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작가와

자기 책을 들어보는 작가는 얼마나 될까?

작가에서 청자로, 그리고 첫 번째 평론가로

by 작가와
그림1.png 자기 책을 듣는 작가, Gemini 활용

이런 수치를 조사한 곳이 있는지 모르겠다. 아마 거의 없을 것 같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내가 쓴 걸 내가 왜 들어?"라고 생각할 테니까.


요즘 전자책은 읽어주기 기능이 꽤 잘 되어 있다. 이펍(ePub) 파일은 AI가 놀라울 정도로 자연스럽게 읽어준다. PDF도 텍스트로 되어 있으면 충분히 들을 만하다. 윌라 같은 서점은 아예 유명 배우의 목소리로 오디오북을 제공하기도 한다. 그런데.. 내가 쓴 책을 내가 '듣는 건' 또 다른 경험이다. 읽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을 경험한다. 나 또한 처음 내 책을 AI 음성으로 들었을 때 충격적이었다. '아, 이런 느낌이구나' 싶었다. 그래서 정리해봤다. 자기 책을 들으면 어떤 점이 좋은지.


1. 창작물 개선 차원 - 눈으로는 못 보던 게 귀로 들린다

A. 적나라하게 오류가 들린다

눈으로 읽을 땐 넘어갔던 오타나 어색한 표현이 귀로 들으면 확 걸린다. "그는은"이라고 잘못 쓴 부분을 AI가 "그는은"이라고 그대로 읽어주면, 그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이게 지금까지 이랬단 말이야?'

10번을 교정해도 못 잡은 오류를 단 한 번 들어보는 것만으로 발견하는 경우가 많다.


B. 문장 리듬이 들린다

말할 때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단어가 있는 것처럼, 글도 그렇다(적어도 내 경우엔). "요약하면, 요약하면, 요약하면..."으로 시작하는 문장이 연달아 나오는 걸 들으면서 나도 지루했다. 즉 눈으로 읽을 땐 모르지만 귀로 들으면 리듬감이 없어 답답하다. 같은 구조의 문장이 반복되는 것도 들으면 바로 느껴진다.

음성으로 듣다 보면 '아, 여기서 독자가 지루해하겠구나' 싶은 지점이 명확해진다.


C. 호흡이 보인다

한 문장이 너무 길면 AI도 중간에 끊어 읽는다. 서점의 App에 따라 끊는 타이밍이 부자연스러운 경우도 있다. 그래서 이런 순간 '이 문장은 독자가 한 호흡에 읽기 힘들겠구나'란 걸 깨닫게 된다. 반대로 짧은 문장들이 연달아 나오면 리듬감이 생기는 것도 들린다.


2. 독자 경험 이해 차원 - 내 독자가 어떻게 소비하는지 체험한다

A. 실제 소비 방식을 경험한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출퇴근 길에 이어폰 꽂고 오디오북이나 전자책 읽어주기 기능을 듣는다. 나도 코로나 전부터 ‘듣기’를 활용하여 다른 작가님들의 책을 많이 봤다. 특히 해외 갈 때 비행기 안에서 잘 활용했다. 잠이 솔솔 잘 와서) 그런데 내가 쓴 책을 내가 직접 들어보기 전까진 "독자들이 내 책을 듣는다"는 게 추상적 개념이었음을 고백한다. 직접 내 책을 틀어보면, '아, 사람들이 이렇게 내 책을 소비하는구나' 하는 게 실감 난다.


B. '귀로 듣는 가독성(가청성?)'을 체크한다

눈으로 읽기엔 괜찮았던 문장도 귀로 들으면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특히 복잡한 구조의 문장이나, 한자어가 연달아 나오는 부분은 들으면 헷갈릴 때도 있고 ‘뒤로 가기’를 통해 다시 들을 때도 있다. "경제적 효율성 극대화를 위한 크로스 펑셔널(Cross functional) 측면의 전략적 방법론"이라고 쓰면 눈으로는 읽히지만, 귀로 들으면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이런 걸 발견하면 다음 개정판에선 더 쉽게 고칠 수 있다. (위의 예시는 눈으로 봐도 좋지 않은 문구다)


C. 멀티태스킹 중 독자의 집중도를 가늠한다

설거지하면서, 걸으면서, 운동하면서 내 책을 들어본다. 이때 집중이 흐트러지는 구간이 있다면, 그건 독자들도 마찬가지일 가능성이 크다. '여기서 사람들이 딴생각하겠구나' 싶은 지점을 발견하면, 그 부분을 좀 더 강렬하게 고치거나 핵심을 앞으로 당길 수 있다. 이건 좀 어려운 부분이고 체크하는 게 까다롭다. 그냥 지나치면 아쉬워서 쓰긴 했지만, 여기까지 신경 쓰기엔 ‘귀찮음’이란 장벽을 넘어야 한다.


3. 자기 인식 차원 - 객관화와 감정적 보상

A. 내 글을 객관적으로 본다

내가 쓴 문장을 내 목소리가 아닌 AI나 배우의 목소리로 들으면, 묘하게 객관적으로 들린다. '이게 정말 내가 쓴 거 맞아?' 싶을 정도로 낯설다. 이 낯선 느낌이 중요하다. 작가는 자기 글에 너무 익숙해져서 객관적 판단이 어렵다. 그런데 음성으로 들으면 마치 남의 책을 듣는 것처럼 거리가 생긴다. 그 거리에서 '이 부분 좋네', '이 부분은 아닌데' 같은 판단이 가능해진다.


B. 감정적 보상을 받는다

솔직히 말하면, 내 책을 AI가 멋진 목소리로 읽어주면 기분이 좋다. 특히 내가 심혈을 기울여 쓴 문장을, 윌라의 유명 배우 목소리로 들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아, 내가 이런 걸 썼구나' 하는 뿌듯함. '생각보다 괜찮은데?' 하는 자신감. 이런 감정적 보상은 다음 작품을 쓸 때의 원동력이 된다.


C. 새로운 의미를 발견한다

신기한 건, 같은 문장도 음성으로 들으면 다르게 해석될 때가 있다는 거다. 내가 쓸 때는 평범하게 넘어갔던 문장이, 들으면 '어? 이게 이런 뜻이 될 수도 있네?' 싶을 때가 있다. 억양이나 쉼표의 위치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걸 발견하면, 문장을 좀 더 명확하게 다듬을 수 있다. 원고의 품질이 높아지는 순간이다.


제목으로 돌아가 '자기 전자책을 들어보는 작가는 얼마나 될까?' 내 가설은 '거의 없을 것이다'이다. 앞선 글의 비율보다도 더 적을 것이다. 아마 3%도 안 될 것 같다. 하지만 들어본 작가는 안다. 이게 얼마나 유용한 경험인지.


그러니 작가들이여, 이어폰을 꽂고 내 책을 들어보자. 출퇴근길에, 설거지하면서, 산책하면서. 그 경험이 당신을 더 나은 작가로 만들어줄 것이다. 그리고 혹시 아는가? 당신 책을 듣다가 스스로 감동해서 ‘이 부분은 정말 잘 썼다’ 하고 자뻑의 향에 취할지. 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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