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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작가와

자기 책을 자기가 구매하는 작가는 얼마나 될까?

작가에서 독자로, 그리고 첫 번째 팬으로

by 작가와

이런 수치를 조사한 곳이 있는지 모르겠다. 아마 없을 것 같다. 누가 작가들에게 "본인 책 직접 사셨어요?"라고 물어보겠는가. 내 경험을 돌이켜보면 산 책이 있고 아닌 책이 있다.

초반에 낸 책들이 그랬다. 사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름의 '합리적인' 이유들이 있었다.


1. 책을 인쇄한 뒤 20부를 그냥 개인 작가용으로 받았다.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로 나눠주라는 용도였다. 책상 한쪽에 쌓여있는 내 책 20권을 보며 생각했다. '이미 실물을 들고 있는데 굳이 서점에서 또 살 필요가 있을까?' 그 20권을 다 나눠주고 나서도 비슷한 생각이었다. 어차피 필요하면 출판사에서 더 받으면 되니까. (심지어 그 출판사가 우리 회사다!)


2. '내용을 다 알고 있는데, 책을 또 살 필요가 있을까?' 란 생각도 컸다. 몇 달간 원고를 붙들고 있었는데, 그 내용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난 이미 이 책을 수십 번 읽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즉 난 '독자'가 아니었다. 책을 또 펼쳐봐야 한다는 동기가 없었다.


3. 온라인으로 책을 산 후, 구매자만 남길 수 있는 댓글 창에 '좋은 댓글을 남기는 자작극을 해볼까?' 란 생각을 한 적도 있다. 하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뭔가 구차하게 느껴졌다. '내 책에 내가 별 다섯 개 주고 댓글 쓰는 거 아니야?'란 상상만으로도 얼굴과 뇌가 화끈거렸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직접 구매한 책들이 생겼다. 이 책들엔 각각 이유가 있었다.


A. 서점에서 지인과 함께 있을 때, 내 책을 내가 사서 선물을 했다. 교보문고 벽쪽 구석에 내 책이 꽂혀 있었다. 함께 간 후배가 "오, 여기 있네요!"라며 반가워했다. 그 순간 자연스럽게 책을 집어 들고 계산대로 향했다. "이거 선물할게." 후배가 손사래 쳤지만 난 이미 결제를 하고 있었다.

얼마 전엔 지방에 사는 지인에게 전자책을 선물했다. "종이책 보내드릴까요?"라고 물었더니 "요즘 출퇴근 운전길에 스마트폰으로 듣는 걸로 책을 봐요"라는 답이 왔다. 전자책 구매 버튼을 누르고 선물하기를 클릭하는데, 이것도 나름 뿌듯했다. 이 때 기분이 묘했다. 어깨도 좀 올라가고 도파민도 느껴졌다. '아, 내가 쓴 책이 서점에 놓여있구나'라고 실감하게 되었다.


B. '내가 예비 독자라면 이 책을 사서 볼 것인가?' 란 잣대를 들이밀었을 때, '어'란 답이 나오면 샀다. 특히 주제를 깊이 파고들어 쓴 책일수록 그랬다. 책장을 넘기며 '과거의 내가 정말 열심히 썼구나' 싶은 대목이 보였다. 원고를 열심히 집필한 '과거의 나'를 응원한단 마음도 있었다. 그 노력에 대한 보상 같은 거랄까. 적어도 저자 본인이라도 구매를 해줘야 하지 않을까.


C. 바로 앞에 3번에서 말한 '좋은 댓글 자작글'이라도 없는 것보단 있는 게 낫다는 판단이 섰다. 왜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나 증오가 아니라 '무관심'이라고. 처음엔 구차하다고 생각했지만, 이건 관점의 문제였다. 독자 입장에서 생각해보니, 댓글 하나도 없는 책보다는 솔직한 후기 하나라도 있는 게 구매 결정에 도움이 된다. 그게 저자가 쓴 거라도 말이다. 물론 과장은 하지 않았다. 진심으로 좋다고 느낀 부분만 썼다.


제목으로 돌아가 '자기 책을 자기가 구매하는 작가는 얼마나 될까?' 내 가설은 '별로 없을 것이다'이다. 확실한 건 50%는 절대 넘지 않는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나처럼 '증정본으로 충분해' 혹은 '내용 다 아는데 뭐' 같은 생각을 할 테니까.


그런데... 우리가 독자들에게 "이 책 꼭 사서 읽어보세요"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최소한 우리 자신부터 그 책의 가치를 믿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니 작가들이여, 선물이든 응원이든 관심이든, 내 책을 직접 사보자. 그 경험 자체가 우리를 더 나은 작가로 만들어줄 것이다. 게다가 결국 인세로 돌려받는 것까지 생각하면 기분도 좋아진다.


<전자책 선물 방법-교보문고>

https://blog.naver.com/jakkawa/2237894026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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