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병원 내 영상의학과에서 일하고 있는 방사선사입니다. 저희 병원은 응급실이 있기 때문에 저희 과에서도 돌아가며 당직 근무를 서야 합니다. 지금 하려는 이야기는 '20년 여름밤 이태원발 코로나가 유행하던 시기, 매우 한적한 밤에 있었던 일입니다.
한 아이가 응급실에 내원하였고 응급실에서 촬영 오더가 있어 당직실로 연락이 왔습니다.
아이에겐 뇌진탕 소견과 함께 어지러움으로 인한 CT 처방과 일반촬영 처방이 나왔었습니다. 별일 없이 조용하게 지나간다고 해도, 당직 근무는 낮과 밤이 바뀌기 때문에 무척 고됩니다. 그래서 솔직히 말하면 검사 전화가 그리 반갑진 않았습니다. 아이가 응급실에 도착해 일반촬영을 한 후 CT 검사를 진행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어지럽고 구토를 함에도 불구하고 CT를 찍지 않겠다며 때를 써 보호자 분들은 속이 타들어가는 표정이었습니다. 애가 아프니 안타깝고 안쓰럽고 미안한 마음의 눈빛을 지으면서도, 한 성질 부리는 애를 보면서 한숨을 쉬며 화를 참는 모습까지...
이때 우리 딸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늘 까불고 활기차서 사고를 치는 녀석이 어쩜 이 아이와 똑같던지 웃음이 나기 시작하더라구요. 그래서 제 딸을 달래듯 CT실에서 노래도 부르고 핑크퐁 율동체조도 하며 아이를 달랬고, 익숙한 노래를 따라하다 긴장이 풀려서인지 무사히 검사를 끝냈습니다. 참고로 제 키가 약 190cm이기 때문에 유아와 함께 하는 달밤의 체조는 정말 장관이었습니다.
검사 결과가 어찌 되었건 아이 부모님은 한시름 놨다는 표정으로 애와 함께 다시 응급실로 갔고 영상의학과는 언제 쿵쿵댔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다시 한적해졌습니다. 그리고 그 고요함 속에서 왠지 모를 웃음이 계속 나와서 그 날은 당직이 전혀 힘들지 않았습니다.
이 경험 덕분에 전 한층 더 환자와 보호자에게 다가갈 수 있는 성숙한 병원 직원이 되었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초기엔 직장에서 고객을 맞이하는 것에 불과했는데,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가정이 생기니 환자 및 보호자에게 감정 이입이 더 쉽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일이 좀 힘들때가 있어도 ‘환자를 가족처럼 생각하면 환자뿐만 아니라 보호자 그리고 저 자신도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실천하는 중입니다.
- 화성 DS 병원, KDW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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