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서희 Aug 31. 2020

있어빌리티와 FLEX 문화의 유혹

상대적 박탈감에 대하여


“어제 차 계약했어요.”


그 한 마디에 동료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녀에게 쏠렸다. 다들 축하한다는 인사와 함께 무슨 차를 샀냐고 물었다. 원래도 외제차를 타던 그녀였기에 외제차일 거라 짐작은 했지만, 벤츠를 샀을 줄은 몰랐다. 그것도 소형차가 아니라 꽤 큰 중형 세단이란다. 모델명도 말해주었으나 차알못인 나는 그저 눈만 끔뻑끔뻑.

그녀의 깜짝 발표 덕분에 한동안 차를 주제로 이야기가 오고갔다. 그녀의 옆자리인 30대 미혼 동료도 요즘 차를 바꾸고 싶어서 알아보고 있다며 급 관심을 표했다. 그녀의 차는 아우디 소형, 차를 산지 4년 정도 되었는데 내년쯤 바꿀까 생각 중이라고 했다. 그러자 이야기를 듣던 K가 그 자리에 없는 다른 동료 P도 이번에 차를 계약했으니 그에게 물어보면 도움이 될 거라 친절히 알려주었다. 이번에 차를 계약했다는 P와 그 소식을 전해준 K의 차는 모두 BMW였다.     


담담히 이야기를 듣고 있었지만, 대화가 이어질수록 나는 상대적 박탈감이 밀려오는 걸 피할 수 없었다. 결국 난 참지 못하고 순진한 표정으로(사실은 순진한 듯 보이게) 물었다.

“설마 그거 월급 모아서 사는 건 아니죠? 저 지금 상대적 박탈감이 느껴져서요. 하하~”

다들 당연한 걸 왜 물어보냐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며 웃었다.

너무나 당연한 질문을 왜 굳이 그 타이밍에, 그 자리에서 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 질문을 던진 내 마음이 대체 무엇이었는지도 명쾌하게 대답하기 힘들다. 그저 그렇게라도 해서 나의 상대적 박탈감을 농담처럼 가볍게 휘발시키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나의 무의식이 그런 질문을 던짐으로써 자신의 능력으로 외제차를 산 게 아니지 않느냐는 얘기를 하고 싶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갖지 못한 조건에 대한 질투를 담아서 말이다.       




냉정히 표현해보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실제로는 훨씬 더 박봉인 교사의 월급으로 외제차를 사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물론 허리띠 졸라매고 모든 지출을 극도로 다 줄여서 영끌하여 살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좋은 외제차는 살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외제차를 타는 교사가 한 명도 없는 건 아니다. 남편이 돈을 잘 벌거나 부모님의 경제적 능력이 뛰어난 사람 중에는 외제차를 타고 다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실제로 외제차를 소유한 나의 동료 샘들 모두 이 둘 중 하나에 해당한다. 그러니 금수저도 아니고 돈 잘 버는 남편도 없는 나는 로또에 당첨되지 않는 한 평생 외제차를 탈 가망성이 제로에 가까운 것이다.      


물론 내가 그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거나 부러운 마음을 가질 객관적 이유는 없다. 비록 10년 된 아반떼이긴 하나 나도 내 소유의 차가 있고, 럭셔리한 외제차를 탄다 해서 나의 자존감이 높아지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자존감이란 ‘내가 나이기 위한 자격’인데, 그런 자격이 외제차로 생기는 게 아니란 걸 나 스스로도 잘 알고 있으니까. 무엇보다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지 못하고 내가 갖지 못한 걸 부러워하고 속상해하는 건 나의 자존감에도, 나의 마음 건강에도 해가 될 뿐이라는 것 역시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부러운 마음을 지울 수 없는 건 아마도 있어빌리티나 FLEX한 삶에의 유혹 때문일 것이다. 뭔가 있어 보이고 싶은 허세의 욕구가 자꾸만 나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주고 있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시선에 늘 안테나를 세우고 있는 나의 약점이자 연약한 부분을 인정할 수밖에.      




그러고 보면 있어빌리티와 FLEX한 삶의 유혹은 이겨내기 힘들 만큼 강력하지만, 그만큼 나에게 주는 폐해도 크다는 생각이 든다. 그 유혹을 어떻게든 이겨내기 위해 마음이 자꾸 안간힘을 쓰게 되고 때로는 마치 방어기제처럼 맥락에 맞지 않는 말과 말투가 튀어나와 관계를 어긋나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나의 농담인 듯 농담 같은 직선적인 질문에도 마음 상하는 사람 없었고 다들 가볍게 웃어넘겼지만, 분명 나의 그 질문은 적절하지 않았다. 그들이 외제차를 산 게 부당한 것도 아닌데, 내가 그럴 경제적 능력이 되지 않는다 하여 그들에게 무슨 돈으로 차를 샀냐고 추궁하듯 묻는 건 실례이니 말이다.     

 

그날 집에 돌아와 외제차 가격을 검색해보았던 나를 부끄러워하며, 번번이 유혹에 넘어지는 이런 나의 약한 마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되 이로써 내일은 좀 더 나은 나이기를 기대해본다.

있어빌리티에, FLEX 문화의 유혹에 마음 휘청거리지 않고 오늘의 무탈한 삶에 감사할 수 있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평범하고 당연했던 날들의 소중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