요. 물 마시러 오던 새들도 나뭇잎에 덮여있는 물웅덩이를 잘 찾지 못해 힘들게 찾아왔다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그냥 날아가 버리기도 했지만 물웅덩이는 신경 쓰지 않았어요. 아기가 와서 예쁘다고 깜짝 놀라는 모습만 상상하느라 바빴어요.
그러던 어느 날 아기가 달각거리며 물웅덩이 쪽으로 다가 왔어요. 아기는 물웅덩이처럼 알록달록 예쁜 옷을 입고는 물웅덩이를 다시 빤히 바라봤어요. 물웅덩이는 나뭇잎 옷을 입고 있는 자기의 모습을 아름답다 해주기를 바라며 아기를 잔잔히 비추었어요. 물웅덩이를 한참 바라보던 아기는 얼굴에 미소를 배시시 지으며 말했습니다.
“때때옷 예쁘다.”
물웅덩이는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더 반짝였어요. 아기는 반짝이는 물웅덩이에 손을 넣고 장난을 치고 싶어졌어요. 손을 뻗어 물웅덩이에 손을 담그려던 아기는 갑자기 얼른 손을 감추며 말했어요.
“아이, 더러워. 지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