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훈할 것이란 날씨 예보와는 다르게 무척 추운 날이었다. 한국의 겨울은 정말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매서울 때가 있다. 베트남과 다르게 확실히 북쪽에 있는 나라가 맞다.
작업 반장님이 어제까지 마무리 했어야 하는 일이 안 끝났다며 나와 동료들에게 뭐라 했다. 한 소리 들을 땐 한국 사람이나 우리나 똑같이 표정이 어두워진다. 이 잔소린 언제 끝나려나. 한 마디 할 때마다 ‘X발’ 이라며 말끝에 붙이는 접미 욕설은 리듬을 탈 때가 있어서 가끔 랩을 붙여 노래를 부른다. 물론 속으로.
그 일은 공사장에 들어가 거푸집을 해체하다가 발생했다. 철근이 잘못 놓여 있었던 것인지 지지대가 잘못된 것인지는 모르겠다. 무거운 쇳덩어리가 천장에서 떨어지면서 나를 덮쳤다. 내가 몸을 잠시 기울였었나? 왜 허리가 나갔는지 모르겠다. 의학 용어론 흉추 11-12번, 요추 1번의 골절, 다리 감각도 없고 움직일 수도 없었다. 프리다칼로의 ‘부러진 기둥’이 딱 내 모습이다. 이런 절망을 공허함이라고 할 수 있을까? 왜 살아야 하지?
수술 후에 나는 나를 움직이지 못하는 반쪽자리 마네킹이라고 생각했는데 병원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내 몸에 여러 가지 보조 장치와 전극 패드를 붙이더니 계속 움직이게 했다. 이런 게 다 무슨 소용이지? 내 다리를 내 뜻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건가?하여튼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의사, 간호사, 물리치료사 분들은 나를 치료했다. 그나마 움직일 수 있는 상체 근력 운동도 열심히 시켰다. 어떤 때는 귀찮을 정도였다.
내 마음 속에 죽었던 신이 다시 살아날 수 있었던 이유는 베트남에 있는 아들 만티의 한 마디 덕분이었다.
“아빠, 보고 싶어요.”
이 말에 먼 곳만 응시하던 플라스틱 모형 같은 두 눈도 조금씩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말이 거의 안 통하는데도 불구하고 한국 사람과 대화를 하고 있었다. 부활한 신의 덕분인지 내가 노력해서인지 조금씩 더 나아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겸손하게 잘 생각해보면 병원 의료진의 헌신이 큰 역할을 했으리라.
조만간 여기보다 더 큰 병원으로 옮겨 갈거라고 들었다. 그건 더 나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허리가 다 나을까? 다리를 움직일 수 있을까? 이젠 상관없다. 최대한 더 건강을 찾아 만티를 보러 갈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